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등장 13년…"악성 난치암 완치 길 열렸다"

이지현 2024. 9. 1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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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종양학회 학술대회
MSD 키트루다·BMS 여보이 등
10년 넘은 면역항암제 재조명
난치암 장기생존 연구 다수 발표
"흑색종·유방암 완치 가능해져
간암·위암 등에 새 이정표" 평가
17일(현지시간) 폐막한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4)’ 참석자들이 미국 머크(MSD) 등 글로벌 제약사들의 전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닷새 일정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177개국 4만여 명의 암 전문가가 참가했다. /이지현 기자


‘암과의 공존.’

지난 13~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3대 ‘암 올림픽’ 유럽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ESMO 2024)를 관통한 화두다. 지난해 250억달러(약 33조3000억원)로 매출 세계 1위 의약품에 오른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와 세계 첫 면역항암제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여보이’가 시장에 나온 지 올해로 각각 10년, 13년을 맞았다.

몸속 면역계가 암을 잘 찾아 공격하도록 돕는 면역항암제가 등장한 뒤 암 정복 개념은 바뀌었다. 과거엔 정상 조직을 망가뜨리더라도 암을 박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젠 다양한 도구로 암 성장을 억누르면서 기대 수명을 늘리는 방향으로 치료법이 진화했다. 올해 ESMO에선 이런 ‘패러다임 전환’의 과학적 근거 발표가 잇따랐다. 암이 ‘걸리면 죽는 병’을 넘어 ‘관리하는 병’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악성 유방·피부암, 장기 생존 시대로

난치 암 장기 생존 시대를 보여준 것은 BMS의 면역항암제 ‘옵디보’와 ‘여보이’다. 세계 최초 병원인 영국 로열마스든병원의 제임스 라킨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이들 치료제를 투여한 악성 피부암(흑색종) 환자 43%가 10년째 생존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흑색종은 진단받으면 1년도 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암이다. 하지만 이들 치료제를 투여한 뒤 3년간 암이 커지지 않은 환자들은 10년이 지난 뒤에도 모두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암이 완치돼 암으로 숨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연구진은 평가했다. 10년간 추적 관찰한 환자의 생존 기간(OS) 중간값은 71.9개월에 이른다. 상당수가 6년 넘게 삶을 이어갔다.

허가받은 활용 요법이 40개에 달해 ‘킹트루다’로 불리는 키트루다는 악성 유방암인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 장기 생존 시대를 열었다. 전체 유방암 환자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삼중음성 유방암은 진행이 빠르고 치료 성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이암 환자 생존 기간이 1년 남짓이라 ‘난공불락의 암’으로 불린다.

세계 의료진은 이 암에 걸린 초기 환자에게 수술 전후에 키트루다를 투여하는 방식으로 정복해가고 있다. 피터 슈미드 영국 바츠암연구소 교수는 이런 치료법이 환자의 사망 위험을 34% 줄여준다는 것을 입증했다. ‘암 완치율’로도 불리는 5년 생존율은 86.6%였다. 환자 상당수가 암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간암·위암 치료 성과도 잇따라

키트루다가 특정 유전자 변이(HER2)를 가진 말기 위암 환자 생존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입증했다. 해당 치료법을 처음 제안해 글로벌 연구를 이끈 라선영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1990년대 4기 위암 환자 생존 기간은 6개월이었다”며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가 차례로 추가된 뒤 국내 HER2 변이 위암 환자 생존 기간은 2년까지 길어졌다”고 했다.

간암 치료 분야에서도 새 ‘이정표’가 마련됐다. 로렌자 리마사 이탈리아 후마니타스대 종양학과 교수는 수술조차 못 할 정도의 말기 간암 환자도 오래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면역항암제 ‘임핀지’와 ‘이뮤도’를 함께 투여한 환자 5명 중 1명은 5년 넘게 살았다. 표적항암제 ‘넥사바’만 투여한 환자보다 생존율이 2배 높았다. 사망 위험은 24% 줄었다.

장기 생존 시대가 왔지만 숙제도 남았다. 면역항암제는 듣지 않는 환자가 여전히 많아 ‘선택받은 환자를 위한 약’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약이 효과를 내다가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으면 쓸 수 있는 약이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수천만원에 이르는 치료 비용도 부담이 크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탓에 폐암 등 일부 치료만 보험 혜택을 주는 나라가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소득이 적은 환자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바르셀로나=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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