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최고 수준 의료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의·정 타협점 찾아야

정해민 기자 2024. 9. 19.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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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대형 병원들이 진료를 시작하는 오전 8시쯤 서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 로비를 찾으면 전국에서 온 환자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10분 남짓 담당 의사와 만나려고 수개월 전부터 기차표를 예매한다. 대부분 사는 지역 근처 대형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려워 세계 최고 수준의 병원을 찾아온 중증 환자들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가 18일 공개한 ‘2025 세계 최고 전문 병원’ 평가에서 국내 빅5 병원은 암·내분비 등 주요 분야에서 세계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질 높은 의료 수준을, 이렇게 싸게, 자주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밖에 없다(권준혁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교수)고 한다. 간 이식 비용이 미국은 60만달러(약 8억원) 이상이지만, 한국은 5000만원 이하다. 한국 의료 체계의 본질은 낮은 수가로 많은 사람이 일류의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적인 의료 체계를 지탱하기 위해 대형 병원은 하루 1만명의 외래 환자를 보는 박리다매 구조와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전공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명의가 되기 위해 강도 높은 수련을 인내하는 전공의 제도는 우리가 세계 일류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19년간 의료계에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묶어 놓는 당근책을 제시하며 병원의 박리다매를 유도해 버텨왔다.

그러나 낮은 보상으로 인한 필수 의료 기피 현상에 고령화 시대까지 겹치면서 더 이상 이전의 의료 체제는 지속 불가능해졌다.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을 꺼낸 이유다.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올 2월 병원을 떠나자, 일류 의료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봉착했다. 전공의 집단 사직 후 대부분 대형 병원의 입원·수술은 반 토막 났다. 박리다매 구조가 무너지면 병원은 투자와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현장 의사들은 “세계적 실력을 갖춘 의사들이 업무 부담은 적고 보상은 많은 해외로 빠져나갈까 걱정된다”고 말한다.

필수 의료 기피 등 우리 의료 체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스템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지난 2월 정부는 이런 점은 앞세우지 않고 무조건 의대 2000명 증원만을 내세워 의료계의 반발을 일으켰고 지금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제는 타협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이뤄낸 일류 의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최소한의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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