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우리 엄마를 고소할래요”
“저희 엄마 처벌할 수 있나요?”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 너머로 시작된 다급한 질문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잠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저는 미성년자고, 사실 불법 도박을 했는데요. 엄마가 의심스러웠는지 제 개인 메시지함을 훔쳐봤어요. 처벌 가능한가요?”
맡을 만한 사건이 되든 안 되든 의지할 곳 없는 딱한 사람들이 있을까 봐서 짧게나마 답을 주는 습관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질문에는 말문이 막혔다. 이내 메신저의 온라인 전화 기능까지 이용해 전화가 걸려 왔다. 받지 않으니 다시 메시지 알림이 울린다.
“급한데 답변 부탁드립니다. 처벌 가능한지만 제발 알려주세요.”
원래 같았으면 의뢰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보통신망법의 비밀 침해 등을 머릿속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불법 도박과 모친의 훈육이라는 사건의 배경을 듣고 과연 처벌을 운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고민 끝에 “처벌은 힘들 것”이라고 짧게 얘기했다.
“왜요? 자식의 대화 내용을 허락 없이 봤는데요.”
스마트폰 너머의 학생은 득달같이 따지듯 물어봤다. 자식이 불법 도박을 하는지 걱정됐던 모친이 자신의 사생활을 침해한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했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봤다는 심증만으로는 처벌이 어렵다고 답한 뒤 대화창을 위아래로 계속 훑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지만 장난인 것 같지는 않았다.
부모가 자식의 도박 문제가 걱정돼 휴대전화를 훔쳐봤다고 형사처벌을 받기를 원하는 세상이라니. ‘나 때는 말이야’식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엄마가 버디버디 메시지를 훔쳐봤다고 형사처벌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 친구는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걸까? 아직 30대 중반인 내가 꼰대가 되어버린 건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국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결론에 봉착했다.
‘전과자’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 사실 우리 사회에서 전과자는 아주 흔하고, 더 흔해지고 있다. 이미 2020년쯤 들어 우리나라 성인 4명당 1명이 최소 전과 1범이고, 단순 예측으로 2030년에는 그 비율이 성인 3명당 1명이 될 것이라는 학계의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런데 이제 100세 시대가 열리고 있고, 요즘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규제와 형사처벌 규정이 또 생기니 이런 추세가 반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야! 털면 다 나와!”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대사였으면 좋겠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안다.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이 변호사도 버거운 촘촘한 처벌 규정을 한평생 피해 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한 여중생이 승강기 안에 붙어있는 전단을 뗐다는 이유로 검찰에 송치돼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다. 많은 비판이 이어졌고 관할 경찰서장까지 나서 사과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했던 시민들이라면 앞으로 함부로 승강기 안에 붙은 전단을 뗄 생각은 못 할 것이다. ‘뭘 이런 것까지 처벌하느냐’는 성토가 이어지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떼면 처벌받는 전단’ 따위의 것들이 주변에 즐비하다는 사실을 깨달아 간다.
우리는 과잉 범죄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런저런 갈등이 생기면 점점 평범한 시민의 머릿속에도 ‘경찰서 데리고 가서 처벌해 달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옛날에는 변호사들 직업병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바이러스처럼 남녀노소에게 다 번져간다. 과잉 형사화 바이러스가 자식 걱정을 하는 엄마와 다툰 어린 학생에게도 번진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 컸을 때면 ‘전과자’라는 단어가 조금 더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전 국민이 전과 하나씩 가지기 점점 쉬워지는 세상이라니. 다들 이런 걸 원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그 때문에 벌어먹고 사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내게는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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