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한국의 지적 수준을 ‘갈릴레이 이전’으로 400년 후퇴시킨 공직자

기자 2024. 9. 1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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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인권위원장의 ‘창조론’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일부 종교단체의 비과학적·폐쇄적 행동으로 수많은 국민들 피해 입어
개인으로서 ‘특정한 과학적 사실’ 거부할 수 있다 해도 ‘공교육’에 편향된 시각 끌어들이려 하면 큰 문제
국가기관·공권력이 특정 종교 교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한국은 생존 경쟁력이 없는 해괴한 변이국가로 돌변해 도태될 것

1633년 1월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피렌체를 떠나 로마로 향했을 때 갈릴레이의 나이는 거의 일흔이었다. 한겨울의 추위도 힘들었을 텐데, 중간에 페스트 때문에 시골 마을에서 20일 가까이 발이 묶이기도 했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소환된 이유는 그가 전해에 출판한 <두 체계의 대화>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가르치지 말라는 1616년 교황의 지침을 어겼다고 교회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전해인 1615년에 이미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소에 고발됐었다. 고발자는 니콜로 로리니라는 도미니코 수사였다. 로리니는 1613년 갈릴레이가 자신의 제자이자 피사대학의 수학자였던 베네데토 카스텔리에게 보낸 편지를 문제 삼았다. 당시 갈릴레이는 자신이 손수 만든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측해 코페르니쿠스가 옳다는 많은 증거를 확보한 상태였고 그 결과를 로마의 유력자들에게 설명하러 다니기도 했다. 로리니가 문제 삼은 1613년의 편지, 즉 <카스텔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갈릴레이는 교회를 상대로 다소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갈릴레이 주장의 핵심은, 성경에서 언급한 천문학적인 사건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성경의 문구는 보통 사람들이 신앙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상황을 단순화시켜 기술했기 때문이다. 갈릴레이는 과학연구가 종교 교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태양중심설이 성경과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종교당국은 상황판단 능력이 없다고도 생각했다. 불행히도 갈릴레이의 기대는 어긋났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이의 이 일화는 무려 400년 전, 과학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근대과학이 종교와의 갈등 속에서 태동했다는 사실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갈릴레이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영국에서는 또 다른 형태로 종교와 과학이 대립했다. 1859년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옥스퍼드 박물관 도서관에서 열린 영국 학술협회 연례회의에서였다.

다윈의 진화론에 부정적이었던 옥스퍼드 교구의 새뮤얼 윌버포스 주교는 다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토머스 헉슬리에게 “원숭이가 당신의 할아버지 쪽 조상입니까, 할머니 쪽 조상입니까?”라고 물었다. 헉슬리는 침착하게 “원숭이를 조상으로 둔 것은 부끄럽지 않으나, 자신의 위대한 재능을 사용해 진실을 가리는 자와 연루돼 있다면 부끄러워할 것입니다”라고 대꾸했다.

아직도 진화론을 얘기하면 원숭이가 우리의 조상인가, 또는 원숭이가 왜 지금은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곤 한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오해한 결과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간과 원숭이의 조상이 같았다. 이 ‘공통조상론’에서는 인간과 원숭이가 오래전부터 서로 다른 길을 한참이나 걸어 분화해왔다. 8촌 형제들 사이에서는 당연하게도 부모·자식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고조부모가 같을 뿐이다.

