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재앙 내린 겨울, 가축 모두 잃고 고향 떠났다”···유목민들 삶 무너뜨린 기후재앙[몽골르포]
풀·나무 많던 사막 현재는 듬성듬성
나무 10억 그루 2030년까지 심을 것
너른 초원과 게르(몽골의 전통 천막), 밤이면 쏟아지는 은하수 덕에 몽골은 한국에서 인기 관광지가 됐다. 이 아름다운 자연 풍광에다 폭설과 사막화, 극한 호우 때문에 기후난민이 속출한다는 사실을 연결 짓기는 쉽지 않다.
몽골 중서부 헨티 아이막(광역지자체) 자르갈 솜(기초지자체)에서 평생을 유목민으로 살아온 베 솝드(40)는 2012년 겨울 한순간에 기후난민이 되었다. 전에 보기 힘든 혹독한 겨울이 오면서 1m 이상의 폭설이 내린 탓에 전 재산인 500마리의 소, 말, 양 등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먹고살 길이 없어진 그는 남편과 함께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다. 7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4년 전 일자리를 잃은 뒤 솝드는 5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울란바토르 외곽 울란촐로트의 쓰레기 적치장에서 고물을 줍는 넝마주이를 했다.
울란촐로트 인근 자택에서 만난 솝드는 “남자도 하기 힘든 험한 일이었고, 매우 위험했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지난해 한 학교의 경비원으로 취직하면서 겨우 쓰레기 마을을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폭설·한파·홍수 등 기상이변에
유목민들 삶 무너지고 난민 전락
솝드가 생계를 이어갔던 울란촐로트 쓰레기 적치장은 산 하나를 통째로 쓸 정도의 방대한 규모였다. 지난달 30일 찾은 이 적치장에선 쓰레기를 실은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뿌옇게 날리는 먼지 속에서 수십명의 기후난민들이 금속, 플라스틱 등 돈이 될 만한 쓰레기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도시에서 나오는 쓰레기 더미에는 가축 사체와 음식물 쓰레기도 섞여 있다. 사체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맹금류와 까마귀 수백마리도 쓰레기장 상공을 날아다녔다. 주민들은 이 쓰레기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수는 1000여명이라고 전했다. 상당수는 과거 유목민이었다가 난민 신세가 된 이들이다.
국토 상당 부분이 사막과 초원으로 이뤄진 몽골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나라다. 몽골의 평균 기온은 1940년과 비교해 지난해 약 2.52도가량 상승했다. 전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자는 외침을 고려하면, 몽골의 기후변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기후난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울란바토르 외곽 산간지대에는 ‘게르촌’도 대규모로 형성돼 있다. 무허가로 게르나 판잣집을 짓고 사는 이들의 주거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몽골 전체 인구 350만명 가운데 약 150만명이 울란바토르에 산다. 그중 게르촌 인구는 2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는 조상 대대로 유목민 생활을 해온 이들로, 폭설이나 한파, 홍수 등 기상이변으로 가축을 잃은 뒤 생계를 위해 무작정 울란바토르에 상경한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가축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가는 기상이변을 몽골에서는 ‘조드(재앙)’라고 부른다. 특히 겨울철 눈이 지나치게 많이 와서 가축들이 먹이를 먹지 못해 죽어가는 경우를 ‘하얀 조드’라고 부른다. 과거 조드는 수십년에 한 번씩 매우 국지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최근에는 3~4년 주기로 빈발한다. 규모도 몽골 대부분 지역을 덮칠 정도로 커졌다. 조드 때문에 몽골인들 다수는 기후변화가 가축들은 물론 자신의 삶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몽골 정부 집계에 따르면 1950년대부터 발생한 12건의 대규모 조드로 인해 몽골에서 떼죽음 당한 가축은 4000만~5000만 마리에 달한다. 조드가 발생하면 유목민들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가축을 잃어 생계가 막막해진다. 이는 식량 부족과 소득 감소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의 교육 등 사회 다방면에 악영향을 미친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사막화는 몽골인들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요소다. 유엔개발계획의 2020년 보고서를 보면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면적은 몽골 전 국토의 76.9%에 달한다. 지난달 29일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아르항가이 아이막 엘승타사르해 사막에서 만난 엠 바야르바트(42)는 “사막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던 지역이었다”며 “풀 높이가 과거에는 정강이를 넘어섰었는데 현재는 남아 있는 풀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야르바트의 설명대로 사막 곳곳에 듬성듬성 풀이 자라고 있었지만 그 높이는 발목을 넘어서지 못했다.
