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정책 공조 모범이던 F4의 불협화음
한은 총재는 대통령실과 대립각
“태풍 오면 선원은 선장을 본다”
위기 대비한 팀워크 복원해야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매주 한 차례 비공개로 모여 정책 현안을 논의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는 윤석열 정부 경제팀의 히트 상품으로 꼽힌다.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금융정책 등 경제·금융 관련 수장(首長)들의 모임이란 뜻에서 일명 ‘F4(Finance 4) 회의’로 불리는 이 모임은 기관별로 분산됐던 각종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심도 깊게 정책 방향을 조율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참석자 면면도 화려했다. 재선 의원으로 국회 협상력을 갖춘 추경호 부총리, 국제통화기금(IMF)에서 한국인으로는 최고위직에 올랐던 이창용 한은 총재, 30년 넘게 재무 관료 생활을 한 김주현 금융위원장,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드림팀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구성이었다.
그런데 탄탄했던 팀워크의 균열을 의심하게 만드는 이상 징후들이 최근 한 달 동안 두 차례나 나타났다. 지난 6일에는 F4 회의가 끝난 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브리핑을 자청해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기조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했다. 이틀 전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이복현 원장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앞서 지난달 27일에는 이창용 총재가 “(한은이) 금리 인하를 망설여야 할 만큼 높은 가계 부채와 수도권 부동산 가격과 같은 구조적 문제에 빠지게 됐는지에 대한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며 대통령실에 대립각을 세웠다. 닷새 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하자 대통령실이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비판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두 차례의 불협화음 모두 지난 7~8월에 급증한 가계대출과 관련된 것으로, F4 회의에서 충분히 협의되고도 남을 사안들이 조율 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박춘섭 경제수석이 대통령실을 대표해 F4회의에 참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실과 한은의 충돌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충돌까지는 아니더라도 F4 멤버 간의 역할에 대해 교통정리가 안 된 듯한 모습도 보인다. 이복현 원장은 최근 우리은행에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의 350억원대 부당 대출이 적발된 것과 관련, “더이상 신뢰하지 못할 수준”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당장 금융권에서는 “현직 CEO(최고경영자)에 대한 제재 권한은 금융위원회가 갖고 있는데, 금감원장이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越權)”이란 반응이 나왔다. 금융관련 법률에 따르면, 해임이나 직무정지같은 임원 중징계는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금융위원회의 결정 사항이고, 금감원장은 9명으로 구성된 위원 중 1명일뿐이라는 것이다.
일사불란한 지도부의 진가는 위기 때 드러나는 법이다. 원양어선 선장 출신으로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그룹이라는 2개의 대기업집단을 일군 김재철 회장은 “태풍이 오면 선원은 파도가 아니라 선장을 본다”고 했다. 2022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 새마을금고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 우려 등 대형 악재가 꼬리를 물고 터졌음에도 국내 금융시장이 큰 위기에 빠지지 않았던 비결을 F4의 정책 공조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가 둔화될 기미가 보이자 연이어 터져나온 미국발 경기침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국내 경제도 장기화한 내수 부진과 가계 대출 급증이란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 F4 불협화음이 위기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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