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력’ 충전했나요? [김상균의 메타버스]

한겨레 2024. 9. 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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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보니, 서울대 학생들의 특징이 보인다. 서울대 학생들이 다른 대학 학생들보다 질문을 확연하게 덜 한다. 서울대 학생들은 성장 과정에서 실패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수업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쉽사리 꺼내 놓지 못한다. 좋은 질문이 아닐 경우 본인이 실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필자가 소셜 미디어에서 우연히 본 글의 요지다.

필자는 서울대 등 여러 대학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도 질문을 꽤 많이 받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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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김상균 | 인지과학자·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

‘여러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해보니, 서울대 학생들의 특징이 보인다. 서울대 학생들이 다른 대학 학생들보다 질문을 확연하게 덜 한다. 서울대 학생들은 성장 과정에서 실패 경험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수업에서 자신이 모르는 것을 쉽사리 꺼내 놓지 못한다. 좋은 질문이 아닐 경우 본인이 실패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필자가 소셜 미디어에서 우연히 본 글의 요지다. 그 글에는 많은 이들의 공감이 이어졌다. 자신도 서울대 학생들이 질문을 덜 한다고 생각한다는 댓글이 쌓였다.

질문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 원동력은 세 힘으로 구성된다. 마음속에 질문을 품는 힘, 품은 질문을 세상으로 뱉어내는 힘, 뱉어낸 질문에 담긴 문제를 해결하는 힘. 이렇게 세가지 힘을 필자는 ‘질문력’이라고 정의한다. 질문력을 통해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니 질문력이 약해진 대학은 몹시 심각하다. 세상을 좋게 만드는 원동력이 꺼진 상황이니 말이다.

서울대 학생들이 질문을 덜 하는지, 아닌지는 검증된 바가 없다. 다만 소셜 미디어 속 글의 주장에서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해서 쉽게 질문하지 못한다는 부분은 공감이 된다. 질문을 뱉어내는 힘이 부족한 경우이다.

필자는 서울대 등 여러 대학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도 질문을 꽤 많이 받는 편이다. 필자를 초청한 이로부터 다른 때보다 질문이 열 배, 스무 배 많아 신기하다는 식의 말을 자주 듣는다.

필자는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질문에 휩싸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몇가지 원칙을 따른다. 첫째, 모든 것을 다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답을 내려 애쓰지 않는다. 학생 스스로 질문을 품기를 기대하는 바람으로 그렇게 한다. 둘째, 학생이 익명으로 질문하게 한다. 익명으로 질문을 보내는 인터넷 사이트를 알려주거나, 종이에 질문을 적어서 내라고 한다. 여의치 않으면 필자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고, 문자로 질문을 보내라고 한다. 질문하는 이가 질문에 책임져야 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는 의도이다. 셋째, 필자가 예전에 받았던 엉뚱한 질문, 작은 질문들을 미리 예시한다. 없으면 그럴듯하게 만들어서라도 얘기한다. 학생이 품은 질문이 절대 이상하거나 보잘것없지 않음을 알려주고자 그렇게 한다.

“교수님은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을 통해 공부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데, 공부란 원래 고통이 동반되어야 가치 있는 게 아닐까요?” “게임에서 총싸움 같은 살인을 허용하면서, 성폭행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실에서 둘 다 중범죄이지만, 그래도 살인을 더 무겁게 처벌하는데요.” 필자가 서울대에서 받았던 수많은 질문 중 기억에 남는 두 질문이다. 첫번째 질문은 필자가 게이미피케이션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내 설계를 한번 더 살펴보게 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두번째 질문은 필자에게 두 세계를 인간이 어떻게 다르게 느끼는지, 두 세계에는 어떤 다른 규칙이 작용하는가를 탐구하는 새로운 출발점을 만들어주었다. 요즘에도 강의에서 가끔 이 두 질문을 청중에게 꺼내놓고 답을 찾아보게 한다. 두 질문으로 내가 받았던 영감을 전해주고 싶어서이다.

질문은 귀찮은 물음이 아니다. 우리를 상상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더 많은 질문을 품고, 뱉어내고, 해결하는 교실을 꿈꾼다. 질문력이 충만한 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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