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술계 파워 1위가 하루 세 번 찾은 이 전시
신작 전시에 해외 미술계가 주목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서 상영
“속도, 시간, 자본주의에 대한 심층적인 명상, 놓치지 마세요.”
“3대의 스크린과 엄청난 디스플레이, 광주에서 본 전시 중 최고였다!”
축제의 주인공은 뜻밖의 장소에 있었다.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개막한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45)의 신작 전시다. ‘총성 없는 미술 전쟁’이 벌어졌던 9월 첫 주, 한국을 찾은 해외 미술계 인사들은 “꼭 봐야 할 전시”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세계 미술계 파워 1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런던 서펜타인 예술감독은 5일 오픈런으로 관람한 후, 하루 세 차례 다른 일행을 끌고 전시장을 찾았다. 가타오카 마미 도쿄 모리미술관장, 클라우스 비센바흐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장, 루이자 벅 영국 미술평론가 등이 소셜미디어에 감탄 후기를 올렸다.
김아영은 지금 글로벌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다. 지난해 세계 최대 미디어 아트상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 상을 받았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건 처음. 이때 선보인 작품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는 영국 테이트모던에 소장됐고, 최근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도 특별 상영됐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제1회 ‘ACC 미래상’을 받으면서 마련됐다. 상금 3억원과 ACC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신작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를 선보인다. 광활한 전시장 규모부터 관람객을 압도한다. 1560㎡(472평) 복합전시1관을 단독으로 채웠다. 가로 11m 크기의 대형 스크린 3개를 천장에 삼각형 구조로 매달았고, 화면마다 재생되는 영상을 조금씩 다르게 했다. 관람객은 완만하게 설치된 경사면에 앉거나 누워서 27분짜리 작품을 무한 관람할 수 있다.
주인공은 헬멧을 쓰고 가상 도시를 질주하는 두 여성 배달 기사. 세계 최고상을 그에게 안긴 ‘딜리버리 댄서의 구’의 후속 작품이다. 전작에선 서울이란 도시에서 속도 경쟁에 휘말리다 네비게이션의 미로에 빠졌던 두 주인공이 이번엔 새로운 가상 도시 ‘노바리아’에 놓이게 되는 설정이다. 소멸된 줄 알았던 과거의 시간관이 담긴 유물을 우연히 배달하면서, 서로 다른 시간관과 세계가 충돌한다.
광주에 이어 서울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코로나 때 집에 갇혀 배달 음식만 시켜먹으면서 ‘라이더’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둔화한 세계에서 오직 라이더만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배달 기사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바이크 뒤에 타고 이태원부터 한강 고수부지, 산동네까지 직접 배달 체험도 했다. “배달 앱들은 빠를수록 이윤이 늘어난다고 부추긴다. 속도 경쟁에 떠밀려서 생산성을 입증해야 하는 기사들은 마치 원형 미로에 갇혀서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벗어나지 못하는 미로 같은 구조를 원형의 구(球)로 표현했고, 뒤틀린 시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에게 계속 자문했다.
이번 신작에서 가장 중요한 축은 시간. 전시장에서 관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도 바닥에 설치된 초대형 해시계다. 작가는 서구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수많은 전통 역법과 시간관에 주목했다. 서양의 그레고리력(양력)을 표준으로 사용하면서 소멸된 여러 문화권의 전통적 우주론과 달력, 시간 체계를 공부했고, 이를 현대미술로 복원하려 했다. “위치 정보 시스템(GPS)을 통해 방위를 계산하고 디지털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는 이 시대에, 달과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우주를 이해했던 과거의 달력, 소멸된 우주와의 감각을 다시 연결해보자는 취지였다.”
영상은 쉽고 감각적이다. 넓은 화면을 채운 애니메이션과 귀에 착 붙는 나레이션, 질주하는 라이더가 관람객을 미래 세계 한복판으로 끌고 간다. 전시를 관람한 아르야 밀러 헬싱키 아트 뮤지엄(HAM) 관장은 “수학, 물리, 천문학, 철학의 요소를 오묘한 판타지와 결합했다”며 “시간의 개념을 재해석해 놀라운 층위의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신작은 인공지능(AI)도 적극 활용했다. 절반은 게임 엔진으로, 절반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시나리오부터 AI와 대화하며 세계관을 설정해 나가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그는 “AI는 절대 만능이 아니고, 포토샵 같은 도구로 봐야 한다”며 “스스로 어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인간이 계속 명령어를 내리고 돌봐야 한다. 인간이 개입해 결과물을 조정함으로써 최종 가치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는 일종의 ‘AI 베이비시터’”라고 했다.
영상을 만드는 작가이지만, 영화보다 소설을 좋아한다는 그는 “SF물과 철학책을 즐겨 읽는다. 책은 누군가가 사유에 사유를 거듭해서 정수만을 정리한 주옥 같은 결과물이지 않은가. 많이 읽고 메모하며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6일까지. 관람료 무료.
☞김아영(45)
영상과 사운드, 퍼포먼스와 텍스트 등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상상력을 펼쳐왔다.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보이스 퍼포먼스 작품을 선보였고, 영상 ’딜리버리 댄서의 구’로 세계 최대 미디어 아트상인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서 최고상인 ‘골든 니카’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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