엘승타사르해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미니 고비사막’으로 유명한 곳이다.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하루를 꼬박 이동해야 하는 고비 사막에 비해 가깝다. 사막을 체험하고,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인생 사진 스팟’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날도 사막을 걷거나 낙타 타기 체험을 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인기 관광지는 기후변화와 사막화의 영향이 점점 심각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초원과 사막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한 엘승타사르해에 대해 바야르바트는 “사막 지대가 넓어지면서 모래 이동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며 “거대한 모래폭풍도 점점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몽골 기상청 통계를 보면 1960년에 비해 2015년 몽골의 모래폭풍 발생 일수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1960년대에는 연간 10~20건 정도의 모래폭풍이 발생했지만, 2010년대에는 40~60건이 발생한다. 몽골의 모래폭풍은 작은 산 같은 규모로 일어나기 때문에 한 번 발생하면 마을은 물론 한 지역을 뒤덮는 경우가 많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유목민들의 게르를 앗아가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토 76.9% 사막화, 속도 빨라져
거대한 모래폭풍, 한국엔 황사로
지난달 27일 방문한 바양항가이 상생의숲에서 만난 주민 오 하르츠세드(67)는 “2002년과 2010년 거대한 모래폭풍 때문에 살고 있던 게르가 무너져버리는 피해를 겪었다”면서 “지난해도 모래폭풍 때문에 집 울타리가 넘어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모래폭풍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거대한 모래폭풍이 기압 조건에 따라 상승 기류를 타면 대기 상층으로 올라간다. 이때 한국 기준으로 북서풍이 불면 황사가 한반도를 덮칠 수도 있다. 몽골의 기후변화와 사막화가 황사 형태로 한국인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급격히 늘어난 가축 수로 인한 토지 황폐화 역시 사막화와 황사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몽골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른바 ‘5축’으로 불리는 몽골의 5대 가축 염소, 양, 소, 말, 낙타 수는 1970년 2255만마리에서 2022년 현재 7135만마리로 3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캐시미어를 얻기 위해 기르는 염소는 풀의 뿌리까지 파먹는 습성으로 인해 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반면 유목민과 가축의 주요 식수원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22년 한해에 말라버린 강과 개울, 호수, 샘은 360개에 달한다. 다양한 철새들의 번식지로 람사르습지로 지정돼 있는 어기노르 호수 역시 면적이 크게 줄어든 바 있다.
최근 기상 재난은 극한 호우다. 새로운 형태로 몽골을 덮친다. 1년 전체 강수량이 대체로 200㎜ 정도인 몽골의 초원지대에 불과 며칠 동안 한해 강수량에 육박하는 비가 집중되는 현상이 최근 들어 발생한다.특히 2년 전과 지난해 여름에는 몽골 중부지방에 짧은 기간 곳곳에 수백㎜ 강수량의 비가 쏟아졌다.
예전 같으면 비가 조금 많이 와도 초원의 풀과 흙이 물을 머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막화되면서 메말라버린 흙은 물을 머금을 수 있는 양이 줄어든 상태였다. 땅에 스며들지 못한 물이 산지에서부터 흘러내려 초원으로 모이게 되면서 몽골인들은 평생 처음으로 홍수라는 현상을 보게 됐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로부터 서쪽으로 약 110km 떨어져 있는 바양항가이솜에서 만난 신기호 푸른아시아 몽골 지부장은 “비가 많이 내리자 주민들이 ‘강이 오고 있다’면서 ‘서둘러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실제 지평선 위로 거대한 물줄기가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산림청·임업진흥원·푸른아시아 등 조림사업 동참
몽골 정부 “산림 9%까지 확대”
몽골 정부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몽골 정부는 나무 심기 캠페인을 통해 사막화 속도를 늦추는 목표를 세웠다.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은 2021년 유엔총회에서 “2030년까지 10억그루의 나무를 심는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캠페인에 따라 몽골의 각 아이막(광역지자체), 솜(기초지자체) 관청들은 지역마다 할당된 나무를 심기 위한 계획을 짜고, 실행하고 있다. 올해 심으려는 나무는 총 4290만그루다.
10억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에는 한국 기업이나 푸른아시아 등의 NGO(비정부기구)들도 동참하고 있다. 산림청과 한국임업진흥원 등의 후원으로 몽골 투브아이막 바양항가이솜에서는 2022년부터 상생의숲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나무를 심어 사막화를 방지함과 동시에 주민들이 일자리를 얻음으로써 숲과 주민이 상생하는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푸른아시아가 바양항가이에 조성 중인 이 조림장은 크게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과 주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차차르간(비타민나무) 등 유실수로 이뤄진 숲, 수박·방울토마토 등을 기를 수 있는 비닐하우스 등으로 이뤄져 있다.
과거 한국 지자체나 기업 등 후원으로 몽골에 조성된 숲 중에는 나무를 심기만 하고 방치한 탓에 조림에 성공하지 못한 경우들이 있다. 바양항가이에선 주민들이 숲을 가꾸는 것과 영농활동을 통해 자립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도록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숲을 이루도록 하고 있다. 산림청 등은 앞으로 2026년까지 5만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도록 후원할 계획이다.
