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수련과 스승 양성에 3조 vs 0원, 이대론 안돼" 의대교수 쓴소리

정심교 기자 2024. 9. 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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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시내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오는 20일이면 전공의 91%가 전국 수련병원을 떠난 지 꼬박 7개월째다. 의사들은 전공의의 빈자리를 다시 채우기에 앞서, 전공의 수련환경부터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공의 양성 시스템'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의료강국이지만 수련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수련병원 교수들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구, 의대생 교육까지 도맡느라 전공의를 체계적으로 가르칠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이런 교수 옆에서 전공의들은 그간 눈치껏 알음알음 배우는 '도제식(徒弟式)' 수련을 해오는 데 그쳤다. 대한의학회 수련위원인 박시내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의 선진화·표준화 정책을 지원해야 하고, 전공의를 가르칠 훌륭한 지도전문의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국가책임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박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박시내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전공의 수련의 국가책임제를 도입하고, 국가가 나서서 전공의를 수련할 지도전문의부터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Q. 전공의 수련의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는 배경은.
"전공의법(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제3조에 따르면 "국가는 전공의 육성, 수련환경 평가 등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 건강을 책임질 전문의 양성을 위한 제도, 프로그램, 환경 개선 등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로 바꿀 때다. 국가책임제를 도입하면 국가 지원 하에 수련 제도·프로그램을 개발·시행하면서 전공의를 키워낼 지도전문의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도전문의의 자격과 역할에 대해 '수련병원에서 1년 이상 실무에 종사한 전문의'라고만 돼있을 뿐, 이들의 역할·책임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다. 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도 전혀 없다. 지도전문의의 역량을 키워 전공의를 잘 가르치도록 정부의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Q. 해외에선 전공의 수련을 누가 어떻게 하나.
"미국은 전공의를 가르치는 전문의가 △책임지도전문의 △지도전문의로 나뉜다. 책임지도전문의는 수련 프로그램의 진행을 총괄하는, 권위 있고 책임 있는 전문의로, 충분한 기간 직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받는다. 이런 안정적인 환경에서 임기 내내 업무시간의 60~80%를 (진료 없이) 전공의 교육과 평가에 매진할 수 있다. 현장에서 전공의를 가르치는 지도전문의도 업무시간의 30~40%를 전공의 교육·평가에 집중한다. 영국도 △책임지도전문의 △지도전문의 △ 임상지도전문의 △평가자로 나뉘어 전공의 수련교육을 담당한다. 이들은 수련병원에서 수련프로그램을 총괄·시행하면서 전공의들을 개인별 교육·평가해 실력 있는 전문의로 성장시킨다."
[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전국 의과대학 예비 전공의 인턴 상반기 수련 임용 등록 마감일인 2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인턴 생활관 휴게실이 텅 비어 있다. 2024.04.02. /사진=김근수
Q. 우리나라 전공의 교육 실정은 어떤가.
"한국은 최근 수년간 26개 전문의학회가 대한의학회·보건복지부와 함께 전문역량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이렇게 개발한 수련 프로그램을 현장에 쉽게 적용·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온라인 교육 시스템(이-러닝), 온라인 평가 시스템(이-포트폴리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없다. 전문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수련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무엇보다 전공의를 교육·평가해야 하는 지도전문의에 대한 적절할 교육·지원 체계가 없어, 전공의 수련교육 체계는 매우 후진적이다."
Q. 해외에선 지도전문의 양성에 국가가 얼마나 투자하나.
"미국은 1965년부터 메디케어(미 의료보험제도) 기금을 지도전문의 교육비 일부, 전공의 급여 일부로 지원해왔다. 2022년엔 지도전문의 인건비, 전공의 급여·수당, 전공의 수련프로그램 개발 등에 22조5000억원을 투입했다. 심지어 3~6일간 진행하는 책임지도전문의·지도전문의 교육과정의 비용까지 미국 정부가 낸다. 캐나다에서 의대가 가장 많은 온타리오주(州)는 지도전문의 양성에만 연간 6500억원 상당(2019년 기준)을 지원한다. 전공의 수련 비용의 90% 이상을 주 정부가 낸다. 영국은 전공의 급여의 절반, 수련 교육 비용을 정부가 부담한다. 전공의 교육·훈련비, 책임지도전문의와 지도전문의 교육비를 지원하는 데 연간 2조~ 3조원을 정부가 투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전공의 수련교육, 지도전문의 양성에 국가가 투자한 비용이 거의 없다."
대한이과학회 차기회장인 박시내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최근 대한의학회가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대한이비인후과학회의 이-러닝 프로그램 개발 성공 사례를 공유하며 "각 학회가 전공의 수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지도전문의가 이를 활용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진=정심교 기자
Q. 지도전문의 양성에 필요한 비용은 얼마인가.
"우리나라는 세계적 의료강국인데도 그간 전공의 수련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인색했다. 지도전문의를 양성하기 위한 정부의 지원금은 '0원'이었다. 교수가 전공의에게 '내가 하는 걸 따라 하면 된다'는 식이 아니라, 시스템에 따라 전공의를 교육·훈련해야 한다. 전국 전공의 3000명을 1년간 수련하는 데 1조5000억원~2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정부가 총비용의 50%를 지원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가 절반인 7500억~1조원을 매년 지원해주십사 제안한다. 물론 예산 집행과 관련,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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