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남의 자식 자랑에 맷집이 생겼다
올해처럼 더운 추석 연휴는 처음이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추석 장을 보고 들어서니 아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더워서 안 오겠다는 거다. 코로나 때는 기차에 사람이 많아 위험하다고 안 오고, 작년에는 차표를 구하지 못했다고 안 오고, 올해는 더워서 안 오고. 해마다 달라지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구직 중. 나는 시원해지면 보자고 문자를 보냈다.
연휴 동안 시댁 식구들과 조카 서너 명을 만났고, 또 다른 조카들의 안부를 들었다. 그뿐일까, 친정 쪽 조카들 소식도 전화로 들었다. 이사 간 아파트, 연봉, 새로 뽑은 차 이야기가 빠질 수 없고 추석 선물에서 자식들이 주는 용돈까지 들었다. 나는 단단하게 각오를 하면서 나물을 데치고 무치고, 전을 부쳤다. 그래도 예년보다는 그런 이야기들에 대한 맷집이 엄청 세졌다. 미국 소설가 루시아 벌린의 짧은 소설 ‘울면 바보’를 읽은 덕분이다.
고독은 앵글로색슨의 개념이다, 라고 시작하는 소설에서 ‘나’는 암에 걸린 동생을 찾아 멕시코시티로 간다. 죽음이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동생네 가족들의 하루는 요란하고 행복하다. 나는 학교 때의 친구를 만난다. 그는 의사인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나의 자식들은 뭐 하는지 묻는다. 난 그런 발상을 싫어해, 나는 잘라 말한다. 부모가 자식들의 성취를 자신의 명예로 여기는 것을, 나는 내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그 소설을 읽기 전엔 성공한 자식들의 자랑을 들으면 불편한 이유가 아직도 취업 준비 중인 아들 때문인 줄 알았다. 질투가 나서 남의 이야기도 못 들어주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데 그 소설을 보면서, 내가 불편한 건 자식의 성공으로 우쭐대는 부모나 상대방의 형편을 알면서 꼭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한몫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이후로 자식 자랑을 들을 때면 속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건 나는 매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연휴, 친지들의 빛나는 삶의 승전보를 들으면서 ‘울면 바보’를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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