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억 FA 공백 1년 만에 채워질 줄이야…"부끄럽다"지만 국대급 선수 도약, 롯데 '악바리' 2루수 기록도 넘본다
[OSEN=부산, 조형래 기자] “저에게 아직 확신이 없어요...부끄럽습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올 시즌 최고의 발견이라면, 입단 당시의 포지션인 5년 만에 회귀해서 자리를 잡고 주전까지 도약한 고승민(24)이 꼽힐 수 있다. 고승민은 2019년 1차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입단한 뒤 2루수로 기회를 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외야수로 전향했고 현역으로 병역을 해결했다. 2021년 11월 전역했고 2022년 복귀 첫 해, 주전 외야수로 자리 잡는 듯 했지만 2023년에는 1루수로 갑작스럽게 포지션을 변경했다. 포지션을 떠돌아 다니면서 고승민도 방황했지만 결국 그의 재능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책들이었다.
올해 고승민은 다시 2루수로 돌아왔다.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해 정착한 선수들은 많지만 다시 내야수로 돌아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통상적으로 송구 문제 때문에 내야를 포기하고 외야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승민의 케이스는 달랐다. 내야수로, 2루수로 복귀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주전 2루수로 나서는 것은 또 다른 의미였다. 특히 롯데는 지난 겨울, 2020년부터 4년간 주전 2루수를 도맡았던 안치홍이 다시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고 한화와 4+2년 총액 72억원에 계약하며 팀을 떠났다. 당시 샐러리캡 문제로 함께 FA 자격을 얻은 전준우를 잡는데 주력했고 안치홍은 그대로 떠나보내야 했다.
대체자를 찾아야 했는데 일단 2차 드래프트로 오선진 최항을 데려왔다. 하지만 확실한 주전급 선수라고 보긴 힘들었다. 2루 문제를 시즌 내내 안고 가는 듯 했다. 고승민을 2루수로 다시 불러들인 것은 당장의 대안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이었다. 개막전 선택 받은 2루수도 고승민이 아니었다. 고승민은 외야수로 다시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 기간 김민호 수비 코치와 함께 구슬땀을 흘렸고 김광수 벤치코치도 고승민의 잠재력을 인정했다. 김태형 감독도 고민했고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구한 뒤 2루수로 고정시켰다. 그 결과, 고승민은 현재 안치홍이 이탈한 2루 공백을 완전히 채우고 리그에서도 수준급 2루수로 거듭났다. 현재 고승민의 시즌 성적은 타율 3할8리(442타수 136안타) 12홈런 79타점 OPS .827. 이 성적을 바탕으로 오는 11월 열리는 WBSC 프리미어12 대표팀 예비 명단 60인에도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1년 만에 2루 공백을 확실하게 채우며 우상향했고 지난 17일에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고승민은 사직 LG전 2번 2루수로 선발 출장해 5타수 5안타(1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 하면서 팀의 7-3 승리를 이끌었다. 그런데 이 5안타가 단순한 안타가 아니었다. 고승민은 1회 중전안타, 3회 우중간 3루타, 5회 좌전안타, 7회 우월 솔로포, 그리고 8회 우중간 2루타까지 때려내면서 힛 포 더 사이클 대기록을 달성했다.
올 시즌에는 KIA 김도영에 이은 두 번째, 리그 역사에서도 32번 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자 대기록. 롯데에서는 총 4명의 선수가 이 기록을 달성했다. 정구선(1987년), 김응국(1996년), 오윤석(2020년)에 이어 고승민이 이름을 올렸다.
고승민은 경기 후 “기록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중간에 더그아웃에서 누가 말했는데 그것도 너무 더워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잊어버렸다”라면서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었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정말 의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말로만 듣던 기록이라서 실감은 안난다. 8회 2루타 때 사실 1루 유재신 코치님이 ‘2루에서 멈춰라’고 하시더라. 저는 처음에 잡힌 줄 알고 1루에서 멈췄는데 2루를 가서 또 빠진 것을 확인하면 3루로 가야하지 않나. 그런데 코치님이 2루에서 멈추라고 하시더라”라며 “하지만 공이 더 빠졌으면 아마 3루로 갔을 것이다. 기록인 것을 알았어도 그냥 3루를 갔을 것이다”라고 돌아봤다. 그리고 “경기는 끝났으니까 남은 경기를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힘주어 말하는 고승민이다.
프리미어12 예비명단에 포함된 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고승민은 “제 이름이 올라간 게 너무 부끄럽다. 잘 하는 선배님들이 다 안나오지 않았나”라며 “이제 막 풀타임 1년차다. 아직 제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아직 이른 것 같다”라고 답했다.
아울러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다”라면서 “만약 올해 이렇게 잘하고 끝냈는데, 내년에 또 안 좋으면 그저 그런 선수이지 않나. 제가 더 꾸준하게 잘해서 자리를 완벽하게 잡고 나서 불안해하지 않을 시기에 대표팀에 가고 있다. 그러면 만족스러울 것 같다”라며 냉철하게 자신을 되돌아 봤다. 물론 “뽑히게 된다면 할 수 있다”라고 웃었다.
2루수 풀타임 1년차에 주전 확보는 물론 72억 FA 대안이 됐고 대표팀 발탁 가능성까지 생겼다. 또한 고승민은 이제 롯데 구단 2루수 한 시즌 최다 타점 신기록을 향해가 가고 있다. 롯데의 전설급 선수의 기록에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롯데 2루수 한 시즌 최다 타점 기록은 ‘악바리’, ‘탱크’로 불린 박정태가 갖고 있다. 1999년 83타점을 기록했다.
이미 고승민은 롯데 2루수 타점 순위 공동 4위에 올라 있고 박정태의 최다 기록에 4개 차이로 다가섰다. 타점 5개만 더 올리면 롯데 2루수 한 시즌 최다 타점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2루수 풀타임 1년차에 구단 역사에 남을 2루수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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