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새 말바꾼 영풍…고려아연 ‘적대적 M&A’ 논란에 정치권·주주도 반발
“고려아연 지분율 두 배” 영풍…3월엔 “고려아연이 지분 더 많아
영풍이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서자, 고려아연을 비롯해 정치권과 소액주주들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영풍측은 1대 주주의 경영권 강화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고려아연은 영풍의 경영 능력을 지적하며 해외 기술유출 우려를 내비쳤다.
영풍은 이번 공개매수에서 고려아연보다 지분율이 두 배가량 높아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고려아연 지분율이 영풍 측을 넘어섰다"고 상반된 주장을 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사태 역시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이란 해석이 나온다.
◇고려아연, "영풍·MBK 적대적 M&A 반대"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는 18일 "당사 주주인 ㈜영풍이 기업사냥꾼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공개매수에 반대 의사를 공식 표명한다"며 "공개매수 시도가 국가 기간산업인 비철금속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의 경쟁력을 보유한 당사에 대한 기업사냥꾼의 적대적 약탈적 M&A라고 판단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박 대표는 "영풍은 석포제련소를 운영해 오면서 각종 환경오염 피해를 일으켜 지역 주민들과 낙동강 수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왔고, 빈발하는 중대재해 사고로 최근 대표이사들이 모두 구속됐디"며 "영풍은 석포제련소의 경영 정상화와 안전, 환경문제 해결 등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약탈적 자본과 결탁해 고려아연의 지분과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MBK파트너스는 정치권과 국내 여론에 의해 약탈적 기업사냥꾼이자 투기자본으로서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온 곳"이라며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통해 기존의 전통적인 제련 사업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차전지 소재와 자원순환, 신재생 에너지 등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신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공개 매수자들이 당사 경영권을 확보하게 될 경우 핵심 사업전략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해 주주가치가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그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에 대해 콜옵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약탈적 자본과 결탁한 공개 매수자들이 당사 경영권을 인수한 다음 경영권을 해외 자본에 재매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 기간산업·이차전지 소재 관련 핵심 기술과 역량이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소액주주도 "적대적 M&A 반대"
정치권에서도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적대적 M&A 의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전죽 남원)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MBK파트너스가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고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세계 1위 기업의 독보적인 기술들은 해외로 유출되고 핵심인력들의 이탈도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김두겸 울산시장과 울산시의회도 "고려아연에 대한 사모펀드의 약탈적 인수합병 시도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펼치고 120만 시민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울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소액주주들도 고려아연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 운영진은 최근 고려아연 주주들에게 "고려아연과 같이 주주환원율 최고의 회사는 소액주주가 작은 힘으로라도 지켜내, 동학개미가 때로는 회사와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는 사례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밝혔다.
또 "고려아연은 성장전략 '트로이카 드라이브' 덕분에 실적이 가능했고, 그 주체가 현 경영진인 것은 명확해 보인다"며 "현대차, LG화학, 한화와 배터리 동맹을 통해 회사의 미래를 펼쳐가는 중으로 소액주주로서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고려아연 지분율 놓고 말바꾼 영풍
앞서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지난 13일 고려아연에 대한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동시에 고려아연 회계장부 등의 열람·등사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장형진 영풍 고문을 동일인으로 하는 영풍그룹 계열사이고, 영풍·장씨 일가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라며, 공개매수는 경영권을 공고히 하기 위한 취지로 '적대적 M&A'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영풍 측은 "현대차, 한화, LG 등 기업들이 비즈니스 파트너십만 공시했다"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우호 지분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영풍 측에 따르면 이달 기준 영풍 측 장씨 일가 지분율은 33.1%로 최씨 일가 (15.6%)보다 2배 높다.
하지만 영풍은 지난 3월 고려아연이 현대차그룹 해외 계열사인 HMG글로벌에 대해 신주를 방행한 것을 놓고 무효 소송을 내면서 "고려아연은 한화 H2에 대한 유상증자에 이어 작년 11월 자사주를 한화, LG화학 등의 자사주와 상호교환하고 한국투자증권 등에 매각해 우호지분 10.7%를 확보했다. 작년 9월 HMG글로벌에 신주 5%를 배정한 이후 고려아연 경영진의 지분율이 영풍 측을 넘어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풍-고려아연, 72년 동맹 깨져
재계에서는 이번 영풍 측의 공개매수를 경영권 분쟁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올 3월 주총 이후 고려아연은 영풍이 갖고 있던 서린상사 경영권을 확보했으며, 영풍 석포제련소 황산취급대행계약 갱신을 거절하며 선긋기에 나섰다. 양측은 올해로 72년 동업관계를 이어왔지만, 이후 소송 등으로 갈등이 심화되면서 영풍이 보다 강한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영풍과 MBK파트너스는 "문제의 발단은 경영 대리인인 3세 최윤범 회장이 장씨와 최씨일가의 공동경영정신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회사를 장악하려고 함에 있다"며 "직계 포함 지분 2.2%에 불과한 최 회장은 영풍과의 협력관계를 종결시키고, 최대 주주인 영풍과 장씨일가의 경영참여를 봉쇄하면서 고려아연의 자금을 이용해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MBK파트너스 펀드에 출자하는 유한책임투자자(LP)들은 국내·세계의 유수의 연기금들과 금융기관들로 중국계 자본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 주장에 반박했다.
박기덕 대표는 "공개매수자들과 같은 재무적 투자자나 실패한 경영자인 영풍 측 경영진들이 당사의 현 경영진을 대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약탈적 투기자본과 사회적 지탄을 받은 기업의 탐욕과 결탁으로부터 반드시 회사를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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