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정보기관, 호출기 레바논 유입 전 폭발물 부착한 듯
이스라엘, 과거 유사 전력
“배터리 폭발 가능성 적어
배송 전 생산 단계서 개조”
‘네트워크 조직’ 헤즈볼라
통신력 손상, 군사력 타격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대원들의 무선호출기가 동시다발로 폭발한 이후 기술적으로 어떻게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두고 여러 설명이 제기되고 있다.
배후가 이스라엘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까진 무리 없이 의견이 모이지만 문제는 호출기 폭발을 어떻게 기획·조작했느냐는 것이다. 호출기에 폭발물을 넣기 위해 제작이나 유통 단계에서부터 개입했으리란 추측에 힘이 실린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CNN 등을 종합하면 어떻게 호출기 수천대가 동시에 폭발할 수 있었는지에 관한 추정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일 가능성이 높은 어떤 외부 세력이 호출기를 변형·조작했으리란 쪽으로 수렴한다. NYT는 미국 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레바논으로 수입된 호출기 안에 폭발물 수십g을 배터리 옆에 심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대만 골드아폴로사에 호출기 모델 4종류를 주문했는데, 호출기가 레바논에 도착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폭발물 부착을 완료했다는 것이다.
호출기에는 AAA 배터리가 사용됐는데, 배터리가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전문가 폴 크리스텐슨 뉴캐슬대 교수는 “작은 배터리가 불길에 휩싸이더라도 치명적인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배터리 자체가 폭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한 사이버보안 연구원도 “호출기가 (사후에) 해킹된 것이 아니라 배송 전 조작됐을 확률이 높다”고 CNN에 말했다.
통신기기에 폭발물을 부착해 조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적의 휴대전화에 폭발물을 넣은 적이 있으며, 해커가 기기에 악성코드를 주입해 과열시킨 뒤 폭발을 유도하는 사례도 있었다. 다만 호출기 생산과 유통의 어느 단계에 어떻게 개입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레바논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 모사드가 유통이 아닌 생산 단계에서부터 호출기를 개조했다”면서 “모사드는 폭발물이 부착된 보드를 장치 내부에 넣었는데, 이 보드는 암호를 수신할 수 있다. 어떠한 판독장치로도 이를 감지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로이터에 밝혔다. 이 설명에 따르면 암호화된 메시지가 호출기에 전송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호출기 제조사로 지목된 골드아폴로는 이번에 폭발한 호출기가 대만이 아닌 헝가리에서 제조됐다고 18일 밝혔다. 쉬칭광 골드아폴로 회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3년 전 헝가리 BAC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는 대만산 호출기가 레바논으로 수입돼 헤즈볼라 대원들에게 배급됐다는 NYT 보도와는 상이한 설명이다.
로이터는 여러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이번 공격이 수개월에 걸쳐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레바논 고위 관계자는 “이스라엘 모사드가 몇달 전 호출기 5000개에 폭발물을 심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월 헤즈볼라는 대원과 그 가족들에게 이스라엘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 대신 호출기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이번 사태가 헤즈볼라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데이비드 로슈 미 국방대 교수는 “헤즈볼라는 네트워크 조직으로서 실시간 통신이 잘돼야 하는데, 이제 더 이상 이런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며 “통신 능력 손상으로 헤즈볼라는 상당한 군사력을 상실했다”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복수를 다짐했다.
이스라엘은 공격 배후설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의도가 전면적인 확전인지 겁주기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레바논 저널리스트 킴 가타스는 “‘너희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헤즈볼라에 보여주려는 방법일 수도 있고, 본질적으로는 겁을 줘서 복종시키고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더 큰 보복을 당하리라는 것을 분명히 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CNN에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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