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로 돌아온 류승완 감독의 뚝심[TF인터뷰]
'베테랑2'로 첫 후속편 선보여
"'공적인 분노가 정당한가'를 물어보고 싶었어요"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테랑2' 개봉을 기념해 1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그는 자신의 첫 시리즈 영화를 선보이게 된 소감부터 흥행을 거둔 전편을 답습하지 않는 후속편을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한 과정까지 세세하게 들려줬다.
13일 스크린에 걸린 '베테랑2'는 나쁜 놈은 끝까지 잡는 베테랑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의 강력범죄수사대에 막내 형사 박선우(정해인 분)가 합류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액션범죄수사극으로, 1341만 명의 관객을 사로잡은 '베테랑'(2015)의 속편이다.
먼저 류 감독은 천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베테랑'의 후속편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9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이유를 밝혔다. 사연이 길다고 말문을 연 그는 "당시 '베테랑'은 대형 규모의 영화가 아니었어요. 추악한 재벌 3세의 이면을 다루는 데 예산이 풍족하지 않아서 쥐어짜면서 촬영했죠. 소위 말하는 배급사의 '텐트폴'이 아니어서 개봉이 계속 미뤄졌고 결국 여름에 개봉하게 됐어요. 그때 목표 스코어가 400만 명이었는데 3배 넘는 결과를 거뒀죠"라고 '베테랑'이 개봉하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했다.
"그래서 차기작을 만드는 데 부담이 생겼어요. 제가 영화 시리즈를 만드는 게 처음이었거든요. 그렇지만 '베테랑'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애정도가 높은 작품이었고 자연스럽게 서도철의 뒷이야기를 더 만들어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어서 하게 됐죠."
'베테랑2'는 조태오(유아인 분)라는 강력한 빌런을 처단하는 형사들로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던 전편과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 이번에는 정의와 신념이 충돌하는 이야기 안에서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사법 체계와 이슈만 좇는 사이버 레커 그리고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대중 등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을 꼬집으면서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미 성공을 거둔 전편의 공식을 따라갈 수 있었지만 이를 택하지 않은 류승완 감독이다. 이는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들이 '범죄도시' 시리즈와 '극한직업' 등 많은 형사의 이야기를 접해 왔고 자신에게도 결정적인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그는 "'베테랑'은 저를 분노하게 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시발점이 돼서 저의 분노를 영화로 해소하는 느낌이었어요. 관객들은 이에 열광했고요. 그런데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어이가 없네' 등이 '밈'으로 소환되는 걸 보면서 어느 순간 불편해졌어요"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어떤 사안에 관해 분노했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가 비난했던 가해자가 사실 피해자였던 경우가 간혹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에도 저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라면서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더라고요. 섬찟했어요. 그래서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내가 그동안 분노했던 게 정당한가'라는 의문이 들었고 위험하고 잘못된 신념이 정말 위험하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속편에서는 공적인 분노라는 것이 정당할 수 있나를 물어보고 싶었어요. 답을 낼 수는 없어도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잖아요."
제작 단계부터 '베테랑2'의 빌런에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작품은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빌런이 박선우임을 알리면서 시작된다. 이는 메가폰을 잡은 류 감독이 빌런의 정체보다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9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도철의 성장에 더욱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류 감독은 "전편에서 서도철이 자식에게 '사람을 때려서 깽값을 물어주는 건 참아도 어디 가서 쥐어 터지고 오는 건 못참아'라고 해요. 그때는 재밌는 톤이라고 생각했고 관객들도 웃었는데 제 아이들이 크면서 잘못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래서 서도철의 성장이 중요했어요. 이 사람은 세계평화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지키려는 거거든요. 대단하지 않지만 또 대단하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건 어쩌면 매일이 전투예요. 서도철이 가정사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이 일에도 영향을 주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중요한 요소라고 봤어요. 그래서 서도철의 가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해치'라는 사회현상을 다루지만 영화를 만드는 내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장면은 '아빠가 생각이 짧았다'라고 말하는 거였어요. 반성할 줄 아는 어른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해요."
새로운 빌런 박선우의 설정값에 관해 이야기했다. 전편의 조태오는 타인이 볼 때는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로 여겨지지만 스스로는 악행이 아니고 정당한 행동으로 봤다면, 박선우는 스스로도 혼란을 겪는 인물이었다고. 특히 인간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가장 두려워한다고 생각했다는 류 감독은 "그래서 제가 박선우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또렷하게 갖고 있었지만 배우에게도 이야기를 안 했어요. 배우도 혼란의 상태에 있길 바랐거든요. 어쩌면 '해치'의 목적은 대중의 혼란을 즐기는 거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서도철이라는 형사가 등장한 거죠"라고 덧붙였다.
'베테랑2'의 빌런으로 활약한 정해인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은 류승완 감독이다. '시동'(2019) 촬영장에서 정해인과 처음 인사했다는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다산의 자손은 다르더라고요. 짝다리도 안 짚고 늘 두 손을 모으고 해맑은 미소를 띠며 경청하더라고요. 술을 마셔도 흐트러지지 않고요"라며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뭘 하냐고 물었더니 운동한다면서 씩 웃는데 그게 무서웠어요. 섬뜩했어요. 원자력 발전소 안에 들끓고 있는 걸 모르잖아요. 그 고요함이 무서웠어요"라고 캐스팅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류승완 감독이 정해인과 관련된 답변을 이어가고 있을 때 마침 정해인이 인터뷰가 진행되는 2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수트를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환하게 웃었고, 이를 본 류 감독은 "저것 좀 봐라. 무섭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또한 그는 황정민이 정해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MT를 갔고, 당시 현장에 조인성이 깜짝 방문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는 미담도 털어놔 훈훈함을 더했다.
끝으로 류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극장에서 보는 특별함'을 줄 수 있을지 거듭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는 "내가 모르는 몇백 명의 사람들과 조용히 숨죽여서 함께 응원하고 소리 지르는 경험을 어떻게 하면 더욱 특별하게 만들 수 있을까 또 기대한 것을 어떻게 충족시키고 내가 만든 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에 집중했어요. 다음에도 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할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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