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공시 의무화 무기한 미룬 한국, 글로벌 압력 거세질 것”[인터뷰]
현대 금융의 탄생지 영국, ‘전환금융’으로 전환
영국은 주요 7개국(G7) 중 처음으로 석탄 화력발전소를 전부 폐쇄했다. 세계 최초로 석탄화력발전을 돌려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나라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화력발전을 전면 포기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 없이는 달성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전환금융은 기업의 저탄소 공정 전환을 지원하는 금융의 역할을 말한다. 금융 탄생지인 영국에서 전환금융을 빠르게 도입하는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돈이 그만큼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란 뜻이다.
하지만 한국은 돈과 관련된 기후변화 대응이 느리다. 상장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등 기후변화와 관련된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기후공시 의무화는 무기한 연기됐고, 한국의 기후예산 규모와 이행 정도는 그 누구도 모른다. 벤 칼데콧(Ben Caldecott) 옥스퍼드대 교수는 “만약 한국이 기후변화에서 무임승차를 한다면, 다른 나라들의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 태스크포스 공동 사무국장 겸 옥스퍼드 지속가능금융그룹 창립자인 칼데콧 교수를 지난 13일 만났다.
-영국이 최근 석탄화력발전소를 완전히 퇴출했다. 주요국 가운데 최초이고 애초 목표 시점보다도 1년 빨랐다.
“1882년 런던이 세계 최초로 석탄화력 발전소로 전기를 생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재생에너지가 예상보다 빠르고 크게 성장해 석탄을 단계적으로 퇴출할 수 있었다. 시장에서 탄소가격제(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비용 지출)가 도입되면서 석탄 화력발전의 수익성을 떨어뜨린 것도 영향을 줬다. 물론 영국 정부도 처음에는 화력발전소를 끄는 것을 주저했다. 전기가 끊길까? 안전할까?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1990년 영국 전기 공급량의 80%를 차지했던 석탄화력은 점차 줄어 지난해 1%로 떨어졌다. 2023년 기준 영국의 전력 생산은 가스 발전 34.7%, 풍력·태양광 32.8%, 원자력 13.8%, 바이오에너지 11.6%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은 석탄 39.7%, 원자력 41%, LNG 17.3%, 수력 1.7%로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정부의 규제와 민간기업의 자발적인 기술 투자 가운데 어떤 게 더 역할을 했나.
“마치 정부가 모든 실물 경제를 변화시킬 수 있고 그 후 금융이 들어와 지원한다고 일부에선 말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금융기관이 내리는 결정, 금융기관을 안내하는 정부 규제들이 자본 배분에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이를 위한 조건은 정책이 실질적이고 강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발표하면서도 기후공시 의무화 시기는 못박지 않았다. 기존 계획대로면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2025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를 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도입 시점이 ‘2026년 이후’로 무기한 밀렸다.
-한국에선 기업들이 스코프3(제품 공급과 소비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공시에 반대하면서 진척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기업에 밀리는 모양새다.
“기후공시 의무화를 미루는 건 기업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스코프3 배출량 측정은 숫자 자체가 정확치 않다는 한계가 있긴 하다. 나는 그 데이터의 오차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밝히는 한 괜찮다고 본다. 기업이 가진 배출 위험 노출을 밝히는 것 자체가 사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근본적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미 글로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재계 스코프3 반대에 공시의무화 미뤄져
“불충분한대로 공개하는 것도 의미”
“한국, 무임승차국 아니지만 규범 만들어야”
-세계경제포럼(WEF) 발표를 보면 2021년 한국의 에너지전환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0.7%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가운데 거의 가장 낮은 수준인데.
“국제협력에서 늘 나타나는 역학관계가 있다. 테러, 전쟁으로 인한 국방비, 부채 등 각국의 문제로 무임승차국이 생긴다. 국제적 협정만으론 무임승차를 막지 못한다. 유럽에선 무임승차를 막기위해 탄소국경조정 메커니즘을 도입하려는 논의가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선 탄소가격을 책정해야 하고, 그 과정이 공정하지 않으면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식이다. ”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한국을 기후변화 ‘무임승차국’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까지 한국은 기후변화 대응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무임승차국이라고 특정 짓지 않겠다. 또 한국의 일부 기업이 새로운 기술, 배터리, 원자력 발전 등에서 지속가능 경제 전환에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이 무임승차가 된다면, 여러 국가의 압력이 증가할 수 있다. 한국이 리더가 되어 규범과 규제들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줘야한다.”
-‘탄소 제거 예산’(carbon removal budget)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낸 적이 있다. 일반적인 기후변화 정부 예산과 어떻게 다른가.
“현재 예산은 대기중에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에 대한 것이다. 제거 예산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데 쓰는 방식이다. 탈탄소를 하고 싶어도 모든 부문을 막을 수는 없다. 여전히 소고기는 먹어야하고,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소에서 나오는 메탄과 비행기의 연료 배출이 공중에 남는다. 여기서 나오는 잔여배출은 대기에서 직접 제거해야 하는데, 그 기술이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한국도 이 기술에 투자해볼 수 있다. 탄소 예산 중에 포스코가 부담해야 할 몫은 얼마일까. 포스코 때문에 필요한 탄소 제거는 얼마나 될까.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영국보다 훨씬 크다. 한국 경제 구조의 특성을 고려하면, 아마도 영국보다 더 많은 탄소 제거가 필요할 수 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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