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보 넘나든 남재희 前 노동부 장관 별세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9. 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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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화국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진보(혁신)와 교류하기 위해 애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3~1994년에는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보수 정권 핵심 인물로 있으면서도 진보와 활발히 교류했다.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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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의원 거친 5공 핵심이지만
'광주민주화운동' 명칭 관철
파업현장 공권력 투입 반대

5공화국 핵심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진보(혁신)와 교류하기 위해 애쓴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0세.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재학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 씨가 서울대 법학과에 부정 편입학하자 반대 시위를 주도한 바 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한 뒤 민국일보를 거쳐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지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까지 강서구에서 4선을 역임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하고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두 번 역임하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노태우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5·18 광주사태' 명칭 변경이 논의됐을 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제안해 관철시켰다. 당시 야당은 '5·18 광주민주화투쟁'이라는 용어를 주장했다.

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3~1994년에는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이때 노동계 요구를 받아들여 기존 '근로자의 날'(3월 10일)을 5월 1일로 바꿨다. 당시 노동부 안은 명칭도 '노동절'로 변경하자는 것이었지만 보수 진영 반발을 고려해 '근로자의 날'을 쓰기로 했다. 이후 5년간 호남대 객원교수를 역임하며 정치 문제를 강의했다.

그는 보수 정권 핵심 인물로 있으면서도 진보와 활발히 교류했다. 스스로 자신을 '체제 내 리버럴'이라고 표현했다.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현대중공업의 파업 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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