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추석에도 폭염 특보…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9월 중순인데도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선선한 바람과 함께 스포츠의 계절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한여름 뙤약볕이 떠날 줄 모르면서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폭염주의보까지 나오고 있네요.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강타하면서 스포츠 현장에서는 날씨와의 한판 대결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14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에서 열리고 있는 여자프로테니스(WTA) 500 하나은행 코리아오픈도 폭염이라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달궈진 하드코트 표면의 체감 온도는 40도가 넘는 것으로 측정됐습니다.
여자 복식 경기에서는 온열질환을 호소하는 한 선수가 기권하기도 했습니다. 17일에는 불볕더위로 경기 시작이 지연되기도 했죠. 18일에는 경기를 지켜보던 한 관중이 더위를 먹은 나머지 잠시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적절한 응급조치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선수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얼음주머니를 제공하고, 주요 경기를 치르는 센터 코트에는 선풍기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관중을 위한 선캡이나 부채 등을 나눠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대회를 주관하는 JSM(대표 이진수)의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 출신 홍다정 팀장은 “무더운 날씨에 자칫 선수들이 탈수 증세를 보이거나 온열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WTA 관계자들과 된더위 대책을 수시로 논의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홍 팀장은 또 “매일 선수들을 위해 칵테일 얼음 100봉지 이상, 관얼음 10개, 생수 150박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코트에 얼음을 공급할 필요는 없었다”라고 설명하더군요.
이번 대회가 열리는 코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장소입니다. 40년 가까이 되다 보니 낙후된 시설로 냉방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나서는 무대로는 수준 이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테니스 경기장 운영 주체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조현재)은 지붕을 설치하거나 새롭게 돔구장 형태로 개축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고위 관계자가 유럽 출장까지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공염불에 그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호주 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가 열리는 경기장은 모두 개폐식 지붕을 갖춘 코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비만 오면 방수포를 깔던 장면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졌습니다. 특히 1월 남반구의 폭염 속에서 대회를 치러야 하는 호주오픈은 센터 코트 외에도 2개의 코트에 추가로 개폐식 지붕을 설치해 선수와 관중의 쾌적한 플레이와 관람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은 조명시설도 열악해 야간 경기에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중계 방송사 카메라 감독은 “너무 어두워 플레이 장면을 놓칠 때도 많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죠.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다고 했던가요. 결국 대회 주최측이 스포츠 조명 전문 제조사인 로지를 공식 스폰서로 영입해 센터 코트와 쇼코트로 사용되는 2번 코트의 조명을 교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코리아오픈과 같은 WTA 500시리즈는 코트 15곳에서 측정한 평균값의 최소 권장 조도(빛 강도)가 1076룩스(LUX)를 넘어야 합니다. 특히 고화질(HD)로 방송되는 TV 중계가 진행될 경우 권장 최소 조도는 약 2000룩스입니다. 긴급 교체 작업을 통해 선수들은 야간 경기에도 플레이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진> 새롭게 개선된 올림픽공원 테니스 경기장 센터 코트 등의 조명시설. 테니스코리아 제공
9월 3일부터 일주일 정도 경기 안성시에서는 제17회 세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가 개최됐습니다. 대한소프트테니스협회(회장 정인선·국제정구연맹 회장·연세아이미스템의원 대표원장)와 안성시(시장 김보라)의 협업을 통해 45억 원의 예산을 들여 경기 장소인 안성맞춤 정구장의 개보수에 들어가 전체 8면 규모의 돔구장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로써 대회 기간 무더위가 찾아와도, 굵은 소나기가 쏟아져도 게임에는 아무 지장을 주지 않았습니다.
안정된 경기장 인프라 속에 한국 대표팀은 최상의 기량을 펼치며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등을 따내는 눈부신 성과를 거뒀습니다. 외국에 참가한 400여명 선수들도 최고의 시설이라며 엄지척을 하더군요.
