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업은 영풍,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선공… 소송전 간다
칼 뺀 고려아연 "영풍 핵심자산 넘겨 배임… 법적 대응"
중국계 자본에 기술유출 우려… 정치권 등도 합병 반대
영풍이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지분을 50% 가까이 확보하기 위한 공개매수에 나서자, 고려아연이 장형진 영풍 고문을 포함한 경영진에 대해 법적대응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영풍의 대표이사가 구속된 상태에서도, 회사핵심 자산을 사모펀드에 넘겨 배임 등에 해당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영풍은 고려아연보다 지분율이 두 배가량 높아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고려아연 지분율이 영풍 측을 넘어섰다"고 상반된 주장을 한 바 있어 72년 동맹의 끝이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고려아연 "영풍 핵심자산 MBK 넘겨…배임 해당"= 고려아연은 18일 자료를 내고 "이번 공개매수는 대표이사 2명(박영민 영풍 대표, 배상윤 석포제련소 소장)이 구속되고, 범죄와 무능경영을 책임져야 할 영풍의 장형진과 이사 등이 중국 등 해외 거대자본을 등에 업은 사모펀드와 결탁해 사적인 이익만을 목적으로 상장법인 영풍을 사유재산처럼 불법행위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어 "영풍이 MBK 주주간계약에 해당되는 이른바 경영협력 계약을 체결하고 영풍과 장 고문, 그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사실상 MBK에 넘겼다"며 "영풍이 보유하는 고려아연 주식에 대해 콜옵션과 처분권한도 넘겨 사실상 영풍의 대부분의 자산을 처분했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올 상반기 말 기준 영풍의 개별기준 자산총액은 2조3000억원(연결기준 5조5838억원)인데,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의 주식 가치는 공개매수 가격 66만원 기준 3조4774억원이라고 전했다.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의 주식은 사실상 영풍이 보유한 가장 가치있는 재산인데 이를 MBK에 넘겼다는 주장이다.
고려아연은 "이런 자산을 영풍이 MBK에 모두 넘기고 그 이익 또한 MBK가 얻도록 한 것은 상장법인 영풍에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중대한 위법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며 "장형진 고문과 영풍의 이사들은 업무상 배임 등 형사책임과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영풍 석포제련소 사망사고 등 각종 중대재해로 대표이사 2명이 동시에 구속돼 있어 영풍 이사회에 3명의 사외이사들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회사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영풍의 사외이사들 역시 이에 대한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려아연 지분율 놓고 말 바꾼 영풍=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지난 13일 고려아연 지분 최소 6.98%에서 최대 14.61%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공개매수에 나섰다고 공시했다. 최대치를 확보할 경우 영풍 측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47.7%까지 높아진다.
이번 공개매수에 대해 정치권 등에서 '적대적 M&A'라는 비판이 일자 영풍 측은 "이달 기준 장씨 일가(영풍) 지분율은 33.1%로 최씨일가(고려아연) 15.6%보다 2배 높다"며 "현대차, 한화, LG 등 기업들이 비즈니스 파트너십만 공시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우호 지분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2대주주와 지분격차가 큰 만큼 적대적 M&A가 아닌, 1대주주의 경영권 강화가 목적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영풍은 지난 3월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 해외 계열사인 HMG글로벌에 대한 신주 발행에 대해 무효 소송을 내면서 "고려아연은 한화 H2에 대한 유상증자에 이어 작년 11월 자사주를 한화, LG화학 등의 자사주와 상호교환하고 한국투자증권 등에 매각해 우호지분 10.7%를 확보했다"며 "작년 9월 HMG글로벌에 신주 5%를 배정한 이후 고려아연 경영진의 지분율이 영풍 측을 넘어섰다"고 상반된 주장을 한 바 있다.
영풍은 MBK파트너스와 함께 공개매수 사실을 공시하고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문제의 발단은 최윤범 회장이 장씨와 최씨 일가의 공동경영정신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회사를 장악하려고 함에 있다"며 "직계 포함 지분 2.2%에 불과한 최 회장은 영풍과의 협력관계를 종결하고, 영풍과 장씨 일가의 경영참여를 봉쇄하면서 고려아연의 자금을 이용해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는 "공개매수자들과 같은 재무적 투자자나 실패한 경영자인 영풍 측 경영진들이 당사의 현 경영진을 대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약탈적 투기자본과 사회적 지탄을 받은 기업의 탐욕과 결탁으로부터 반드시 회사를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올 3월 주총 이후 고려아연은 영풍이 갖고 있던 서린상사 경영권을 확보했으며, 영풍 석포제련소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을 거절하며 선긋기에 나섰다.
◇정치권·소액주주는 고려아연 손 들어줘= 정치권에서는 해외 기술유출 등을 우려하면서 영풍의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적대적 M&A'로 보고 있다. 박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남원)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MBK파트너스가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세계 1위 기업의 독보적인 기술들은 해외로 유출되고 핵심인력들의 이탈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두겸 울산시장과 울산시의회도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며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펼치고 120만 시민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울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에 영풍 측은 "MBK 펀드에 출자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은 국내·세계의 유수의 연기금들과 금융기관들로 중국계 자본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 주장에 반박했다.
소액주주들도 고려아연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운영진은 최근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고려아연과 같이 주주환원율 최고의 회사는 소액주주가 작은 힘으로라도 지켜내, 동학개미가 때로는 회사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액트 운영진은 고려아연의 상반기 주주환원율 71%(개별 61%)와 실적·주가 호조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이들은 "고려아연은 성장전략 '트로이카 드라이브' 덕분에 실적이 가능했고, 그 주체가 현 경영진인 것은 명확해 보인다"며 "현대차, LG화학, 한화와 배터리 동맹을 통해 회사의 미래를 펼쳐가는 중으로 소액주주로서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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