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불황에도 반도체 천수답…낙수효과는 '아직'
엄민재 기자 2024. 9. 18. 09:57
▲ 반도체,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2년 넘게 반도체 중심의 대기업 투자 지원을 강화하고 있지만 애초 기대한 낙수효과는 체감이 어렵다는 평가가 대다수입니다.
최근 대기업의 뚜렷한 성장세와 달리 중소기업 생산은 2년째 후퇴하며 팬데믹 수준의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부담까지 늘면서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은 지난해 1원의 순이익도 내지 못했습니다.
전체 법인 수의 94%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차가워진 경기는 가계 실질소득 부진으로 이어져 내수의 발목을 잡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에도 반도체 등 대기업 중심으로 감세·비과세를 확대합니다.
내년 중소기업의 조세지출 수혜 비중은 줄고 대기업은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될 전망입니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 비과세·감세 등 조세지출의 중소기업 수혜 비중은 68.5%로 올해(75.6%)보다 7.1%포인트(p)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중견기업(4.0→3.6%), 기타기업(10.8→10.0%) 등도 수혜 비중이 하락합니다.
반면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의 수혜 비중만 9.7%에서 17.9%로 상승할 전망이다.
2017년(20.4%)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내년 대기업 실적 회복 전망에 따라 연구개발(R&D)·통합투자세액공제 규모가 커지면서 대기업 수혜 비중이 증가한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입니다.
정부는 대기업의 연구·개발 등에 인센티브를 줘 투자를 늘리고 이를 통해 경기가 살아나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일관되게 강조해 온 원칙입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정부가 막연하게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인센티브를 주는 데 따른 투자 행위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2년 넘게 계속된 대기업 지원 정책에도 정부가 기대한 경기 선순환 효과는 '아직'이라는 점입니다.
반도체 업황 회복과 정부 지원에 힘입어 대기업 경기는 살아나고 있지만 전체 기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올해 1∼7월 중소기업 제조업 생산지수는 2년째 감소하며 2020년(97.7)과 비슷한 수준인 98.2까지 떨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생산지수가 96.7에서 113.7로 상승한 대기업과 온도 차가 큽니다.
엔데믹 이후에도 기지개를 켜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냉골' 경기는 법인세 신고 실적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 0원 이하'를 신고한 무실적·결손 중소기업은 40만 1천793곳으로 처음 40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전체 중소기업(96만4천736개)의 41.6%로, 중소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이 작년 순이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무실적·결손 중소기업 비중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39.5%로 40%를 밑돌았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인 2020∼202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40%를 웃돌았습니다.
업황 부진 탓에 빚으로 버티던 중소기업이 고금리로 급증한 이자 부담까지 떠안으면서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최근 경기를 보면 수출만 회복세고 그마저도 반도체·조선·자동차 등 몇몇 주력 품목만 해당하는 것"이라며 "핵심 분야 수출기업이 아니면 대부분 기업·산업이 어렵다는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생산 증가·감소 업종의 비율을 보여주는 생산확산지수에서도 중소기업의 부진을 엿볼 수 있습니다.
생산확산지수는 생산의 증감 폭·가중치 등을 반영하지 않고 증감 방향만 나타내기 때문에 다양한 업종에 속한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전달보다 생산이 늘어난 광공업종은 23개였던 반면 생산이 줄거나 같았던 업종은 49개로 두 배 이상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생산확산지수(32.6)는 반도체 위기로 한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던 2022년 12월(16.7)에 이어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수출 회복세가 뚜렷해졌지만, 여전히 '낙수효과'는 체감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수출 호조세에도 가구 실질소득이 정체하고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는 이유도 중소기업 부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최근 2년 중 4개 분기 동안 가구 실질소득은 1년 전보다 줄었습니다.
감소 폭도 작게는 1.0%에서 많게는 3.9%에 달했다.
나머지 4개 분기 실질소득은 늘었지만 증가 폭은 모두 0%대에 그쳤습니다.
빠듯한 가계 살림은 소비를 제약하는 주된 요인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수출(생산) 측면의 경기 회복세가 소비에 미치는 낙수효과는 아직 미약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김광석 실장은 "중소기업 부진과 내수 부진은 서로 직결되는 사안"이라며 "고용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어려우면 고용 불안정, 소득 불안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를 제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엄민재 기자 happym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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