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박스오피스 누가 사랑받았나... 1~10위 보니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88번째 레터는 추석 연휴 박스오피스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 말씀드리는 종합 특집편으로 준비했습니다. 설이나 추석 연휴는 극장에 사람이 몰리는 때라 담당기자의 맘은 더 분주해집니다. 흥행 귀추가 주목되는 작품의 성적은 실시간으로 챙기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휴대폰으로 끊임없이 박스오피스 체크하는 이 심정, 그런데 꼭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저는 변ㅌ... 아, 아닙니다. 레터 독자분들께선 이번 주말에라도 뭘 보러 갈까 고르실지 모르겠네요. 자그나마 참고되시라고 1위부터 10위를 짧고 굵게 모아봤습니다. 1~10위 순서는 제가 이 레터 쓰는 18일 현재 영진위 통합전산망 순위입니다.
1위 ‘베테랑2′입니다. 경쟁작이 사실상 전무한 이번 추석 극장가의 최대 승자네요. 18일 오전에 손익분기점인 400만명을 넘었습니다. 어느 정도 도달할지 궁금하네요. 현재 흥행 속도는 전작인 ‘베테랑’, ‘파묘’, ‘서울의 봄’보단 빠릅니다. 어떤 분들은 “경쟁작이 없으니 빈집털이 하는 거 아니냐” 하실텐데, 요즘 극장가에선 빈집털이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지라.
‘베테랑2′가 선전해 올해 추석 극장가는 작년에 세 작품(천박사, 거미집, 1947보스톤)이 경쟁하던 때보다 전체 관객이 많이 늘었습니다. 올 추석 4일(373만)이 작년 추석 6일(311만)보다 많거든요. 성수기 때마다 ‘장남 혹은 장녀한테 몰아주기'가 극장가 뉴 노멀로 굳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이다 응징 없고 회전문 악당이 없는 ‘베테랑2′에 대한 제 의견은 앞서 레터에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링크는 [그 영화 어때] 황정민이 싸우는 악당은 황정민이다, 영화 ‘베테랑2′). 이 영화에 대해 반응이 엇갈리는데요, 아마도 전작인 ‘베테랑’이나 ‘범죄도시’ 시리즈식 서사를 기대한 관객들이 “응?” 하시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근데 황정민(서도철)은 1편의 그 형사가 아니랍니다. 달라졌어요. 그 달라진 지점에서 저는 발전을 봤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부분을 보실까요. 1편의 황정민은 “이제부터 정당방위”라며 나쁜 놈을 때려잡으려 달려들지만, 2편에선 다른 선택을 하죠. 그런 캐릭터 변화는 시리즈물 감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모험적인 시도가 아닐까 합니다. 하던대로만 해도 기본 관객이 드는데 굳이 그렇게 ‘다르게 해보자'고 나선 거니까요. 흥행만 생각했다면 시도하기 어려운 도전이죠 그런 모험과 시도, 도전이 영화를 발전시키고 나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저는 응원합니다. 서도철 형사와 함께 늙어가며 ‘베테랑5′도 보고 싶네요.
전 레터 쓰고 한 번 더 봤습니다. 옥상에서 5대1로 벌이는 우중 액션 장면을 큰 스크린에서 꼭 또 봐야겠어서요. 류승완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이죠. 끝나면 자막이 다 올라가고 나서 쿠키 영상 있는데, 영화의 진짜 결말이 거기 들어있으니 아주 많이 바쁘지 않으시다면 보시고 나서시길.
2위 ‘사랑의 하츄핑’이츄~ 영화 관계자들이 “이러다 하츄핑 100만 되는 거 아냐?”라며 절반쯤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 100만을 넘었네요. 넘기만 했을까요. 105만도 넘으면서 역대 K애니 2위에 등극하셨츄~ 대단츄~ 저요, ‘하츄핑’ 극장에서 두 번 본 기자입니다. 첨 보고 하츄핑이 뜨겠다 싶어서 쓴 레터는 [그 영화 어때] 조정석 위협하고 전도연 제쳤다, ‘사랑의 하츄핑’ 등장츄~에서 보세요. 하츄핑이 뭔지부터 설명해보았어요. 전 올 여름 내내 하츄핑 부채 부치면서 더위 달랬습니다.
