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텔 `몰락`… 삼성·SK에 불똥 튄다

박순원 2024. 9. 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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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대세 AI시대 대응 못해
TSMC 포함땐 세계 5위로 밀려
美정부 지원따라 韓기업과 경쟁
K-반도체 범국가 차원 지원 필요
사진=연합뉴스

30년 가까이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반도체 제국 인텔이 엔비디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밀리며 세계 4위로 주저앉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인 TSMC를 순위에 포함하면 간신히 톱5에 턱걸이 한다.

18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인텔은 올해 3분기(7~9월)에 전 분기(121억6000만달러) 대비 소폭 줄어든 121억34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치며 4위(점유율 6.9%)로 밀려날 것으로 추산됐다. AI 돌풍의 주역인 엔비디아(281억300만달러)가 지난 2분기에 이어 1위 자리를 지켰고, 삼성전자(217억1200만달러)와 SK하이닉스(128억3400만달러)가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옴디아는 예상했다.

이번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인텔은 TSMC에도 밀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TSMC는 지난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173억달러) 대비 30% 이상 늘어난 224억∼232억달러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인텔의 몰락은 사실 수년 전부터 예상됐던 일이지만, 2018년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뺏기며 '반도체 왕좌'에서 밀려났을 때와는 상황이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소위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바람을 타고 단기적으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 게 요인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의 대세로 부상한 AI 시대에 대응하지 못한 인텔의 실기가 더 큰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안방 시장인 서버와 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는 점이 뼈아프다. 복수의 시장조사업체 조사에 따르면 인텔은 지난해까지 90% 안팎의 서버용 CPU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지난 2분기 기준으로는 70% 중반대에 머물렀다. PC용은 80%대 점유율에서 70%대 초반까지 밀려나 있는 상태다.

AMD 등 경쟁사들의 성장도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서버용 CPU를 제작하기 시작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인텔은 뒤늦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신사업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TSMC의 아성은 물론 10%대 점유율을 기록 중인 삼성전자도 넘지 못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부문을 분사하는 등 재무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텔은 지난 16일(미국시간) "인텔파운드리서비스(IFS)를 분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인텔은 IFS의 기업공개(IPO)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독일과 폴란드의 반도체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2년간 중단하고 말레이시아의 제조 프로젝트도 보류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인텔의 몰락이 30년 넘게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 업체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닐 수 있다고 조언한다. 먼저 1위에 안주해 기술혁신을 등한시한 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AI 시대를 맞아 데이터 동시 처리 속도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이 급속도로 부상했고, 이에 적시 대응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지난해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한 바 있다.

또 전략산업인 반도체에서 자국 기업의 몰락을 좌시하지 않고 미국정부가 IFS를 적극 밀 경우 2030년까지 파운드리를 포함해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 되겠다는 삼성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IFS의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미 정부가 마이크론을 거국적으로 지원할 경우 HBM에서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도 버거운 경쟁을 해야 한다.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D램 점유율은 43.5%로 전 분기보다 0.5%포인트(p) 하락한 반면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34.2%로 같은 기간 3.2%p 상승했다. HBM은 D램을 쌓는 방식으로 만드는 만큼, SK하이닉스의 HBM 선전이 점유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AI 반도체 전쟁에 돌입한 만큼, K-반도체 지원에 한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정부는 이미 자국기업 밀어주기에 나섰다. 국방부에 공급할 30억달러 규모의 군사용 반도체 제조 파운드리를 인텔에 넘겼고, 아마존 웹서비스(AWS)에 들어가는 인공지능(AI)용 맞춤형 칩 파운드리도 인텔이 수주하는 등 '인텔 살리기'에 나서는 중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인텔은 과거 CPU를 가장 잘 만드는 기업이었지만, AI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실적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삼성 등이 인텔의 흐름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선 차기 HBM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 우위에 있어야 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TSMC의 파운드리 점유율을 맹추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순원기자 ss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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