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국악 세계화에 온 힘”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새로운 ‘국악관현악’의 길을 연주자들과 함께 땀 흘리며 개척하고 있습니다.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예술단이 되도록 단원과 함께 혼신의 힘을 다할 것입니다.”
도전과 자유로움으로 대표되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김성진 예술감독은 국악관현악과 서양 오케스트라의 ‘경계’를 걷는 지휘자로 통한다. 동서양의 뛰어난 작곡가, 연주자들과의 협업으로 국가와 장르를 넘어선 새로운 음악을 창작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수장이 된 김 예술감독은 ‘고향의 정서로 국악의 세계화’를 모토로 한다. 그를 만나 예술단 운영 구상을 포함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들어봤다.
■ 경기시나위 음악의 역동적 변화·국악당 활성화…‘정상’으로 가는 여정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1996년 ‘경기도의 소리를 중심으로 한 한국 전통 음악의 계승 및 발전’을 목표로 창단한 경기도를 대표하는 예술단체다. 정악, 민속악, 궁중음악부터 무용음악, 관현악, 현대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 음악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국내 유일의 예술단이기도 하다.
김 예술감독은 취임 이전부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연주력과 레퍼토리를 다각도로 분석했고 취임 후에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꼼꼼히 설계했다.
그는 “취임한 직후에는 ‘음악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며 “경기도는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데 용인에 있는 경기국악원 국악당엔 좀처럼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시나위의 음악이 역동적으로 변화해 정점에 올라야 하는 건 물론이고 국악당 역시 경기도민과 음악을 만드는 단원 모두에게 국내 최고의 장소가 되도록 제반 시설 등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클래식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지휘법을 공부한 김 예술감독은 1993년 KBS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며 국악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서울시국악관현악단장, 청주시시립국악단 예술감독, 서울시청소년국악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특히 서양음악 전공자로는 최초로 국악관현악단장, 예술감독 등을 맡아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악기 간 조화, 박자 등을 다듬어 정교함을 더하고 한국적 정서를 소리로 구현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서 있는 국악지휘자로 이름을 떨쳤다.
김 예술감독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국악의 대중화’, ‘국악의 세계화’라는 지향점이 같아 시너지를 내고 있다”며 “‘보석’ 같은 경기시나위 단원들은 모두 음악에 ‘진심’이다. 연주회 레퍼토리가 정해지면 전체가 함께하는 연습 외에 단원 개개인이 모두 연습실을 찾아 밤 늦게까지 곡을 분석하고 쉼 없이 연습한다”고 말했다.
■ 성공 신호탄 쏘아 올린 ‘국악당 활성화’
김 예술감독은 취임 직후부터 경기국악원 국악당의 활성화를 과제로 꼽았다. 용인 경기국악원은 한국 전통예술을 활성화시키고 도민과 외국인 관광객 등에게 다양한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2004년 개관했다. 공연장과 함께 강습실, 합주실, 악기보관실 등 제반사항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 시설이 노후하고 국악 공연만 진행되는 데다 그마저 코로나19 등으로 공연이 줄어들자 점차 국악당을 찾는 관객들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김 예술감독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대부분 공연을 국악당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에 이뤄진 경기시나위의 세 차례 공연이 모두 국악당에서 진행됐는데 특히 모든 공연이 매진을 기록하며 국악당 활성화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3월30일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경기시나위의 레퍼토리 공연 ‘Weekend Concert-오후 4시’는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다양한 관객층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관현악, 민요, 사물놀이, 전통음악, 무용 등의 친숙하고 쉬운 음악으로 주말 콘서트를 진행했다. 국악이 어렵지 않도록 방송인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린데만이 해설자로 나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Weekend Concert-오후 4시’는 각기 다른 테마로 5월25일(효), 7월27일(전통) 공연을 이어갔고 모두 큰 인기를 얻었다.
김 예술감독은 “국악당에서 어느 날 반대편을 바라보니 대단지 아파트가 눈에 띄었다”며 “그 순간 아파트 주민들만 오셔도 국악당이 충분히 만석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후 4시’ 콘서트를 친숙하고 쉽게 바꿔 알렸고 결과가 좋았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경기시나위와 국악당이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선보인 국악인형극 ‘천하태평 지구를 지켜라!’는 어린이 관람객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으면서 전석 매진을 기록, 한 차례 예정이었던 공연을 두 차례로 늘려가며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김 예술감독은 하반기 송년음악회를 비롯해 상반기에 성공을 거뒀던 레퍼토리 공연 등을 내년에도 국악당에서 꾸준히 선보여 국악당의 안정적 활성화를 이끌 계획이다.
■ 경기시나위만의 지속가능한 음악…‘레퍼토리 확장’
그가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확장’이다. 서양 오케스트라의 경우 말러, 베토벤, 드보르자크 등 주요 레퍼토리를 내세우고 관객들이 찾는 반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손에 꼽히는 레퍼토리가 특별히 없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그동안 공들여 수많은 연습 끝에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도 연주회마다 새로운 레퍼토리가 등장하거나 초연되고 사라지는 곡이 많아 작품 간 연계성이 부족해 단절돼 왔다.