바양항가이 ‘상생의숲’ 내에는 현재 대한성공회에서 후원한 성공회의 숲과 가수 ‘악동뮤지션’ 가족이 후원한 악뮤사랑의 숲, 기독교계 환경단체인 나무가심는내일이 추진하는 한국교회의숲 등도 조성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방문한 어기노르 솜 ‘페이퍼리스 생태림’의 경우 편의점 CU 운영사인 BGF리테일, 세븐일레븐 운영사인 코리아세븐, BC카드,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의 재원으로 조성된 숲이다. 어기노르는 울란바토르로부터 서쪽으로 약 360㎞ 정도 떨어진 곳이다.
‘종이가 없는’이라는 의미의 페이퍼리스라는 말에서 보듯 편의점에서 소비자들이 종이 영수증을 받지 않으면서 아낀 돈을 적립해 나무를 심는 방식의 캠페인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몽골의 심각한 기후변화와 사막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26년에는 울란바토르에서 제17차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린다. 사막화방지협약은 생물다양성협약,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유엔의 3대 환경 협약으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만난 담딩 푸른아시아 고문은 “몽골은 현재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 기술, 예산과 인력 모두 부족한 상태”라면서 “기후변화 대응 인력 양성을 위해 국제 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담딩 고문은 몽골 자연환경관광부에서 산림국장 등을 맡았으며, 역대 몽골 환경부장관 자문을 맡았던 인물이다. 담딩 고문은 “10억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의 중요성은 나무를 심는 것 자체에도 있지만 몽골인들 전반의 인식을 바꾸는 것에도 있다”면서 “이 캠페인을 통해 국토 전체의 약 7.9%인 산림을 2030년까지 9%로 늘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연평균 기온 상승폭 이대로면 ‘최대 5도’
기상재해 가능성 갈수록 커져
몽골 서부에 있는 자브항아이막은 고위도 지역에 위치해 겨울철 기온 영하 20~30도에 이르는 몽골에서도 겨울이 혹독한 것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겨울철 기온이 대체로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영하 50도 아래의 최저기온도 나타난 바 있다. 여름철 평균기온은 20도 안팎이다.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1940년대에서 2021년 사이 3.1도가량 상승했다.
3.1도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국제사회가 이번 세기말까지 전 지구 지표면 평균기온 상승폭을 억제하기로 한 목표치인 1.5도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이는 현재 전 지구적 기후변화 속도의 2배가 넘는 빠르기로 몽골의 기후변화가 진행 중임을 의미한다.
몽골 물기후환경연구정보연구소에 따르면 몽골 전체의 연평균 기온 역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1940년대에 비해 몽골 기온은 2010년 2.1도 올랐다. 2015년에는 상승폭이 2.24도로 커졌고, 2021년에는 2.3도로 더 벌어졌다. 80여년 전에 비해 2023년 연평균 기온은 2.52도 상승했다. 전문가들 중에는 몽골의 연평균 기온 상승폭이 2.7도에 달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급격한 기후변화는 몽골의 강수량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겨울에 내리는 눈이 강수량의 91.6%를 차지하는 몽골에서 강수량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곧 겨울철 폭설이 내렸단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는 몽골 전역의 80%가량에서 강설로 인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57%는 위험도가 매우 높았고, 23%는 높음으로 집계됐다.
폭설뿐 아니라 몽골에서는 폭우로 인한 홍수, 모래폭풍 등 재해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몽골의 위험 기상현상 발생빈도는 1993년 16회에서 2003년 48회, 2013년 123회, 2023년 132회로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몽골의 기후변화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진행될 경우 몽골의 추가적인 연평균 기온 상승폭이 2.5도에서 최대 5도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문기의 추석 선물’ ‘딸에게 보낸 동영상’···이재명 ‘선거법 위반’ 판결문
- 조국 “민주주의 논쟁에 허위 있을 수도···정치생명 끊을 일인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사라진 돌잔치 대신인가?…‘젠더리빌’ 파티 유행
- “민심의 법정서 이재명은 무죄”···민주당 연석회의 열고 비상행동 나서
- 40대부터 매일 160분 걷는 데 투자하면···수명은 얼마나 늘어날까?
- 드라마인가, 공연인가…안방의 눈과 귀 사로잡은 ‘정년이’
- 중학생 시절 축구부 후배 다치게 했다가···성인 돼 형사처벌
- 은반 위 울려퍼진 섬뜩한 “무궁화꽃이~”···‘오징어게임’ 피겨 연기로 그랑프리 쇼트 2위
- ‘신의 인플루언서’ MZ세대 최초의 성인···유해 일부 한국에 기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