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해서 욕했는데 호랭이로 떡상”…대세 ‘모자 유튜버’ 김동금&조재원

하경헌 기자 2024. 9. 1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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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조재원씨(오른쪽)와 어머니 김동금씨가 10일 서울 용산구 샌드박스네트워크에서 ‘스포츠경향’과 추석특집 인터뷰를 가진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아들 조재원
새벽에 몰래 먹방하는
‘죽음의 ASMR’로 대박
홀로 삼남매 키운 여장부 엄마
오래 같이 했으면


엄마 김동금
기술이나 배우라고
많이 싸웠는데 잘돼서 다행
로또된다면 학생팬들에게
‘문상’ 쏘고 싶네요


채널 ‘조재원’은 최근 200만 구독자를 넘었다. 개그 전문 유튜버 조재원의 성공에는 어머니 김동금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채널은 ‘현실모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무궁무진한 콘텐츠로 이른바 ‘떡상’의 기운을 뿜고 있다. 사랑하지만 그만큼 안타깝고 부담스러운 모자관계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할 줄이야…. 이들 모자의 모습은 마치 탕수육을 딸기잼에 찍어 먹는 듯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이다.

■ ‘호랭이’가 가져다준 유명세

조씨는 2016년 자신의 이름을 건 ‘조재원’ 채널을 만들었다. 처음은 누구나 다 하는 ‘몰래카메라’ 위주에 상황극 등 남들 모두 다 하는 콘텐츠는 하나씩 다 건드렸다. 그러다 대박이 난 콘텐츠가 있었다. 바로 어머니 김씨가 등장하는 ‘죽음의 ASMR’이다.

“어머니께서 식당을 오래 운영하셨어요. 새벽에 오시니까 라면 하나 몰래 먹으려면 어머니의 잠을 방해하게 되는 거였죠.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 조심조심 무언가를 먹던 경험을 살려 콘텐츠를 하게 됐어요.”(조재원)

동금씨는 아들이 몸에 안 좋은 야식을 먹는 모습을 깨서 볼라치면 대번에 나무라기 시작했다. 전라남도 보성 출신의 김씨 사투리 욕은 구수하게 앵글에 박혔다. ‘X병’ ‘썩어 X빠질 것’ ‘X것’ 등 많은 욕이 있었지만 ‘호랭이가 물어갈 놈’이 가져온 반향은 컸다.

“중국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웨이보에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죠. 어머니의 전라도 욕을 중국분들이 신박하게 생각해주신 거였어요. 중국에서는 동물이 들어가는 욕이 잘 없다고 하더라고요.”(조재원)

어머니 김동금씨의 분량은 빠르게 커졌다. 지금은 어머니의 일상을 공유하는 ‘동금로그’ 콘텐츠를 따로 꾸릴 정도다. 김씨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빠르게 늘어났다.

“학생들이 많이 알아봐요. 늙어서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지금은 밖에 나가더라도 꾸미게 되고 그러더라고요. 요즘 로또복권을 사고 있는데, 당첨되면 구독자분들께 꼭 ‘문상(문화상품권)’을 쏘고 싶어요.”(김동금)



■ “뭔 유튜브? 기술이나 배우라고 했었는데”

서울체중을 나온 인라인스케이트 선수 출신 조재원은 개그에 뜻을 두고 서울 홍대 김대범 소극장에서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런 그의 삶은 고됐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서 숙소생활을 하면서 일용직을 했다. 일이 끝나면 극단에 가 공연을 했다. 그리고 일당을 받으면 한 달에 8, 9만원으로 생활을 하고 오롯이 영상에 투자했다. 당연히 엄마 김동금씨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영상을 찍는다고 밤에 무엇을 먹기 시작했어요. 욕부터 나갔죠. ‘저걸 해가지고 돈이 되겠냐’라고도 했었어요. 무던히 싸웠죠. 기술을 배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유튜브가 돈이 되는 거예요. 조금씩 아들을 응원하게 됐죠.”(김동금)

채널로 수익창출이 가능해지자 조재원은 엄마에게 용돈 150만원을 뽑아 안겼다. 김동금씨는 이제 아들의 가장 큰 팬이자 조력자다. 채널 콘텐츠의 아이디어도 적극적으로 낸다. 김씨의 존재로 중장년층 구독자도 생겨, ‘조재원’ 채널은 개그 유튜브 중 가장 넓은 구독자층을 자랑한다.

“18세에서 24세까지가 주 구독자층이었는데 36세에서 40세까지로 넓어졌어요. 어머니께서 MBC ‘나를 살리는 1교시’에도 출연하시거든요. TV를 통해 알아보시는 분들이 더 늘었어요.”(조재원)

■ 우리, 건강하게 오래 같이해요

김동금씨는 조재원이 12살이던 시절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조씨의 두 누나까지 세 자녀를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아들과 살갑게 마주할 시간을 놓쳤다.

“어머니는 ‘여장부’ 같은 이미지였어요. 아버지 없이 누나들도 영국 유학을 보내고 정말 힘든 일을 해내셨거든요. 오전 10~11시에 나가셔서 새벽 5시가 넘어 일이 끝나기도 했어요. 명절도 못 쉬고, 여행도 못 가는 나날의 연속이었죠. 자식들도 다 키우시고, 또 활력도 얻으시니까 이제는 많이 부드러워지신 것 같습니다.”(조재원)

“자식을 잘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어요. 다행히 아들이 잘 되서 식당도 2019년에 그만뒀습니다. 아들이 이젠 너무 자랑스럽죠. 이제 찾은 일을 아들이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김동금)

모자는 최근 누나 가족들과 함께 인천 영종도 을왕리에 숙소를 빌려 여행을 했다. 이런 일상이 두 사람은 만족스럽다. 게다가 조재원은 어머니가 ‘콘텐츠의 보고’이고, 김동금씨에게 아들은 ‘자랑의 원천’이 아닌가. 때로는 외면하고 싶고, 때로는 서운했던 시간들은 채널 안의 피어나는 웃음 속에서 어느 순간녹아내렸다. 두 사람은 지금처럼 서로에게 어깨를 걸고 의지하면서, 200만 구독자들과 함께 할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두 사람의 지금은 더욱 빛난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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