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블루칼라 열풍, 한국은 왜 드문가

안상현 기자 2024. 9.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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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블루칼라 직업군(생산·기능직 노동자)이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로 인해 숙련공이 부족해지자 임금이 크게 올랐고, 사무직을 선호하던 20~30대 역시 현장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한 배관공(왼쪽)과 국내 한 조선소에서 용접 작업을 하고 있는 숙련공(오른쪽)의 모습. /김동환·안상현 기자

특고압 케이블 작업공은 국내에서 평균 노임이 가장 높은 블루칼라(생산·기능직) 직업이다. 하루 8시간씩 일하면 한 달에 평균 840만원을 벌 수 있다. 임금 수준만 놓고 보면 지원자가 많을 법하지만 한 특고압 케이블 포설 전문업체 대표는 기자에게 “자격증 교육까지 회삿돈으로 시켜줘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 사이 은퇴 숙련공은 계속 늘어, 대표는 60세가 넘은 지긋한 나이에도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용접공이나 미장공 등 다른 블루칼라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고령화를 겪는 미국과 유럽 같은 해외 선진국에선 인력 부족으로 블루칼라 임금이 화이트칼라(사무·전문직)를 넘어설 정도로 부쩍 오르며 젊은이가 몰리고 있다. 미국에선 4년제 대학 등록률이 떨어지고 직업 교육 중심의 2년제 전문대(커뮤니티 칼리지) 등록 증가율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정도고, 주요 외신에선 ‘블루칼라 보난자(노다지가 터졌다)’나 ‘공구 벨트(tool belt) 세대’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공급이 줄면 가격(임금)이 높아져 수요를 끌어올린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서 한국만 벗어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 육체노동 인력의 희소성이 유달리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땀 흘려 돈을 버는 직업을 경시한다. 돈을 많이 줘도 지원하지 않는다. 이런 부조리의 배경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대학 진학률과 학벌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다. 월간 이용자가 15만명에 달하는 생산·기능직 전문 구인구직 플랫폼 ‘고초대졸닷컴’을 운영하는 디플에이치알 관계자는 “많은 국내 기업이 생산·기능직 채용 시에도 4년제 대학 졸업이라는 학력 조건을 요구한다”고 했다. 우선 대학을 다녀야 하고, 대학을 나오면 응당 사무직을 노려야 한다는 압박이 사회에 만연하다.

양질의 인재를 키워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견인한 교육열은 어느새 학벌 만능주의로 변질돼 우리 사회를 망치는 병폐가 된 듯하다. 오죽하면 한국은행 총재가 나서 수도권 인구 집중과 집값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대학 입시에 지역별 학생 수 비율을 반영한 비례선발제 도입을 주장하며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교수님들이 결단을 해주시면 된다”고 말한다. 현 한은 총재는 서울대 교수 출신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장기화한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도 어찌 보면 강박적인 학벌 숭상과 맥이 닿아 있다. 최근 의사와 의대생만 가입 가능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국민이 더 죽어야 의사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는 취지의 글이 잇따라 게시됐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1차원적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 특유의 학벌 만능주의와 그에 따른 능력주의 맹신의 한 토막이라는 점에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부조리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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