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동시다발 ‘삐삐 폭발’…누가 삐삐에 폭탄 심었나

최우리 기자 2024. 9. 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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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시오스 “이스라엘 계획 발각될 우려 일자 실행”
헤즈볼라도 배후로 지목…전면전 우려 다시 고조
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가 폭발해 최소 9명이 다치고 3천명이 부상을 입었다. 한 슈퍼마켓 CCTV에서 폭발 당시 찍힌 영상 갈무리. 출처 엑스(X)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무선 호출기(삐삐)가 폭발해 28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나온 사건 뒤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스라엘이 지목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 발발 이후 전면전은 아슬아슬하게 피해왔는데, 헤즈볼라가 이번 사건 뒤 보복을 다짐하면서 가자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다시 나온다.

헤즈볼라는 17일(현지시각) 삐삐 폭발 사건 뒤 성명을 내어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며 “(이스라엘은) 공정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보복을 다짐했다. 이스라엘은 이전 요인 암살 등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인지에 대해 확인하지 않았다.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사전에 알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익명의 미국 당국자 3명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이 계획했던 일을 실행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한 전면전의 시작을 알리는 기습용으로 사용할 계획이었는데 헤즈볼라에 사전에 발각될 우려가 일자 계획을 변경해 이번에 공격을 실행했다고 익명의 당국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이스라엘이 “계획을 사용하거나 버려야 할 시점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매체는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날 공격 몇분 전에 미국에 공격 계획을 통보했으나 세부 내용은 알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 전시 내각이 헤즈볼라와의 전투로 피란 중인 이스라엘 북부 주민 6만명의 귀환을 가자 전쟁 공식 목표 중 하나로 편입한 다음날 이뤄졌다.

17일(현지시각) 레바논 남부 항구 도시 시돈에서 민방위 응급 구조대원들이 삐삐 폭발로 다친 남성을 들것을 이용해 옮기고 있다. 시돈/AP 연합뉴스

가자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 북부와 레바논 남부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전투를 벌여왔다. 이 때문에 레바논에서 약 470명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40여명이 숨졌고, 가자 전쟁의 불길이 레바논 등 다른 중동 지역으로 옮겨붙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가자 전쟁 초기부터 있었다.

이런 우려는 지난 7월30일 헤즈볼라의 최고위급 군 지휘관이자 전략부대 수장인 푸아드 슈크르가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아 사망하면서 고조됐다. 지난달 25일에는 이스라엘이 전투기 100여대를 동원해 레바논 남부를 공습하고 이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영토로 드론과 로켓 320발을 쐈다. 서로 상대방의 공격을 격퇴했다고 주장하며 확전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삐삐 폭발은 가자 전쟁 발발 이후 헤즈볼라에 가장 큰 타격이라는 평가가 나와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갈등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삐삐 폭발은 레바논 전역과 다마스쿠스 등 시리아 일부에서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며 헤즈볼라 대원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피해를 당하여 충격이 더욱 컸다. 삐삐 폭발로 다친 약 2800명 중 상당수가 신체가 절단되고 눈이 머는 피해를 입었다.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인 모지타바 아마니도 갖고 있던 삐삐가 폭발하면서 한 눈을 잃고 다른 한쪽 눈도 중상을 입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가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 관계자 2명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이란 반관영 메흐르 통신은 “주레바논 이란대사관은 아마니 대사가 잘 치료받고 있으며 그의 건강 상태와 시력과 관련한 소문은 모두 허위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헤즈볼라가 레바논의 심각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여전하다. 뉴욕타임스는 “헤즈볼라에 충성해온 사람 중 일부도 이스라엘과의 싸움의 대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짚었다. 레바논에서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 전투 탓에 약 10만명의 사람들이 집과 직장을 잃었다.

미국의 중동 평화 노력은 큰 타격을 받았다.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은 이스라엘을 규탄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에 가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미르 사이드 이라바니 유엔 주재 이란대사는 17일 열린 유엔 긴급회의에서 “이스라엘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지난 7월31일 자국 수도 테헤란에서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암살당한 뒤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으나 17일까지 뚜렷한 움직임은 없다. 삐삐 공격 발생 하루 전날인 16일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했지만 이란은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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