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영의 경제읽기]한국은행의 딜레마

기자 2024. 9. 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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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사이클의 도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 기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조기에 안정된 스위스를 필두로 해서 캐나다, 스웨덴, 유럽중앙은행이 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했고, 미국 연준 역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 인하를 강하게 시사한 바 있다. 이에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 역시 높아진 상황이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결정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고려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물가 상승률이 있다. 지금 한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2%를 기록하며 한국은행이 목표로 한 2%에 다다른 상황이다. 물론 명절을 전후해 나타날 수 있는 신선식품 가격의 상승이나 예기치 못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물가 상승률이 소폭 높아지는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과거 금리 인상기에 비해 국내 물가 압력이 완화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에 한국은행 총재 역시 물가를 감안한다면 기준금리 인하를 고려할 때가 되었다는 언급을 한 바 있다.

물가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바로 성장이다. 국내 경제 성장세가 강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했을 경우 과열 경기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는바,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될 수 있다. 금년 한국의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은 2%대 중반으로 2023년의 1.4% 대비 상당 수준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런 성장률 개선의 상당 부분이 수출 성장에 집중된 면이 강하며, 그 반대편에 있는 국내 내수 성장세는 여전히 부진하다. 지난해 대비 성장률의 개선세가 뚜렷함에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장과 물가 이외에도 추가로 고려할 요소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대외 금융 불안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5.25~5.5%로 한국은행 기준금리인 3.5%에 비해 약 2%의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양국 간의 금리차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에서 외국인 자금이 미국으로 유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한·미 금리차가 확대되어 있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국내 성장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양국 간의 금리차가 더욱 확대되며 자본 유출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 연준은 9월 기준금리 인하를 시사하고 있으며 금융 시장에서는 연준이 내년 말까지 약 2.0% 수준의 큰 폭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국내 기준금리 인하가 급격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면 자본 유출 우려는 제한적인바, 대외 요인에서도 기준금리 인하에 청신호가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 금융 안정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 안정은 다소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현재 한국은행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가계 부채이며, 그런 가계 부채의 증가는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동반하고 있다. 즉, 경제 주체들이 고가의 수도권 부동산 매입을 위해 가계 부채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행 3.5%의 기준금리하에서도 가계 부채의 급증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실물 경기의 둔화와 물가 안정만을 감안하면서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현재의 금융 안정 상황이 보다 악화될 개연성이 높다. 이에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수차례 수도권 부동산 가격을 언급하며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꺾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한은 총재는 ‘금융 안정을 고려한 중립금리는 이를 고려하지 않은 중립금리보다 높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국내 물가와 성장만을 감안한다면 보다 빠른, 그리고 큰 폭의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하겠지만, 부동산 가격 및 가계 부채 불안으로 대변되는 금융 안정을 고려할 경우에는 금리 인하의 속도와 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내 성장을 보면 금리를 인하해야 하고, 가계 부채를 보면 금리를 동결해야 하는 한국은행의 딜레마가 이어질 경우 국내 금리 인하에 있어서도 시장의 기대보다는 신중한 행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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