몇년 전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만나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들은 우주선이 대기권을 벗어나 찍은 둥근 지구의 사진도 음모론으로 믿지 않았다. 지구가 둥글고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사실은 비교적 직관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물리현상임에도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을 결심을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지구상의 다양한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질문은 그보다 훨씬 덜 감각적이고 덜 직관적이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창조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오래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진화론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아마도 진화론에 대해 내가 아는 정도는 ‘옆집 아저씨’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놀랍게도 160년 전의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종의 기원> 1장에서 지루하게 서술한 비둘기 육종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많은 다른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1장의 비둘기 이야기를 지겹게 읽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다윈이 자신의 역작 초반부에 비둘기 육종 이야기를 들고나온 이유는 당시 영국에서 육종을 통해 독특한 비둘기 품종을 얻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육사들은 탁월한 안목으로 인위적이고 누적적인 선택을 통해 독특한 형질의 비둘기나 개 등을 만들어왔다. 사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많은 농산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인위적이고 누적적인 인간의 선택을 오랜 세월에 걸친 자연의 선택으로 바꾸었을 때 어떤 결과를 상상할 수 있을까? 인간의 호불호와는 전혀 상관이 없겠지만 자연의 선택에 호의적인 형질들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가 오랜 세월 동식물의 품종을 개량해 지금까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은 진화에 대한 강력한 정황증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동료 생물학자들은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여러 전문적인 사실들을 열거하면서 진화론은 단순한 가설적 이론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매우 잘 확립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는 나 같은 비전문가들도 진화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잘 경험할 수 있었다. 그동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수많은 변이를 양산했고 그중에 살아남은 우세종이 끈질기게 우리를 괴롭혔다. 지금도 새로운 변종이 사라지지 않고 유행성 독감처럼 아직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보다 더 생생한 진화의 현장이 또 있을까? 2021년에는 한국 과학자들이 당시까지 공개된 유전체 정보를 활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화계통을 분석하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은 아주 다른 시대에 아주 다른 분야에서 인간 인식에 돌이킬 수 없는 혁명을 일으켰지만, 이 둘을 관통하는 한 가지 원리를 포착할 수도 있다. 바로 ‘평범성의 원리’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냈다. 그 결과 지구는 더 이상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다윈은 인간을 자연사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어냈다. 인간은 더 이상 특별한 생물종이 아니다. 오랜 세월 종교는 이와 다른 교리를 가르쳤다.

성경에 따르면 지구와 인간은 이 우주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과학의 역사는 그 특별함을 부정해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우주의 ‘유일자(The One)’가 아니라 ‘여럿 중 하나(one of them)’일 뿐이다.

평범성의 원리는 20세기에도 계속 확장되었다. 1920년대 초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우리의 은하수은하가 우주 전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 성운인가 아니면 독립적인 은하인가로 논쟁이 붙기도 했다. 그러다가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가 우리 은하의 크기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드로메다는 외계의 독립된 은하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 우주에는 수천억 개의 은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은하수은하도 그리 특별한 은하가 아닌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우리의 우주 자체가 여러 개의 우주들이 모여 있는 다중우주 속의 한 우주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중우주론은 평범성의 원리가 우주 단위까지 확장된 경우라 할 수 있다. 물론 아직 다중우주가 존재한다는 실험적 증거는 없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안창호는 인사청문회에서 진화론을 부정하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었다. 이런 발언은 한국의 지적 수준을 400년 전 갈릴레이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과도 같다. 갈릴레이의 후예로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현실이 무척이나 참담하다. 지난 문재인 정권 초기에도 창조신앙을 신봉했던 장관 후보자가 사퇴한 경우가 있었다. 그는 진화론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으나 결국 낙마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이었으나 창조론을 옹호하는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과학기술인들의 입장에 힘을 보탰었다.

안창호 위원장의 더 큰 문제는 고위공직자로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공교육이라는 가장 공적인 영역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점이다. 개인으로서야 얼마든지 종교와 신앙을 가질 수 있고 특정한 과학적 사실을 거부할 수도 있다. 나의 훌륭한 동료 과학자들 중에는 매우 신실한 신앙을 가진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신앙과 종교적인 율법이 속세의 공적인 활동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너진다. 아직도 제정일치를 유지하는 몇몇 나라가 종교의 족쇄로 국민들을 옥죄는 모습을 우리는 여전히 목격하고 있다. 다른 공직도 아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이끌 사람이 특정 종교에 편향된 시각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을 넘어 아예 공적 체계 안으로 유입한다면 과연 국민의 인권이 불편부당하게 지켜질 수 있을까? 당장 성소수자 등의 인권이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만약 국가기관이나 공권력이 특정 종교의 교리에 따라 움직인다면, 최첨단의 인공지능 기술이 세상을 급변시키고 있는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이 가장 생존 경쟁력이 없는 해괴한 변이국가로 돌변해 재빨리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에 일부 종교단체의 비과학적이며 폐쇄적인 행동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과학적 감수성이 떨어지며 심지어 가끔 과학에 적대적이기도 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한 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수많은 미국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실도 우리에게는 큰 반면교사이다. 이는 예수님도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만약 지금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아마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실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그리고 과학자의 것은 과학자에게.”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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