3위 ‘브레드 이발소: 빵스타의 탄생'입니다. 이것도 K애니인데요, 수 분짜리 짧은 단편이 여럿 이어집니다. 위의 스틸에서 보시는 브레드가 주인공이고 천재 이발사로 나오고요, 우유통 모양의 윌크(WILK)가 조수, 페레로 로쉐 닮은 계산담당 점원 초코와 함께 일합니다. 캐릭터를 모두 식품에서 발전시켰어요.
이 애니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요즘 아동 애니는 유튜브 없이는 못 만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등장인물이 모두 유튜브 채널에 애면글면하고, 좋아요에 전전긍긍해요. 구독자를 두고 니가 많다 내가 많다 죽자고 싸우고요. 모든 일상에 유튜브가 숨쉬듯 등장합니다.
외모는 어찌나 그렇게 중요한지. 잘생기고 예쁘지 않으면 무시당하고 도태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성형 대국인걸까요. 남한테 보여지는 게 중요하고, 모든 가치의 기준이 얼굴이라고 아동 애니부터가 이렇게 강조하니,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디서 날개를 펼 수 있을까요. 책도 좀 읽고 가끔은 별도 세면서 자라도 될텐데.
4위 ‘에이리언: 로물루스'입니다. 아직 30도 넘게 더워서일까요. 1편의 으스스함을 되살린 이번 작품을 찾는 관객이 꾸준하네요. 골치 아프게 철학이다 뭐다 신이다 뭐다 창조주다 뭐다 그런 거 다 버리고, ‘에이리언' 초기작의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그 결과 올 여름 극장가 깜짝 흥행작으로. 에이리언 포함해 4편이 맞붙는 ‘광복절 대전’ 얘기 나올 때도 이 영화가 이 정도로 잘 될 거라고 본 관계자들은 거의 없었거든요. 누적 관객 194만명. 200만 달성을 원해서인지 에이리언이 저렇게 끔찍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습니다.
5위 ‘룩백’입니다. 저의 강력 추천작입니다. 일본 애니인데요, 레터에 따로 소개하고 싶었는데, 일단 순위에 있으니 먼저 말씀드려요. 상영 시간 57분으로 이렇게 진하고 길고 뜨거운 얘길 만들어낼 수 있다니. 이런 것이 재능인가 감탄스러웠답니다.
홍보 메일에서 ‘여자친구 두 명의 우정' 어쩌구 해서 ‘또 LGBT 얘긴가' 싶었는데 전혀 아니고요.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인 두 아이가 만화를 통해 운명처럼 서로를 발견하고 같이 웃고 울고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리고.... 이하 스포라 생략합니다. 저는 어지간하면 알고 봐도 재밌어야 진짜 영화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영화는 모르고 보시는 게 나을 듯 해요.
저 스틸에서 보시면 인물의 등이 보이시죠. 저 등이 중요합니다. 나의 등을 봐주는 사람, 내가 등을 지켜보며 살아온 사람. 그래서 제목도 ‘룩백'인데, 등에 대한 비유가 계속 나와요. 꼭 만화가 아니더라도 영화나 미술, 사진, 소설, 예술 등 뭐든 간에 창작 쪽 일을 하신다면 ‘이건 내 얘기다' 하실 수 있을 듯 해요. 먼 기억 속에 두고 온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그 사람 생각에 가슴이 아플 수도.
우리가 살면서 흔히 ‘만약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라는 가정을 해보고 후회하고 되새기는데, 마블의 여러 작품에서 어설프고 혼란스럽게 마구 때려넣었던 멀티버스 서사를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 가슴 아프게 그려 보여주더군요. 그 표현 방식과 시각에도 감탄. 어느 날 그렇게 바람을 타고 문틈 너머 세계로 건너가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메가박스 단독 개봉이라 상영관을 좀 찾아보셔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에요.
6위 ‘안녕, 할부지’입니다. 푸바오 다큐죠. 저를 무척 실망시켰는데, 일단 이 다큐는 푸바오가 별로 안 나와요. 푸바오 다큐라고 하면 푸바오의 귀여운 재롱이나 한없이 천진해보이는 몸짓을 볼 수 있겠거니 기대가 되지않으신가요. 아뇨, 이 다큐는 그게 중점이 아니에요. 푸바오가 한국을 떠나서 얼마나 슬픈지, 푸바오와 이별해서 남은 사람들의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는지가 더 초점입니다. 한마디로 ‘푸바오 없는 하늘 아래 시일야방성대곡’이라고나할까요.
두 사육사분이 내내 울어요. 계속 울어요. 한 분은 “나는 푸바오를 지키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니 눈물이 계속 나시나봐요. (아니 그럼 한국에 있는 다른 두 판다는?)
