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종합설비사 차릴까요? [세상읽기]

한겨레 2024. 9. 18.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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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별방 프로젝트’ 현장 모습. 필자 제공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제천간디학교 공간생산위원회(공생위). 멋들어진 이름이나 사실은 ‘근력’을 사용해 학교 시설을 개선하는 학부모 자율조직이다. 구성원은 40여명인데 매달 한번씩 작업에 참여하는 인원은 평균 15~20명 안팎이다.

충청북도교육청 폐교 역사 자료 기록을 찾아봤다. 선림초등학교. 1957년 개교, 1995년 폐교. 이 건물을 사단법인 간디공동체가 2002년에 인수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향토사적지’ 안에서 살아가듯 조마조마하다. 방수, 단열, 전기와 소방 시설 등을 세심히 지켜봐야 한다. 총면적 1600㎡ 정도인 기숙사 건물 역시 늘 사람의 손길을 요구한다. 이런 어려움과 빈틈을 학부모들이 나서서 메워줬다.

기억에 오래 남는 작업은 2018년 8월에 벌인 ‘별방 프로젝트’이다.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이 설계한 우리 학교 기숙사 건물 안뜰에는 3층 높이의 구조물이 있다. ‘별 보는 방.’ 모양은 아이스크림콘처럼 생겼는데 중심이 비어 있다. 아이들이 그곳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초롱초롱한 별들을 볼 수 있다.

2017년 이른 봄. 이 별방에 원인 모를 불이 났다. 연기에 그을린 철골과 타다 남은 방부목들이 흉측하게 붙은 채 방치됐다. 당시 3학년이던 박우제가 내게 찾아와 ‘별방 리모델링’을 주제로 논문을 써보겠다고 제안했다. 7개월쯤 지난 연말. 우제가 논문에서 제안한 설계도를 보니 제법 쓸 만했다. 이듬해. 당시 이인호 공생위 위원장(건축설계사)과 조율하여 그 아이의 설계를 실제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실행은 8월 두번째 주말,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이뤄졌다. 각자 그라인더, 드릴, 용접기, 목공용 원형톱 등을 이용해 낮은 층부터 3층 높이 공간에 매달려 동시 작업을 펼쳤다. 별다른 기술이 없던 나는 ‘잡부의 소임’을 다했다. 그라인더로 에이치빔을 갈아내거나 갈색 페인트로 철골 구조물 부분을 칠하기만 했다. 비계 사이에 설치된 작업 발판이 계속 움직였기에 덜덜 떨며 칠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21년 1월 제25차 공간돌봄 활동공지. 필자 제공

공생위의 손길이 닿는 곳은 교내 거의 모든 공간이다. 예초기로 잡풀 정리하기, 오일스테인 칠하기, 낡은 데크 보수, 기숙사 벙커침대 제작, 도서관 책장 추가 설치, 강당 내부 시설 개선, 밴드 연습실 리모델링, 지붕 누수 보수…. 작업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자 “다들 직장 은퇴하고 ‘간디종합설비사’를 함께 차리자”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공생위가 작업을 마치고 나면 학교가 환해지는 기분이 느껴진다. 외부 손님들은 방문 후기에 “시설물들은 낡았지만 애정을 담아 고쳐 쓰고 돌보는 느낌을 준다”고 전한다. ‘공간 돌봄의 날’(공돌날), 여러 단위의 학부모 소모임들이 공생위 위원들에게 점심밥을 만들어 베푼다. 어떤 달에는 장학회에서, 다른 달에는 4학년 부모들이 맡는 식이다. 공돌날 점심 무렵 운동장 한구석에선 땀에 전 작업자들의 함박웃음이 연이어 터진다. 함께 일하면서 땀을 흘리다 보면 나이와 직업을 뛰어넘어서 사람들 사이에 더 깊은 우정이 싹튼다. 모든 일을 마친 뒤 저녁에는 ‘간디마을센터’에 모여 뒤풀이를 한다. 손재주가 형편없어 만년 ‘잡부’ 신세인 나는 다른 공생위원들에게 ‘유쾌한 놀림 대상’이 되곤 한다. 즐겁기만 하다. 주말 공돌날, 다른 일정과 겹칠 때가 잦다. 하루 동안에 벌어졌던 에피소드를 막걸리 한잔씩 나누며 듣는 이 흥겨운 모임에 꼭 참여하려 애썼다. 수백킬로미터를 운전해 초저녁에 합류한 적도 여러번 있다.

올가을 공생위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간디마을센터 건물 뒤편에 신규 교사들이 사용할, 소박한 관사를 지을 예정이다. 이 숙소는 졸업생들이 돌아와 ‘덕산면 몇달 살이’를 시도하도록 빌려줄 수도 있다. 씨앗 기금도 3천만원 정도 모았기에 일단 시작하려 한다. 작업 기간은 30~45일 정도를 예상한다. 공생위 위원들은 3~4개의 작업 모둠을 편성하여 일감을 배분한다는 작전을 짜고 있다.

지난 7년간 공생위 조직이 성장, 분화,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학부모들이 어떻게 대안적 공간을 형성해나가는지 확연히 짚어볼 수 있다. 공생위는 스스로 작은 힘을 보태어 학교 공간을 새롭게 생산하러 달려왔던 자조 모임이었는데, 어느덧 사람들 사이를 자연스레 연결하는 대안교육 마당의 중요한 축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간디종합설비사’ 합류. 매력적인 은퇴 설계 같다.

※제천간디학교 ‘별 보는 방’ 재생 프로젝트. 영상 오정훈 다큐멘터리 감독(제천간디학교 졸업생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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