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부산시장은 지역문화진흥법을 지키고 있는가
문화란 황무지를 개간해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게 하는 과정으로 종종 비유된다. 이런 이유로 문화의 성숙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중장기적인 문화정책의 입안과 지속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지역문화의 왜곡된 상황을 극복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이 법의 핵심은 지자체장은 5년 단위로 그 지역문화의 진흥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에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2019년부터 부산을 비롯한 전국 지자체는 각 지역의 5개년 지역문화 진흥 정책을 수립해 문광부 장관에게 보고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
서두에 지역문화진흥법을 이야기한 이유는 최근 부산시의 초법적인 문화 행정을 문제삼고자 함이다. 문화정책의 입안과 실천에 있어 최소한의 기본법도 지켜지지 않은 이러한 관행을 더는 지켜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시는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 퐁피두 미술관 분관의 부산 유치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곧 협약을 앞두고 있다는 발표 내용을 보더라도 오래 전부터 기획되어 온 사안으로 판단된다. 부산시가 이를 추진하는 근거로는 박 시장의 선거 공약이었다는 점을 내세운다. 선거 공약을 확인해보니 세계 유명 미술관을 유치한다고 되어 있기는 하다.
문제는 선거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검증하는 과정의 공론화와 적법성이다. 시장이 공약을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이토록 졸속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급해도 부산시는 지역문화진흥 조례 제 14조에 명기한 ‘부산시 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했다. 부산지역문화 진흥을 위한 어떠한 사업개발이나 정책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조례에 정해두고 있다. 특히 문화 정책 입안은 관련 영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심의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진척이 더딘 박 시장의 공약인 부산문학관 건립은 지역문학인 중심의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추진 중이다. 이런 상식적인 과정이 퐁피두 미술관 분관 유치에는 왜 적용이 되지 않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부산시는 계속 유독 퐁피두와의 협의 과정, 나아가 협정 체결과정은 공개할 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 절차상의 문제 못지 않게 문화사대주의적인 발상도 문제이다. 로컬에 기반하지 않은 글로벌이 가능한 것인가? 외국의 유수 미술관의 작품을 가져다 전시만 하면 부산지역 문화가 갑자기 세계적인 문화로 급부상, 급성장할 수 있는가? 우리 시대 문화예술 발전의 방향은 소위 지역의 문화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문화를 창출해나가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인 추세도 그러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역문화를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시키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남의 기존 문화를 가져와서 보여주는 것으로 지역문화가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문화로 격상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문화의 성장이란 그 지역의 장소성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 예술인의 창조성에 좌우된다.
부산시가 부산지역 미술발전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현재의 부산시립미술관과 부산현대미술관, 그리고 부산비엔날레와 바다미술제를 세계적인 수준으로까지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중장기 정책부터 입안하는 것이 맞다. 늘 부족한 예산 때문에 두 미술관과 두 미술 행사가 그의 이름과 권위에 맞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시민에게 검증도 되지 않은 외국 미술관 분관 유치를 위해 엄청난 세금을 쓰겠다는 발상 자체가 반시민적이다. 이 지면에서 모든 걸 다 말할 순 없지만 아무런 공론화 과정없이 타당성 조사까지 끝내놓고 행안부에 중앙재정투자심사를 의뢰하는 이런 발상은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의 일천함과 몰상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이다.
끝으로 부산시의 문화행정 졸속처리와 몰상식의 극치를 하나 소개한다. 밀실 행정을 문제 삼아 시민단체가 이를 공식적으로 공론화하자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부산시 주최의 시민토론회와 관변단체 동원 기자회견을 했다. 야만의 시대 군사정권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눈과 귀가 밝은 시민이 이런 촌극을 관람하고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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