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공허함, 한국이 채워줬다”…그래미상 탄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로 변신

윤인하 기자(ihyoon24@mk.co.kr) 2024. 9. 1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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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음악 엔지니어 겸 프로듀서 영인(YUNGIN·데이비드 김) [연합뉴스]
“나는 스스로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한국말이나 문화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공허함이 느껴지더라. 그 공허함을 한국이 채워줬다.”

그래미는 미국 음반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지난 2020년 이 상을 직접 거머쥔 영인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런 그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깨달음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정규 앨범 발매를 계기로 최근 방한한 음악 엔지니어 영인(YUNGIN·데이비드 김)은 1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발리를 갔는데, 경유지인 부산에서 도시의 풍경을 쳐다보며 갑자기 눈물이 나오더라”며 “한국 사람인데 한국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비어 있던 마음이 차올랐다. 그때부터 한국에 자주 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네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영인은 미국 음악 시장에서 알아주는 스타 엔지니어다.

그가 엔지니어로 참여한 켄드릭 라마의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To Pimp a Butterfly)와 닙시 허슬의 ‘랙스 인 더 미들’(Racks In The Middle)은 각각 2015년과 2019년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했다.

영인은 나스의 ‘킹스 디지즈’(King’s Disease)로 2020년 본인이 직접 그래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려 그라모폰(그래미 트로피)을 품에 안았다.

영인은 최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정규음반 ‘디드 유 노? 파트 1’(Did You Know? Part 1)을 내고 엔지니어에서 프로듀서로 변신했다.

이 앨범에는 박재범, 제시, 카모, 릴체리, 창모, 소코도모, BM, 바비, 도끼 등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앨범 재킷 이미지도 눈길을 끈다. 영인은 어릴 때 서울 남산 퇴계 이황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을 재킷 이미지로 내세웠다. 미국에서 성공했지만, 한국에 둔 자신의 ‘뿌리’를 되짚어간다는 의미다.

영인 첫 정규음반 ‘디드 유 노? 파트 1’ 커버 이미지 [연합뉴스]
그는 K팝 아티스트에게 ‘꿈의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 도전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영인은 “K팝은 들을 때는 굉장히 멋있지만, 음악이 끝나면 ‘다음은 뭐지?’(What’s Next)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도 “정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관되게 ‘느낌’을 강조했다.

그는 “느낌이 바로 노래가 좋은지 나쁜지 가르는 요소”라며 “아무리 노래를 잘 쓰거나 믹싱을 잘해도 느낌이 없으면 안 된다. 느낌을 받으려고 노래를 듣는 게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엔지니어는 있는 노래를 ‘반짝반짝’하게 빛내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 작업에서도 창의적(Creative)인 것들을 배웠어요. 그래서 저한테 음악을 가지고 가면 비트 조합이나 편곡도 좋게 바뀐다고 소문이 났죠. 제 귀가 그렇게 음악을 잘 듣는 좋은 귀는 아닙니다. 다만 분위기를 잘 잡는 엔지니어인 거죠.”

영인은 “엔지니어로 앨범 작업에 참여하면서 나도 내 음악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막상 해 보니 사운드를 만드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영감을 얻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고 설명했다.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은 PH-1·저스디스가 참여한 ‘터뷸런스’(Turbulence)와 박재범이 참여한 ‘스탠드 아웃’(Stand Out)이다. 영인은 이들 노래에서 성공 혹은 인정을 향한 자신의 투쟁과 노력을 묘사해냈다.

영인은 7∼8살 무렵 친구가 워크맨으로 듣던 나스의 음악으로 힙합을 처음 접했다. 그전까지 교회 음악만 듣던 그에게는 ‘아주 좋은데?’란 생각이 퍼뜩 들었단다. 그는 곧바로 음반 가게에 달려가 나스의 CD를 샀고, 그때부터 힙합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는 “아시아인은 조용하고 공부만 잘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서 미식축구·농구·야구 같은 운동도 많이 했고, 음악도 들었다”며 “DMX·투팍·제이지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인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허리 부상으로 미식축구 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고, 큰 뜻 없이 진학한 대학교 경영학부는 곧 그만뒀다. 20대 초반 방황의 시기를 보내던 그는 뮤지션스 인스티튜트(Musicians Institute)의 인디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꿈을 찾았다.

영인은 “소리에 조금씩 관심이 생겼다”며 “음악이 인생의 대답이 됐다. 이후 정식으로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에 입학했고, 이후로는 줄곧 A만 받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그러나 1등으로 학교를 졸업하고도 2년 동안 대중음악계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정상에서 바닥으로 팍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영인은 어느 스튜디오에서 일자리를 찾아 심부름과 청소 등을 하며 인턴처럼 4년을 보냈다. 그러다 미국 가수 겸 배우 제이미 폭스와 작업할 기회를 얻으면서 엔지니어로서 그의 커리어가 시작됐다.

그는 “음악은 슬플 때 나를 달래주고, 행복할 때는 기쁨을 나누는 친구”라며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만은 나를 이해하는 친구가 돼 줬다. 그래서 힘든 시기 밖에 나가지 않아도 음악만 있으면 괜찮았다”고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이번 앨범으로 청자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주고 싶다”며 “‘넌 혼자가 아니다’(You‘re not alone)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영인은 내년 상반기 발매를 목표로 앨범 파트 투(Part 2)도 준비 중이다. 그는 “파트 원을 내보니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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