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고령화 '연금 빠른 고갈'…'정년연장' 카드 꺼냈다
중국 정부 눈덩이 연금부담에 정년연장 고육책
중국의 급격한 고령화로 연금 기금이 빠르게 고갈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결국 정년연장 카드를 빼들었다. 재정붕괴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청년실업 문제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청년실업-노인빈곤-기금고갈'이 얽힌 복잡한 삼각함수 시험지를 받아들고 중국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분위기다.
18일 홍콩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재정부를 인용해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등 이른바 동북3성이 지난해 연금 기금 부족으로 중앙정부로부터 1800억위안(약 34조원)의 이전지급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들 3성의 지난해 총 세수입은 3429억위안(약 64조원). 세수의 절반이 넘는 돈을 오로지 연금으로 인한 손해를 메꾸기 위해 지원받은 거다.
동북3성 연금은 왜 펑크났을까. 동북3성은 러시아와 북한, 몽골과 국경을 접한 대표적 인구 밀집지역이었다. 노동력이 필수인 경·중공업이 발달했다. 그런데 첨단산업 비중이 높아지며 동부연안과 남부지역으로 산업 주축이 옮겨갔다. 청년층은 일자리를 찾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노인들만 남으니 인프라 투자가 느려지고, 인프라가 나빠지니 다시 청년인력이 빠져나간다. 악순환이다.
실제 동북3성 인구 중 60세 이상 비율은 지난해 23~26%로 중국 전체 21%를 상회했다. 이런 상황이 동북3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중국 정부의 고민이 있다. 지난해 중국 전체 지방정부 중 연금기금이 흑자를 내 중앙정부에 정해진 금액을 납부한 행정구역은 전체의 절반에 그쳤다. 100억위안(약 1조9000억원) 이상을 납부한 곳은 광둥성 등 네 곳뿐이었다.
광둥성은 60세 이상 인구가 15%를 밑도는 젊은 지방정부다. 지난해 1158억위안(약 22조원)의 연금 흑자를 냈다. 이 돈을 적자 지방정부로 보낸다. 이런 구조는 당연히 머지않아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EIU(인텔리전스유닛)는 지난해 21%인 중국의 60세 이상 비율이 2035년 32.7%까지 높아질 거라고 예측했다. 이미 중국사회과학원이 중국 연금 기금의 2035년 고갈을 전망한 상황이다.
곳간은 비어가는데 메울 여력은 없다. 중국 정부의 올 상반기 총 수입은 전년 대비 2.8% 줄어든 11조5900억위안(약 2174조원)이다. 화타이증권이 추정한 중국 연금 잔액은 2022년 기준 중국 GDP(국내총생산)의 약 5.8% 수준이다. 사실이라면 우리 돈 약 1300조원에 이르는데, 이 돈이 빠르게 고갈되고 이를 메우려 든다면 중국 재정이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
고민 끝에 중국 정부가 내린 결론이 정년연장이다.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13일 정년 연장을 전격 발표했다. 남성은 60세에서 63세로, 여성은 50~55세에서 55~58세로 정년이 늘어난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은 기본적으로 정부에 국민부양의 의무가 있다. 당연히 연금도 정년 직후부터 지급된다. 이번 조치로 중국 정부는 연금 지급 부담을 상당히 덜게 됐다.
EIU는 정년 연장으로 향후 10년간 중국 연금 당국이 적자를 20%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상하이 푸단대 아이징이 교수는 "이번 정년 연장은 정부가 직면한 자금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설계하고 시기를 저울질한 결과"라며 "많은 지방정부가 재정 면에서 즉각적으로 구제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회적 불만을 어떻게 잠재우느냐다. 중국 정부는 앞서서도 정년연장을 시도했다가 백지화했었다.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년연장 발표와 함께 청년층의 불만이 고조된다. 올해도 1179만명이나 되는 대졸자가 쏟아져나왔다.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갑자기 발표를 중단한 청년실업률의 마지막 수치는 무려 21.3%였다.
정년연장은 얼마 남지 않은 일자리를 두고 청년층과 고령근로자 간 싸움이 더 격해진다는 의미다. 당연히 청년층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노인빈곤 문제도 커지는 가운데 연금을 받는 은퇴생활을 기대하던 고령근로자들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시간을 벌었지만 사회불만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벌었다 해도 근본적으로 연금기금을 확보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이징대 교수는 SCMP에 "중국은 부자들을 강탈하고 이 잉여금을 이전해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모델이 아니"라며 "중앙정부와 국유기업은 당장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 중국 연금 기금 규모를 늘리는 데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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