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 아파트 값 35조원 늘 때 증시 110조원 증발
9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시가총액이 1189조원에 달했다. 25주 연속 오름세를 기록하면서 올해 들어서만 35조원 늘었다. 반면 코스피·코스닥 시장의 시가총액은 올 들어 110조원 줄었다. 외국인에 이어 국내 투자자들도 한국 증시를 외면하면서 선진국 중 거의 유일하게 시장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올 초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며 밸류 업(기업 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자 외국인 투자금이 대거 유입되는 등 주가가 반짝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세제 지원 내용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치고, 상장 기업들 참여가 부진하면서 시장에 실망을 주었다. 여기에 금융투자소득세의 내년 시행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가중되자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이탈이 가속되고 있다. 1400만 개인 투자자도 “국장(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면서 투자금을 미국 증시로 옮기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증시는 가계 여유 자금을 기업 투자금으로 돌려 산업을 활성화하고 그에 따른 이득을 가계로 환류시킴으로써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기능을 한다. 과도하지 않은 증시 활황은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준다. 반면 부동산 값이 올라가면 생산원가를 높이고 경제 시스템을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만든다. 지금과 같은 ‘부동산 팽창, 증시 수축’은 경제에 백해무익하다.
한국 증시의 정상화는 부동산에 쏠린 가계의 자산 구성 재편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은퇴 세대는 자산의 80% 이상을 환금성이 약한 부동산으로 보유하고 있어 노후 대비에 어려움이 많다. 이 돈이 주식시장으로 옮겨와 노후 자금으로 활용되려면 미국처럼 증시가 장기적으론 우상향한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지난 8월 초 증시 대폭락 사태는 한국 증시가 얼마나 허약한 체질인지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증시 침체는 정부의 소극적인 밸류 업 프로그램, 공매도 금지 등 글로벌 표준과 어긋나는 규제,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방파제 역할 외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증시 밸류 업 프로그램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증시 선진화를 위한 법·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집값은 뛰는데 증시가 쪼그라드는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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