“메트 500만명 인파와 내 작품이 공명하길”
김민 기자 2024. 9. 19. 03:04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정면 조각 공개한 작가 이불
‘롱 테일 헤일로’ 연작 4점… 韓 현대미술 작가로는 처음 전시
“공간 정체성 파악에 수개월 쓰고… 매일 10시간씩 고강도 작업”
고대 문명부터 현대까지 5000년을 아우르는 소장품을 가진 미국 최대 미술관이자 한 해 500만 명이 찾는 ‘뉴욕의 루브르’,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 정면에 한국 작가 이불의 조각이 12일(현지 시간) 공개됐다. 미술관 방문객은 물론 뉴욕 시민과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까지 수백만 명의 눈길이 머무는 파사드(fa¤ade·건물 정면)에 놓이는 작품은 ‘롱 테일 헤일로’ 연작 4점.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메트 파사드에 전시된 것은 처음이다.
이불은 1980년대 후반 ‘낙태’ 등의 퍼포먼스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생선을 이용한 작품 ‘장엄한 광채’(1997년)를 전시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줌 인터뷰에서 2년 전 메트로부터 제안을 받고 작품을 공개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했다.
● 모순이 만드는 수많은 연결고리
이불의 신작은 미술관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2개씩 설치됐다. 정문 옆 작품은 여신상을 연상케 하는 모양이며, 가장자리 두 작품은 개가 무언가를 쏟아내는 형태다.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상·하 좌·우, 안·밖, 흑·백, 과거·미래 등 상반된 요소가 결합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신상 형태 조각은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표면은 부드러운 고무인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가 재료다. 표면을 갈거나 여러 효과를 주어 붓으로 칠한 회화 같은 느낌도 연출했다. 멀리서 보면 그리스 조각상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사이보그’ 연작도 떠오른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현재인지, 조각인지 회화인지 모호한 형태다.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담은 파워풀한 조각”이라며 “인간 조건의 복잡함을 탐구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불은 “최대한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메트의 초청을 받자마자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건물의 재료부터 오고 가는 사람들과 관계 등 공간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수개월을 썼죠. 미술관이 담은 거대한 문화는 물론 그 앞이 다양한 언어, 문화, 연령대의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공간임을 신경 썼어요.”
작가는 작품의 시각 언어를 특정 시대나 지역으로 고정하지 않고 여러 모순된 요소를 얽어 ‘열린 의미’를 갖도록 했다. 그 결과는 행인들이 스스로를 비춰 볼 수 있도록 한 ‘프리즘’에 가깝다.
“가을볕이 만드는 음영, 겨울이 되면 조금 낮아지는 햇빛, 첫눈이 오거나 비가 내릴 때 등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과 보는 사람들에 따라 무수한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왕지네에게 물리고도 작업에 몰두
메트는 현대자동차로부터 5년 후원 협약을 받고 올해부터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이불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근현대미술 큐레이터 레슬리 마는 “이불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 언어로 지난 40년간 다양한 배경의 관객을 사로잡은 같은 세대의 앞서가는 미술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재료의 창의적 사용으로 각도나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불은 “실외에서 잘 쓰지 않는 부드러운 재료를 외부에서 잘 견디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쳤다”며 “내부의 굉장히 강하고 복잡한 구조들이 작품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제작해 간단한 기계를 빼고 거의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했다.
“내 재료를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것을 직접 제작해야 했어요. 골조 위에 부드러운 표피를 씌우려면 수천 개 치수를 재야 했는데 중간에 전화라도 오면 몰입이 깨져 아주 곤란했죠.”
개막 일주일 전 작품을 완성해 뉴욕에 보냈을 만큼 제작 과정은 고강도였다. 이불은 “물리적 힘을 써야 하고, 숫자를 잊지 말아야 하니 매일 10시간씩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작업을 이어갔다”며 “시작한 직후 딱 한 번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으니 그 뒤로 달리는 열차처럼 몰입했다”고 털어놨다. 그 과정에서 15cm 길이 왕지네에게 물리기도 했다고.
