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토링] 공은 취하고 과는 떠넘기는 세상의 권력자들

이남석 발행인 2024. 9. 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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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열정·소통의 리더 이순신 82
조선 수군의 본진 공격한 왜
조선의 전투력 보여준 순신
왜적 함대 50여척 침몰시켜
대승의 공적 진린에게 돌려
조정에 두가지 장계 보낸 순신
순신의 배려로 목숨 건진 진린

"공功은 나누고 과過는 떠맡다." 지도자가 금과옥조로 여겨야 할 문구다. 공적은 아랫사람에게 넘기고, 과실은 책임지라는 건데, 이순신은 이를 '전장戰場'에서도 실천했다. 명나라 제독 진린이 싸움도 하지 않았는데도, 승전의 공을 그에게 넘긴 건 유명한 일화다. 이순신의 선택은 진린이 조선을 인정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우리 지도자 중엔 이순신 같은 리더가 있는가. 도리어 공을 떠안고 과를 넘기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지도자라면 공보단 과를 더 많이 취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1598년 7월 18일. 병력 1만6000여명을 태운 100여척의 왜적 함선들이 파도를 가르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의 본진인 고금도를 기습공격하기 위해서다. 명량해전 이후 수개월째 조선 수군과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적이 뜬금없이 용기를 낸 것은 아니었다. 이때가 공격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시기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명나라 수군 5000여명이 고금도에 도착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 고금도는 여러모로 어수선하고 빈틈이 많아 보이는 듯했다.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과 조선의 이순신이 지휘체계에 합을 맞추기엔 이틀이란 기간은 분명히 짧았다. 하지만 이같은 왜군의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적의 함대가 고금도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이순신은 '모든 군무를 진린의 절제를 받으라'는 선조의 명령대로 진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조선 수군과 함께 출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명군이 단독으로 출정하겠습니까?"라며 선택지를 던졌다.

"휘하의 유격장군 왕원주, 천총 정문린 등에게 몰려오는 적을 격파토록 할 터이니 조선 수군은 뱃길만 가르쳐 주면 될 것이오." 이순신에게 명나라 수군의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진린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명나라 군사가 먼 길을 오느라 아직은 여독이 풀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해안의 지리 또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니 이번에는 조선 수군이 단독으로 나서는 것이 도리에 맞을 것 같소"라고 제안했다.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었던 터라 진린은 나름 명분이 있는 이순신의 제안을 수락했다. 이순신이 진린을 설득해 조선 수군의 단독 출정 결정을 받아낸 것은 이번 기회에 명나라 수군에 조선 수군의 강력한 전투력을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이순신은 전투에 앞서 지혜로운 안목을 여지없이 발휘했다. "왜놈들은 목표 지점 점령에 실패하더라도 반드시 약탈이 가능한 동선을 따른다. 따라서 너희들은 반드시 절이도(현 거금도) 바깥의 큰 바다 대신 소록도와 절이도 사이의 해협을 길목으로 선택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절이도에서 너희를 수장시켜주마."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여줬던 전임 김억추 대신 전라우수사로 임명된 안위와 녹도만호 송여종에게 각각 절이도와 소록도 끄트머리 지점 양쪽에 매복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7월 19일, 몰려오던 왜적 함대는 이순신이 예측한 대로 절이도와 소록도 사이의 바닷길로 일제히 빠져나왔다. 숨어있던 전라우수사 안위의 함대가 적의 함선들을 향해 맹렬히 쳐들어가 대포와 화전을 퍼부었다. 적은 사력을 다해 대응했지만 막강한 조선 수군의 전투력을 감당해 내지는 못했다.

적의 함선들이 일제히 금당도 쪽으로 방향을 틀려고 하자 이번에는 녹도만호 송여종의 판옥선들이 길을 가로막고 함포를 쏘아대며 안위의 함대와 앞뒤로 협공했다. 조선 수군의 매복 작전에 걸려 든 왜적 함대는 포위를 뚫고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순식간에 적의 함선 100여척 가운데 50여척이 침몰했고, 나머지 절반은 반파된 채 후퇴했다. 격침된 함선에서 빠져나온 적의 병사들은 소록도 쪽으로 헤엄쳐가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나마 갯벌을 엉금엉금 기어 섬에 도착한 적의 병사들도 조선 수군의 손에 목이 잘려 나갔다. 이렇게 적의 전사자는 수천명에 이르렀다.

전투가 벌어질 당시 진린은 금당도에서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절이도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고금도로 돌아온 전라우수사 안위는 적의 머리 40급을 이순신에게 바쳤다. 또 송여종은 머리 69급과 왜적 병선 6척을 바쳤다.

대승을 축하하기 위한 연회가 열렸다. 진린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나서서 공을 세우지 못한 점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이때 이순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하면서 적의 수급 40개를 진린에게 선물로 전달했다. "이번 승리는 모두 천조天朝의 도독인 진 대감의 공적이요. 대감께서 조선 군사까지 지휘할 권한이 있으니, 대감의 공이 아닐 리가 없소."

이순신이 진린을 추켜세우며 공을 양보하자 진린은 이순신의 손을 감싸 잡으며 "내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장군의 명성을 듣기는 했소만, 과연 명불허전이오!"라며 몹시 기뻐했다.

이때 이순신은 또 하나의 묘수를 꺼내 들었다. "진린 제독과 등자룡 부총병에게 판옥선 1척씩 내어드리고자 하니, 대장선으로 삼아주시길 바라오. 귀국 수군의 지휘선에 왜놈들이 쉽게 오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오." 이순신의 세심한 배려에 진린과 그의 휘하 장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순신은 아랫장수에게 공을 넘기는 지도자였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이후 이순신은 선조에게 절이도해전과 관련된 장계를 두가지로 작성해 올려 보냈다. 하나는 '조선 수군이 단독 출정해 거둬들인 공적 사항과 함께 아쉬워하는 진린에게 적의 수급 40개를 선물로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또 하나는 '진린이 용감하게 싸워 왜선을 침몰시키고 수급을 취했다'란 내용의 장계였다. 이같은 혜안은 진린이 이순신뿐만 아니라 조선을 높이 평가하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

진린은 이순신에게 선물받은 수급을 바탕으로 명나라 본국에 자신이 절이도해전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거짓 보고를 올렸다. 그런데 실제 전투에 나선 함대는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었다는 소문이 명나라 조정에 나돌았다. 급기야 명나라 감찰관이 사실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왔다.

이때 조선 조정은 '진린이 열심히 싸워 왜적을 수장시키고 수급을 취했다'란 장계만 보여줬다고 한다. 이순신의 두가지 장계가 아니었다면 진린은 꼼짝없이 명나라로 압송돼 참수당할 뻔했다. 진린이 이순신을 인정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다음호에 계속>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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