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철거’ 베를린 미테구, 의혹 휩싸인 대체 조형물 설치 계획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 철거를 추진하고 있는 슈테파니 렘링어 미테구청장이 이 문제로 한국과 일본 양쪽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며 이를 ‘부당한 개입’이라고 비판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소녀상을 대신해 미테구에 전시 성폭력 반대 의미를 담은 새 조형물을 설치하겠다고 신청한 단체가 렘링어 구청장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돼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18일(현지시각) 독일 공영방송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RBB)은 렘링어 구청장이 소녀상 철거를 두고 영향을 미치려는 외부의 개입을 비판했다고 전했다. 보도를 보면, 일본 대사관은 소녀상이 존치될 경우 도쿄와 베를린시가 맺고 있는 자매 결연을 종료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방송은 일본 대사관이 이런 의혹을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쪽에선 지난 4∼7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단장으로 한 야당 의원단이 미테구청장을 찾은 것을 두고 우려를 드러냈다. 렘링어 구청장은 방송에 “외국 외교관과 국회의원들에 의해 압력을 받는 건 부적절하며, 이 문제를 논의해 달라는 취지로 의회 상원과 외교부에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송은 렘링어 구청장이 일본 정부의 압박을 받아 소녀상을 치운다는 인상을 주길 원치 않는다고도 짚었다.
이에 대해 소녀상을 설치했던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는 “렘링어 구청장은 이 문제를 한일 외교갈등으로 비화시키고 있다”며 “일본은 식민지 가해국이고, 한국은 피해국이었는데 양국이 마치 동등한 위치에서 외교적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는 관점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미테구는 소녀상을 철거하는 대신 보편적인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새 조형물을 설치할 계획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 추진 과정 또한 석연치 않다. 독일 매체 노이에스도이칠란트(ND)는 ‘분쟁중 성폭력 방지협회(SASVIC)’라는 단체가 지난 7월 중순 미테구청에 조형물 설치 신청서를 냈다고 16일 보도했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 인터넷 웹사이트를 구축 중인 신생 조직으로, 미테구 의회가 소녀상 존치 결의안을 논의한 다음날인 6월21일 설립 신고를 마쳤다. 지난 5월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일본 외무상을 만나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히며 동상의 존치 여부가 문제된 뒤의 시점이기도 하다.
코리아협의회는 이 단체가 조형물 설치 신청서를 낸 직후인 7월19일 렘링어 구청장과 소녀상 존치를 요청하는 면담도 했다. 당시는 조형물 신청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담당 위원회 심사도 거치기 전인데다, 구청 관계자는 노이에스도이칠란트에 렘링어 구청장은 ‘분쟁중 성폭력 방지협회’의 신청서가 들어온 것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 면담에 참석했던 한 대표 등은 렘링어 구청장이 이미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기리는 조형물 신청이 들어왔다”며 다음해 4월 제막식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반박했다.
노이에스도이칠란트는 이 단체 공동대표 2명 중 1명인 틸로 푹스가 렘링어 구청장과 같은 미테구 녹색당 소속인 점도 주목했다. 미테구 좌파당의 잉그리드 베르테만 의원은 이 매체에 푹스 의원과 렘링어 구청장이 오랜 기간 같은 계파 소속이었고, 서로 잘 아는 사이일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의 또 다른 공동대표인 다니엘 발터는 현재 컨설팅 업체 소속으로, 과거 방산업체 ‘에어버스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 자회사 근무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이 단체는 영국 작가 레베카 호킨스의 작품을 새 조형물로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위안부’를 비롯해 이라크 소수민족 야지디족과 르완다, 우크라이나 등 16곳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상징하는 기념물을 세운다는 것이다. 호킨스는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희생자들을 위한 영국 시민단체 ‘라이따이한에게 정의를’의 이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다. 호킨스는 “특정한 생존자 집단 아닌 전 세계 모든 그룹(전시 성폭력 피해자)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조형물 설치 신청이 소녀상 철거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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