<사진> 45억 원의 예산을 들여 돔구장으로 리모델링을 마친 안성맞춤 정구장. 최근 끝난 세계선수권대회 성공 개최의 숨은 주역이었다. 김종석 제공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중국 톈진 메이강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골프존 시티골프 차이나오픈’은 세상에 없던 골프대회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대회는 스크린과 필드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골프장에서 치러졌습니다. 16,000㎡(약 5000평) 규모의 실내 경기장은 9월 1일 개장했는데 티샷과 어프로치샷까지는 스크린골프로 진행하고 퍼팅은 실제 그린에서 플레이했습니다. 홀에 따라 그린 구역에서 벙커샷과 쇼트게임도 가능했죠. 날씨와 시간 제약 없이 도심 한복판에서도 골퍼들이 스크린을 벗어나 실제 필드에서 플레이하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가장 이상적인 도심형 골프장의 미래를 제시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여자골프 발전을 위해 발족한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은 한국의 베테랑 골퍼 배경은(39), 홍진주(41)와 태국 선수 5명을 추천 선수로 내보냈습니다. ‘스마일 골퍼’ 김하늘(36)은 골프존 추천으로 대회에 나섰죠.
시티골프장은 도심에 조성됐지만 스크린과 필드의 장점을 융합하여 완성돼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 골프장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18홀 규모로 각각 18개의 스크린과 그린이 조성됐으며 18m 탁 트인 층고에 자연 채광을 받으며 도심에서 프라이빗하게 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꾸며졌습니다.
시티 골프장 운영시스템을 개발해 진행하고 있는 골프존 시티골프 관계자는 “필드 골퍼로서 스크린골프의 한계가 어프로치와 퍼팅인데 그 부분이 해소된 느낌이다. 특히 날씨 제약 없이 플레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중국은 현재 각 시에 컨벤션 센터와 같은 행사장들에 공실이 많이 생기고 있어서 각 시장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번 대회 이후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하더군요.
<사진> 중국에서 열린 골프존 시티골프 차이나 오픈 모습. 스크린과 필드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골프장으로 날씨의 제약을 극복했다는 평가다. 골프존 제공
홍진주는 4라운드 합계 11오버파 299타로 2위를 차지했고, 김하늘이 3위(14오버파)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홍진주는 “아쉽게 우승을 놓쳤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단순한 스크린골프가 아닌 인조 잔디에서 쇼트게임과 퍼팅을 한다는 것은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천연 잔디에서의 골프와는 다른 경기였고, 공정한 규칙이 적용된 경기였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우승은 중국의 옌판판(8오버파)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대회는 스크린골프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더위, 추위, 눈, 비 등 날씨와 상관 없이 사시사철 골프를 즐길 수 있게 한 신개념 경연장으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1000만 관중 시대를 연 한국 프로야구도 악천후라는 훼방꾼의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총재 허구연)에 따르면 이번 시즌 사상 처음으로 폭염 취소 경기가 발생해 4차례나 연기돼야 했습니다. 우천 취소도 68경기에 이르렀습니다. KBO 이경호 홍보팀장은 “폭염에 따른 취소 기준은 기상청이 주의보나 경보를 발령했을 때, 관중의 안전한 관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그리고 선수들의 안전 여부를 고려해 현장 감독관이 취소를 결정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폭염 취소의 첫 번째 고려 대상은 관중이라고 하네요. 이경호 팀장은 또 “(날씨 변수를 줄이기 위해) 경기 시간 탄력 운영, 관중 편의시설 보완 등을 연구하고 있다”라며 “2개(잠실, 청라)의 돔구장이 건립될 예정이고 각 구장에 관중 편의시설이 보완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사진> 폭염으로 경기 취소를 알리는 잠실야구장 전광판 모습. 지열 탓에 온도계가 40도를 웃돌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인기가수 비가 부른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히트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다시 하나은행(은행장 이승열) 코리아오픈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심정이 바로 가수 비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울시 서초구는 2015년 국내 최초로 ‘서리풀 원두막’이라는 폭염 대비 그늘막을 거리 곳곳에 설치해 호평받았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에게는 땡볕을 잠시 피할 수 있는 도심의 오아시스였죠.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마다 심화하는 기상이변에 대처하기 위한 시설 투자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그래야 선수도 관중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글= 김종석 기자(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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