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임금을 때린 조선 문정황후를 통해 본 영부인 행보 논란
"스스로 명종을 부립(扶立)한 공이 있다하여 때로 주상에게 '너는 내가 아니면 어떻게 이 자리를 소유할 수 있었으랴' 하고, 조금만 여의치 않으면 곧 꾸짖고 호통을 쳐 마치 민가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대하듯 함이 있었다."(조선왕조실록)
"어떤 때는 때리기까지하여 임금의 얼굴에 기운이 없어지고 눈물자국까지 보인 적이 있었다."(연려실기술)
조선시기, 문정왕후가 아들인 명종을 대하는 태도를 묘사한 기록이다. 임금의 어머니라고 하지만 한 국가의 지존에게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대로, 통념을 뛰어넘는다. 당시 명종은 왕후의 거듭된 괴롭힘으로 심혈증(心熱症, 신경쇠약)까지 얻었다. 사관들은 왕후가 죽은 뒤 사초에 "윤비(尹妃)는 사직의 죄인"이라고 기록했다.
도대체 문정왕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왕후는 권력 앞에서는 잔인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인종이 왕위에 있을 때는 그에게 계속 스트레스를 줬다. 아침·점심·저녁 문안인사를 할 때마다 원망섞인 말을 했고, 심지어 "우리 가문을 살려달라"고도 했다.
인종이 자신의 가문을 해칠 사람처럼 몰아세운 것이다. 왕대비라는 권위를 활용한 이른바 '가스라이팅'이다. 그러나 그는 왕후를 해칠 생각도 없었고 극진히 모셨다. 결국 인종은 대비의 괴롭힘으로 근심하다가 병을 얻었고, 재위한 지 9개월만에 요절했다. 야사에서는 계모인 문정왕후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독살했다는 설까지 돈다.
명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본격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당시 왕후는 을사사화를 일으켜 장경왕후(중종 두 번째 부인)의 외척 그룹인 '대윤'을 숙청하고, '양제역 벽서사건'을 반역의 증거로 내세워 사림들과 다른 왕족들을 제거했다. 이들의 목은 3일 동안 거리에 전시되기도 했다. 이후 자신의 동생인 윤원형을 비롯한 또 다른 외척그룹인 '소윤'과 정치를 해나갔다.
조정에서 요직을 차지한 이들의 권세는 엄청났다. 시전(상설시장)을 장악해 상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한양 각지에 엄청난 사저를 가지고 백성들을 강제로 노역에 동원했다. 고역을 참지 못한 백성은 도적이 됐다. 황해도에서 임꺽정이 나타나 관아의 창고를 털어 양곡과 패물을 훔쳐 빈민에게 나눠졌던 시기도 이때다.
문정왕후는 왕을 뛰어넘는 권력자로 거듭났다. 국정에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숭유억불 정책을 기조로 하는 조선에서 승려 보우를 총애해 불교의 중흥을 꾀하고 승려들의 시험인 승과와 도첩제도 부활시켰다.
명종이 성인이 되고 철렴(수렴청정을 폐지)을 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뒷전으로 물러난 이후에도 자신의 세력들을 통해 명종을 압박했고, 정사에 간섭했다. 외삼촌인 윤원형도 대비의 권세에 기대 자신의 주장을 거듭 관철시켰다. 명종은 이들에 눌려 형식적인 태도와 미비한 국정참여에 머무르고 있었다. 실록에는 "윤비가 수렴청정한 이래로 무릇 설시(設施-시행할 일을 계획함)하는 것도 모두 상(명봉)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였다"고 적혀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문정왕후가 죽어서야 끝이 났다. 사관은 당시의 정치사를 이같이 묘사했다.
"조정의 정사가 탁란(濁亂)하고 염치가 땅을 쓸어낸 듯 없어지며 생민이 곤궁하고 국맥(國脈)이 끊어졌으니, 종사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다."
현대의 정치는 어떠한가. 500여년 전과 다르면서도 어찌보면 비슷하다. 최근 대통령의 어머니가 논란이 아니다. 바로 영부인이 중심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는 지난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경찰과 마포대교 투신방지 시설을 점검한데 이어 119지구대를 방문해 대원들을 격려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이 자리에서 "자살 예방을 위해 난간을 높이는 등 조치를 했지만, 현장에 와보니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한강대교의 사례처럼 구조물 설치 등 추가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등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사진에는 김 여사가 마포대교에 서서 특정 장소를 손으로 가리키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뒤에 서 있다.
이런 장면은 논란을 불렀다. 자연스레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대통령 놀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등의 비판이 나왔다. 여당 내에서도 '영부인의 역할을 넘어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럼에도 김 여사의 공개행보는 멈추질 않는다. 김 여사는 지난 15일 은평구의 발달장애 아동 32명이 생활하는 '다움장애아동지원센터'를 방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오늘 방문이 시설에 많은 봉사자의 손길이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일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체코 방문에 나선다.
사실 현대 시대에 영부인의 역할은 정해진 게 없다. 영부인의 개인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지시를 하는 부분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선출직으로서 국정을 책임지는 권한을 부여받은 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가 "사장이 와서 지시하는 건 괜찮지만 사장의 사모가 와서 지시하는 것의 문제는 사뭇 다르다"고 한 것도 이런 점을 꼬집은 것이다.
더구나 현재 김 여사는 명품백 뇌물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자중하는 게 맞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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