다큐 분위기가 ‘이래도 안 울래’입니다. 푸바오가 한국에 없다고 하니 밥숟가락을 들다가도 가슴이 찢어지는 분, 푸바오가 한국에 없다는 생각에 길을 걷다가도 주저앉고 싶으신 분, 푸바오가 보고 싶어 날마다 직장 책상에 엎드려 대성통곡하고 있는 분들께만 권합니다.
7위 ‘파일럿’입니다. 벌써 일부 플랫폼에 유료로 풀렸더군요. 누적 468만명이네요. 이 영화가 500만을 못 넘긴 것도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조정석이 무척 잘했는데요. 이 영화를 포함해, 작품에 비해 흥행이 섭섭하다 싶은 영화가 몇 편 있는데, 마케팅 탓인지 아님 다른 요인인지. 좀 들여다볼까 싶기도.
8위 ‘임영웅: 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입니다. 누적 27만을 넘고 역대 공연 실황 관객 수로 2위에 올랐네요. 임영웅 팬들께선 만족하시겠지만, 팬심 없이 순수하게 공연 영화로 즐기기에는 과감한 시도나 신선한 포인트가 별로 없어서 아쉬울 수 있습니다. 공연 실황 관객 수로 역대 1위인 BTS의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2019)의 34만명을 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매출로는 넉넉하게 1위(78억)예요. 아이맥스와 4DX 동시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일반 티켓보다 2배 이상 비싼 데도 팬들이 기꺼이 찾아준 덕분이겠습니다.
9위 ‘스픽 노 이블'입니다. 아, 이 영화, 이것보단 훨씬 잘 될 줄 알았는데, 일 관객 5420명 무엇. 이 역시 마케팅 부진 탓인가요. 이 영화의 존재 자체를 독자님이 이걸 읽고 지금 아셨다면 그럴 가능성 농후.
공포 스릴러인데요, 포스터에 보면 맥어보이가 ‘쉿’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말 안 들었다가 고초를 치르는 가족이 죽도록 고생하는 얘깁니다. 악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말 못하는 사람, 악인 줄 알면서도 말 안 하는 사람, 악이면서도 악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등이 나옵니다.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중의적이에요.
무서운데 막 그렇게 끔찍하지 않고 오싹은 한데 의외로 피는 별로 안 보여주고요, 제임스 맥어보이가 팔뚝만으로도 공포를 퍼뜨리는 섬뜩한 악인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상황에 피해자 본인들은 전혀 역할이 없느냐 그게 아니란게 비판 포인트 중 하나예요. 알면서도 침묵하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거울이기도 하죠.
10위 ‘오지: 사라진 숲을 찾아서'입니다. 무척이나 구태의연한 미국 애니입니다. 배급사에서는 ‘에코 애니메이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에 참여했다'고 홍보합니다.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게 맞긴 맞는데 그걸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아무 감흥이 없더군요. 그럴려면 돈 들여 애니 만들지 말고 벽보나 여러장 붙이는게 가성비론 우월할텐데요. 디카프리오가 프로듀서 중 2번째에 이름을 올리긴 했던데 실제 제작에 관여하긴 한 건지. 등장인물을 이렇게 밋밋하고 매력 부족으로 만들어놓고 유명 배우 이름만 앞세우면 되나요.
제가 위에 ‘브레드 이발소’에서 유튜브에 지배당하는 애니 말씀드렸는데요, 이 애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이 화재 때문에 부모와 헤어진 오랑우탄인데요, 이 오랑우탄이 인플루언서가 돼서 사실상 모든 걸 해결한답니다. 유튜브 생방송을 해서요. 생방송으로 들이대고 보여주기만 하면 문제 끝. 아니, 정말로 환경 문제 해결에 관심있다면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해볼 거리를 아이들에게 던져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태블릿 하나 들이대고 생방송 하면 만사형통. 이게 자라나는 세대에게 하고 싶은 얘기인건지. 오랑우탄이라도 좀 귀엽게 그리던지. 애니 보시려거든 이거 말고 ‘사랑의 하츄핑' 추천합니다.
10편 중 제가 이전 레터에서 말씀 안 드렸던 ‘룩백’ 예고편 영상을 아래에 붙이면서 이번 레터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도 모르는 나의 등을 기억하는 그 사람이 곁에 있다면, 이번 주말엔 영화관 나들이라도 함께 해보시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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