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폭탄된 `삐삐`… 레바논서 수천대 동시폭발

이미선 2024. 9. 1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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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일명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기 수백 대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최소 9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무선호출기는 현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사전에 설치한 폭발물 때문에 폭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헤즈볼라가 대량으로 무선호출기를 주문하자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를 역이용해 공격 수단으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이스라엘은 무선호출기가 폭발하기 직전 수초간 신호음을 내게 하는 프로그램까지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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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 사용 호출기 폭발
최소 9명 사망·3000명 부상
이스라엘 배후로 지목 경고
레바논 현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수천 대가 폭발하면서 9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호출기는 이스라엘이 사전에 설치한 폭발물로 인해 폭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 연합뉴스.

레바논에서 일명 '삐삐'로 불리던 무선호출기 수천 대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최소 9명이 사망하고 3000여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무선호출기는 현지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사용하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사전에 설치한 폭발물이 사고의 원인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은 호출기 제조 단계에서 폭발물을 장치에 심은 후 원하는 시간에 동시에 폭발시킴으로써, 헤즈볼라 입장에서 '역사상 최악의 방첩 실패'라는 오점을 기록했다.

18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등 전국 각지에서 헤즈볼라의 호출기 수천 개가 폭발해 최소 9명이 숨지고 2750명이 다치는 등 30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레바논 보안 당국과 헤즈볼라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폭발은 주로 베이루트 남부 교외와 레바논 동부 베카 지역, 다마스쿠스에서 발생했다. 사고 당시 호출기에서 경고음을 났고, 호출기 화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이어져 피해자 상당수가 손이나 얼굴, 복부, 허벅지를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호출기 공급망을 뚫고 들어간 이스라엘이 호출기 안에 폭발물을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폭발된 기기는 국내에서 '삐삐'로 불렸던 기기로, 호출음이나 단문 메시지 수신용이다.

레바논의 한 고위 안보 소식통은 이스라엘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폭발이 일어나기 몇 달 전 헤즈볼라가 주문한 호출기 5000개에 소량의 폭발물을 심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여러 소식통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이러한 음모는 수개월에 걸쳐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앞서 헤즈볼라는 지난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테러 이후 가자전쟁이 일어나자 도청과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무선호출기 사용을 늘렸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이 표적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폐기하라고 경고한 바 있다.

헤즈볼라가 대량으로 무선호출기를 주문하자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를 역이용해 공격 수단으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레바논 고위 안보 소식통은 헤즈볼라가 대만의 골드 아폴로사의 무선 호출기 AR-924 모델 5000대를 주문했으며, 올 봄 호출기가 레바논 안에 들어왔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각 기기의 배터리 옆에 1∼2온스(28∼56g)의 폭발물이 들어가 있었고, 이를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도 함께 있었다. 이스라엘은 무선호출기가 폭발하기 직전 수초간 신호음을 내게 하는 프로그램까지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다수의 피해자들은 무선호출기 화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호출기가 폭발하며 상처를 입었다. 이들은 대부분 손이나 얼굴, 복부를 다쳤다. 손가락을 잃거나 눈을 심각하게 다친 피해자도 있었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통신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암살 등 작전 수행을 해왔다. 지난 1972년 뮌헨올림픽 직후 프랑스 파리에 주재했던 마흐무드 함샤리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간부의 암살에는 유선전화가 동원됐다.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에 살해당한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에 대한 복수로 이스라엘은 함샤리 자택의 전화기에 폭탄을 설치했다. 이후 전화를 받기 위해 수화기에 손을 댄 함샤리는 폭발로 인해 중상을 입었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다.

다만 골드 아폴로 측은 폭발에 사용된 호출기는 자사 생산 제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쉬칭광 설립자는 로이터에 "골드 아폴로 역시 이 사고의 피해자"라며 상표권 계약을 맺은 유럽의 유통사가 생산·판매했다고 설명했다. 대만 경제부도 대만에서 호출기가 레바논으로 직접 수출된 기록이 없다고 밝혔다.

AP통신은 "골드 아폴로에 따르면 AR-924 호출기는 헝가리 수도에 본사를 둔 BAC 컨설팅 KFT가 제조했다"면서 "두 회사간 협력 계약에 따라 골드 아폴로는 지난 3년간 BAC가 지정된 지역에서 제품 판매를 위해 브랜드 상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고, 제품의 설계와 제조는 BAC가 책임지는 구조"라고 보도했다.

역사상 최악의 방첩 실패를 경험한 헤즈볼라는 조직 운영과 사기에 치명타를 입었다. 헤즈볼라는 즉각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경고했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에 대해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고 있다.

지역 안보 전문가인 아메르 알사바일레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전투원뿐 아니라 헤즈볼라와 연관이 있는 모든 이들을 일상에서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헤즈볼라에 심리적 타격을 입혔을 것"이라며 "헤즈볼라의 모든 구역에서 작전을 수행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번 공격으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미국이 전면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양측 모두 전면전을 원하지도 않는 분위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미국은 이번 사건을 미리 알지 못했다며 강하게 선을 그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항상 (중동의) 확전을 야기할 수 있는 어떤 형태의 사건에 대해서든 우려한다"며 이스라엘과 다른 당사자들에게 '외교적 해결'을 당부했다.

이미선기자 alread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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