이에 김 예술감독은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에도 무대에 올린 작품들이 축적되고 연속성을 가져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레퍼토리 창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주요 레퍼토리를 발굴하고 확장해 관객층을 두텁게 만들고 청중이 꾸준히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김 예술감독은 “찰나에 반짝이다 사라지는 음악이 있고, 지속적으로 사랑받으며 길게 가는 음악이 있다. 우리는 아직도 200년, 300년 전에 만들어진 클래식을 듣기 때문에 후자는 클래식에 속한다”며 “빛이 사라지는 동시에 청중도 사라지는 음악이 아닌, 고유의 영역에서 지속가능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 연주되고, 청중에게 익숙해지는 곡, 경기도이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고유의 곡이 필요하다. 한 번 짓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계속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4월 수원시립합창단과 함께 경기민요를 합창으로 선보인 ‘노랫가락’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또 5월에는 시대를 풍미한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를 국악관현악 버전으로 선보여 우리 악기에 대한 애정 등을 녹여내며 주목받았다.
“듣는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항상 스스로를 채찍질한다”는 김 예술감독은 “지휘자는 무대에 서기 전 80명의 소리를 듣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제일 많이 듣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악을 일정한 틀에 가두지 않고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동시에 청중에게 사랑받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를 발굴하는 데에도 빈틈이 없다.
■ 이탈리아, 튀르키예에 ‘우리 가락’의 아름다움 알린다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 우리 여기에 있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김 예술감독은 ‘국악의 세계화’를 통해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각오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지난달 튀르키예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이달 이탈리아에서도 공연을 선보인다. 특히 17일엔 이탈리아 밀라노 카르카노극장에서 우리 장단과 가락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알리고 20일엔 제노바 폴리테아마 제노베제극장에서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이들 공연은 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이다.
김 예술감독은 국악에 대한 우리의 익숙함이 외국인에겐 생소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생소함과 익숙함의 경계에서 조화를 찾아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곡, 또 이탈리아에서 사랑받는 곡을 우리 음악과 혼합한 곡 등을 함께 선보일 계획이다.
공연에선 한강수타령 주제의 의한 국악관현악 ‘이화 도화 만발하니’로 무대의 포문을 연다. 이 곡은 경기민요 ‘한강수타령’ 선율을 바탕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곡명은 경기민요 ‘사철가’의 가사에서 가져왔다. 곡은 가야금의 잔잔한 선율로 시작해 봄의 신선한 바람과 희망을 상상하게 한다. 특히 다양한 리듬 패턴을 사용해 역동적 변화, 미래를 향한 도전과 희망을 힘차게 표현한다.
이어 대나무로 만든 한국의 전통 관악기 ‘파리’의 독특한 선율과 전통적인 색채가 잘 표현된 ‘창부타령’을 선보인다. 또 한국의 무속음악에서 유래된 ‘비나리’를 사물악기 반주와 국악관현악에 맞게 편곡해 우리 전통의 정서를 이어간다.
특히 국악관현악과 두 명이 이탈리아 오보에 연주자가 함께하는 협연곡 ‘Transfiguration’이 연주될 예정이다. 이 곡은 구슬프지만 서정적이며 우아한 선율이 돋보이면서도 빠르고 강렬하며 역동적인 리듬 전개가 특징이다. 국악관현악과 서양악기 오보에와의 새로운 음악적 구조의 배합을 시도하며 국악의 세계화를 위해 작곡돼 의미가 있다.
무대의 마지막은 ‘나부코아리랑’이 장식한다. 한국 대표 민요인 ‘아리랑’과 이탈리아 오페라 ‘나부코’의 합창곡 ‘Va, pensiero’가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앞으로 계속될 한국-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만남을 희망하는 의미를 담았다.
■ ‘가장 사랑받는 경기도 예술단’ 향한 도약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국악관현악을 연주하는 유일무이한 예술단이다. 우리의 전통음악이자 고유한 창작음악을 선보이면서도 다양한 예술장르와 융합하는 창의적인 시도를 통해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김 예술감독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경기도뿐만 아니라 국내, 전 세계의 ‘보물’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김 예술감독은 경기민요를 통한 경기도 천년 유산의 지향, 판소리와 합창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입체적 무대, 관객들과의 쌍방향 소통, 찾아가는 음악회 등으로 ‘가장 사랑받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꿈꾼다. 특히 ‘대한민국 악단 중 앙상블이 가장 좋다’, ‘레퍼토리가 가장 많다’, ‘프로그램을 정말 잘한다’ 등의 평가를 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올해 하반기에는 12명의 젊은 작곡가들의 초연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十二 작곡가’ 공연과 미래의 명인을 발굴하기 위한 ‘젊은 명인’ 공연도 마련했습니다. 내년에도 더욱 완성도 높은 무대와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작품으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드릴테니, 기대해주십시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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