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응급실 뺑뺑이’로 얼룩진 추석, 정부는 ‘고비 넘겼다’ 자찬
추석 연휴 우려했던 대로 ‘응급실 뺑뺑이’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연휴 첫날인 14일 충북 청주에선 하혈을 하는 25주차 임신부가 병원 75곳에서 거절당해 6시간여 만에 응급처치를 받았다. 다음날 광주에서는 손가락 절단 환자가 90㎞ 떨어진 전북 전주에서 수술을 받았고, 16일 강원도에서도 안구가 파열된 한 남성이 여러 지역을 헤매다 15시간 만에 겨우 수술을 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18일 연휴 기간 문을 연 의료기관은 9781곳으로 응급의료체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고, 대통령실도 “남은 의료진이 열심히 지원해준 덕분에 큰 혼잡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연휴 기간 내원 환자가 올 설에 비해 20% 이상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경증환자의 본인부담금을 대폭 올린 데다 “열이 많이 나거나 배가 갑자기 아픈 것,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많이 나는 것은 경증”이라는 정부의 겁박에 시민들이 의료서비스 이용을 자제한 탓이라는 걸 모르는가. 정부는 이송거부 사례에도 “전공의 이탈로 인해 새롭게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이전부터도 있었던 문제”라는 해명을 내놨을 뿐이다.
정부는 한술 더 떠 비상 응급 대책을 촉구하는 소방대원들의 입까지 막았다. 일부 대원의 언론 인터뷰로 응급실 상황이 알려지자 소방청은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대원의 언론 접촉 등을 통제하는 내용의 공문을 돌린 것이다. 일부 상황이 전체로 비칠 수 있어서라는데, 소방관의 입을 막는다고 응급실 뺑뺑이가 감춰질 일인가. 정부가 현실을 감추는 데만 급급하니 응급실 대란을 지켜보는 국민은 더욱 불안하다.
더 큰 문제는 사태 해결을 위한 여·야·의·정 협의체가 첫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전제 조건으로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과 복지부 장차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료계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전공의협의체 등 주요 단체 참여를 전제조건으로 내건 야당의 참여도 불투명하다. 이런 와중에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료개혁을) 괴롭더라도 차근차근 밀고 나가”겠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안이한 상황인식이다. 의료대란에 시민 불만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것을 모르는가.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문책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의료계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의료계도 원점 복귀라는 억지는 그만 부리고 협의체에 참여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가 환자들이란 점에서 협의체에 환자 단체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협의체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의료개혁의 물꼬를 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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