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도 주저 않겠다"…위기 맞은 한동훈의 '여야의정 승부수'

박소연 기자 2024. 9. 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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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추석 연휴 근무 공직자 격려를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을 방문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공동취재) 2024.9.16/사진=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추석연휴 전 출범 목표로 제안했던 '여야의정(여당·야당·의료계·정부) 협의체'가 연휴가 끝나도록 첫 발을 떼지 못하고 있다. 한 대표는 연휴 기간 동안 의료계와 비공개로 접촉하며 설득에 나섰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협의체 출범이 불발될 경우 리더십 손상이 불가피한 가운데 한동훈 대표는 "절벽에서 뛰어내릴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겠다"며 문제해결 의지를 밝혔다.

한 대표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18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여러 의료계 인사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의료계의 입장을 듣고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있다"며 "오늘도 대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어려운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그런데 지금 의료상황은 그렇지 않다"며 "그대로 둔다면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되지 않고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이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그러니 대화해야 한다. 대화 말고 다른 해결책은 없다"며 "정부와 야당도 더 적극적으로 더 유연한 입장으로 나서주실 것을 요청드린다. 여당도 더 노력하겠다"고 호소했다.

실제 한 대표는 연휴 내내 여야의정 협의체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 의료단체와 물밑접촉을 벌이며 동분서주했다. 한 대표는 15일 서울 모처에서 의사단체 대표를 만나 협의체 참여를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엔 서울 종로소방서를 격려 방문한 뒤 기자들을 만나 "이대로 가면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고 모두가 지게 될 것"이라며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에 조건을 걸지 않겠다"고 기존 입장을 강조했다. 추석 당일인 17일 역시 주요 의료계 관계자와 만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설득하고 의료계 건의를 들었다고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추석을 하루 앞둔 16일 오후 서울 종로소방서를 찾아 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4.9.16/사진=뉴스1


여당 대표 취임 후 중재자로서 의정갈등 해소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한 대표는 지난 17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누가 옳으냐를 따질 때가 아니고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다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의료붕괴 여부에 대해 "많은 국민께서 불안감을 느끼고 계시고 (국민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이미 상황은 벌어진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한 대표는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이 폴 매카트니에게 '너는 왜 절벽 앞에 와서 뛰어내리지 않냐'고 물었던 일화를 소개하고는 "나라가 잘됐으면 좋겠고 또 국민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서 절벽에 뛰어내려야 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보려고 한다"고 했다.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을 위해 최선을 다한단 입장이지만 극적 타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야당, 의료계, 정부 등 참여 주체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는 데다 연휴 직후 여야가 '김건희 특검법' 등 처리를 놓고 대치하며 정국이 급격히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총무이사 겸 대변인이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료대란 관련 '의·여·야·정 협의체' 참여에 대해 "정부 태도변화 없이는 여야의정협의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료계 공동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4.09.13. /사진=뉴시스


의료계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8개 의료계 단체는 지난 13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는 시점에 협의체 참여는 시기상조"라며 2025년도 증원 문제 재논의, 무리한 정책 추진에 대한 사과·유감 표명, 전공의 수사 중단 등이 협의체 구성의 우선 조건임을 강조했다.

의료계는 여기서 입장 변화가 없는 데다, 논의를 주도하는 의협과 전공의, 의대생 사이의 의견이 조금씩 갈리는 등 내홍마저 겪고 있어 협의체 동참 설득이 쉽지 않은 상태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SNS에 "한동훈 대표가 지속적으로 만남을 거절했다. 단 한 번 비공개 만남 이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한 대표와 소통한 적 없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정부도 입장 변화가 없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날 추석연휴 기간 우려했던 응급실 대란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 상황이 '의료붕괴'라는 한 대표의 입장과 달리, 의료체제가 관리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는 2025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는 불가하단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심우정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4.09.18. /사진=뉴시스


민주당은 원칙적으로 대화가 필요하단 입장이지만 정부여당의 실책을 강조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와 책임자들의 경질이 아니면 대화공간이 열리겠나 판단하고 있다"며 "그런 사안을 1차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대화를 제안했고 국정 일체를 책임지는 여당 내부에서 해결해야 될 과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여야의정 협의체 타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며 "결국 대통령실의 태도 변화가 필요한데, 일단 의료계를 설득하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정부는 의대 증원 방침을 유지하는 기조 위에서 대화하겠다는 것이고 의료계는 백지화를 전제조건으로 삼고 있다. 야당은 의료대란의 반사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라며 "대화 시도는 의미가 있지만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내년도 의대 증원을 손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그것까지 건드리며 의정대화 승부수를 띄운 것은 자칫 한 대표에게 치명적인 리더십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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