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걸그룹은 없었다···‘국힙 딸’ 영파씨 탄생기

김한솔 기자 2024. 9. 1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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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파씨 ‘ATE THAT’ 뮤직비디오 스틸컷. RBW, DSP미디어, 비츠엔터테인먼트 제공.

최근 새로 나온 아이돌 그룹 중 영파씨(정선혜, 위연정, 지아나, 도은, 한지은) 만큼 아무런 수식어 없이 데뷔한 그룹도 없을 것이다. 대형 기획사의 막내딸, 인기 아이돌 그룹의 동생…너도나도 그럴듯한 타이틀을 앞세우며 데뷔하는 와중에 영파씨는 2023년 “마카로니 마라톤임 마카롱이 아니라고 인마”(데뷔곡 ‘마카로니 치즈’)라는 이상한 가사의 노래와 함께 홀연히 등장했다.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을 오마주한 올드스쿨 힙합 ‘XXL’, 비디오게임 ‘GTA’ 콘셉트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된 지펑크 힙합 ‘ATE THAT’을 차례로 히트시키며 ‘국힙의 딸’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획득했다.

누구의 딸도, 동생도 아닌 영파씨는 어느 그룹과도 비슷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데뷔 앨범부터 멤버들이 작사에 참여하고, 음악방송에서는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AR(사전에 라이브 버전으로 녹음한 목소리까지 포함된 음악)을 쓰는 대신 핸드마이크를 들고 숨소리와 신발 끄는 소리까지 그대로 들리는 라이브를 한다. 영파씨 멤버들의 캐스팅부터 기획, 앨범 제작까지 하는 키겐(이기원) 비츠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서 ‘영파씨 탄생기’를 들었다.

키겐 비츠엔터테인먼트 대표. 비츠엔터테인먼트 제공.

키겐은 스스로가 그룹 ‘팬텀’으로 활동했던 아티스트이자 1세대 아이돌 신화부터 세븐틴까지, 수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작업한 베테랑 프로듀서다. 영파씨는 그가 2021년 비츠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DSP미디어와 협업해 프로듀싱한 아이돌 그룹이다.

그는 영파씨 멤버들을 모두 직접 캐스팅했다. 회사를 열자마자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국민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바람에 그 흔한 ‘길거리 캐스팅’은 시도도 못 했다. 실용음악학원에서 하는 공개오디션 참가자들은 어쩐지 전부 비슷한 이미지였다. 그는 기존 방식을 벗어나 댄스 스튜디오, 랩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직접 찾아다니며 사람을 모았다. 춤은 좋아했지만 연예인을 꿈꾼 적은 없었던 위연정, 중학교 때 찍은 제니의 ‘솔로’ 댄스 커버 영상으로 유명했던 정선혜 등의 멤버가 섭외됐다.

그룹 영파씨. RBW, DSP미디어, 비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파씨는 처음부터 힙합 콘셉트로 기획된 그룹은 아니었다. 멤버들 모두 연습생 때 처음 랩을 배웠다. 이들은 지아나, 도은, 한지은까지 데뷔 멤버가 확정되고 나서도 한동안 어울리는 콘셉트를 찾아 헤맸다. 힙합은 발라드, 댄스, EDM 등 여러 장르와 더불어 시도해 본 것들 중 하나였다. “다른 장르는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힌 느낌이었는데, 힙합을 했을 땐 멤버들이 처음으로 하나도 어색해보이지 않았어요.”

힙합 콘셉트가 정해진 뒤에는 멤버들과 힙합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길게 가졌다. 그냥 스타일로서의 힙합이 아니라, 힙합의 역사, 정신 등을 진심으로 이해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힙합 안에서는 뭐든지 허용되잖아요. 발라드나 댄스곡에서 갑자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면 좀 어색하지만, 힙합은 노래를 하다 웃어버려도 어색하지 않죠. 멤버들과 힙합에는 사회의 구조, 문화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우리가 힙합을 하면 조금 더 넓은 스펙트럼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ATE THAT’ 뮤직비디오 스틸컷. RBW, DSP미디어, 비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파씨는 데뷔앨범부터 멤버들이 작사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3번째 EP앨범 <ATE THAT>의 1번 트랙 ‘Loading...’은 멤버 모두가 함께 작사했다. 키겐은 가수는 자기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야 아티스트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코가 데뷔 전 연습생일 때 제가 그 회사의 작곡가로 일했어요. 지코는 그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터질 것 같아 보였어요. 그러니까 아직까지도 앨범 내고 활동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힙합의 옷을 입었지만, 아직 데뷔한지 채 1년이 안 된 멤버들이 뻗어나갈 길은 다른 장르에도 열려 있다. “사람이 성장하면 취미가 바뀌듯, 멤버들의 새로운 장점들이 돋보이기 시작하면 또 그에 맞는 장르의 음악도 프로듀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룹 영파씨. RBW, DSP미디어, 비츠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파씨는 올해 초 2번째 EP앨범 <XXL>을 발표하면서 1990년대 인기 음악방송 <가요톱텐>을 패러디했다. 언젠가 음악방송에 출연했던 서태지가 평론가들로부터 혹평을 들었던 것을 영파씨의 현실에 빗대 연출한 것이다. “영파씨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없고, 평이 안 좋더라도 언젠가 우리도 서태지처럼 위대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담았습니다.”

‘XXL’에서 “판을 더 크게 키워볼까”라고 말하던 멤버들은 ‘ATE THAT’에서는 “즐기는 걸 알아가는 중이야”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영파씨의 노래 중 키켄이 가장 좋아하는 가사다. 또 20년 간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일하며 온갖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옆에서 지켜본 그가 영파씨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조금씩 음악과 연예인 생활을 알아가는 단계니까, 그냥 순탄하게 즐기면서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영파씨는 다음달 15일부터 마이애미를 시작으로 미국 15개 도시에서 투어를 한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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