“왼쪽 발꿈치를 새벽 2시에 물렸어요. 응급실에 가기도 어려워 검색을 해보니 엄청나게 아플 순 있지만 죽지는 않는다더군요. ‘아, 그럼 됐다’ 하고 한 달을 절뚝거리며 작업을 계속했죠. 그럼에도 몰두할 수 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롱 테일 헤일로’ 연작 4점… 韓 현대미술 작가로는 처음 전시
“공간 정체성 파악에 수개월 쓰고… 매일 10시간씩 고강도 작업”
고대 문명부터 현대까지 5000년을 아우르는 소장품을 가진 미국 최대 미술관이자 한 해 500만 명이 찾는 ‘뉴욕의 루브르’, 메트로폴리탄미술관(메트) 정면에 한국 작가 이불의 조각이 12일(현지 시간) 공개됐다. 미술관 방문객은 물론 뉴욕 시민과 전 세계에서 온 여행자까지 수백만 명의 눈길이 머무는 파사드(fa¤ade·건물 정면)에 놓이는 작품은 ‘롱 테일 헤일로’ 연작 4점.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메트 파사드에 전시된 것은 처음이다.
이불은 1980년대 후반 ‘낙태’ 등의 퍼포먼스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생선을 이용한 작품 ‘장엄한 광채’(1997년)를 전시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영국 런던 헤이워드갤러리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16일 동아일보와의 줌 인터뷰에서 2년 전 메트로부터 제안을 받고 작품을 공개하기까지의 과정을 전했다.
● 모순이 만드는 수많은 연결고리
이불의 신작은 미술관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2개씩 설치됐다. 정문 옆 작품은 여신상을 연상케 하는 모양이며, 가장자리 두 작품은 개가 무언가를 쏟아내는 형태다. 작품을 자세히 관찰하면 상·하 좌·우, 안·밖, 흑·백, 과거·미래 등 상반된 요소가 결합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신상 형태 조각은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표면은 부드러운 고무인 에틸렌 비닐아세테이트(EVA)가 재료다. 표면을 갈거나 여러 효과를 주어 붓으로 칠한 회화 같은 느낌도 연출했다. 멀리서 보면 그리스 조각상 같지만 자세히 보면 ‘사이보그’ 연작도 떠오른다. 과거인지, 미래인지, 현재인지, 조각인지 회화인지 모호한 형태다.
맥스 홀라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을 담은 파워풀한 조각”이라며 “인간 조건의 복잡함을 탐구한 훌륭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불은 “최대한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메트의 초청을 받자마자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건물의 재료부터 오고 가는 사람들과 관계 등 공간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데 수개월을 썼죠. 미술관이 담은 거대한 문화는 물론 그 앞이 다양한 언어, 문화, 연령대의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공간임을 신경 썼어요.”
작가는 작품의 시각 언어를 특정 시대나 지역으로 고정하지 않고 여러 모순된 요소를 얽어 ‘열린 의미’를 갖도록 했다. 그 결과는 행인들이 스스로를 비춰 볼 수 있도록 한 ‘프리즘’에 가깝다.
“가을볕이 만드는 음영, 겨울이 되면 조금 낮아지는 햇빛, 첫눈이 오거나 비가 내릴 때 등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과 보는 사람들에 따라 무수한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 왕지네에게 물리고도 작업에 몰두
메트는 현대자동차로부터 5년 후원 협약을 받고 올해부터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에 이불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근현대미술 큐레이터 레슬리 마는 “이불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각 언어로 지난 40년간 다양한 배경의 관객을 사로잡은 같은 세대의 앞서가는 미술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재료의 창의적 사용으로 각도나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이불은 “실외에서 잘 쓰지 않는 부드러운 재료를 외부에서 잘 견디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거쳤다”며 “내부의 굉장히 강하고 복잡한 구조들이 작품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제작해 간단한 기계를 빼고 거의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했다.
“내 재료를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것을 직접 제작해야 했어요. 골조 위에 부드러운 표피를 씌우려면 수천 개 치수를 재야 했는데 중간에 전화라도 오면 몰입이 깨져 아주 곤란했죠.”
개막 일주일 전 작품을 완성해 뉴욕에 보냈을 만큼 제작 과정은 고강도였다. 이불은 “물리적 힘을 써야 하고, 숫자를 잊지 말아야 하니 매일 10시간씩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작업을 이어갔다”며 “시작한 직후 딱 한 번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으니 그 뒤로 달리는 열차처럼 몰입했다”고 털어놨다. 그 과정에서 15cm 길이 왕지네에게 물리기도 했다고.
“왼쪽 발꿈치를 새벽 2시에 물렸어요. 응급실에 가기도 어려워 검색을 해보니 엄청나게 아플 순 있지만 죽지는 않는다더군요. ‘아, 그럼 됐다’ 하고 한 달을 절뚝거리며 작업을 계속했죠. 그럼에도 몰두할 수 있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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