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플랫폼 규제 재시동…업계 "'사전지정' 없어도 역차별 우려 여전"

윤정민 기자 2024. 9. 1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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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플랫폼법 입법 대신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
사전지정 빠졌으나 국내외 기업 역차별 등 업계 우려 여전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티메프 피해자 검은우산 비대위가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구영배 큐텐 대표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2024.08.30.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정부가 네이버, 카카오, 구글, 메타 등 일부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자사우대 등 4대 반경쟁행위를 규제하는 사전지정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시장 독점력이 있는 플랫폼 기업을 사후 추정해 반경쟁행위 위반 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해 서비스 임시중지명령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플랫폼 업계 사정을 고려해 한발 물러난 것처럼 보일 뿐 기존 입법 취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 문제, 경쟁 제한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사업자에 지워 부담을 가중하는 등 업계 우려 사항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또 서비스 임시중지 명령을 내릴 경우 당장 서비스 이용이 필요한 소비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전지정 대신 사후추정…사업자, 경쟁 제한 없다는 점 입증해야

"사실상 사전지정만 빠진 플랫폼법…업계 우려 고려 안 해"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 및 티몬·위메프사태 재발방지 입법방향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09.09. kkssmm99@newsis.com

지난 9일 공정위가 발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사전 지정 대신 법 위반사항이 발생했을 때 지배적 사업자 여부를 판단하는 사후 추정 방식을 채택하기로 했다. 또 별도 독자 법안 대신 공정거래법 내에서 개정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공정위는 그동안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자를 사전 지정해 이들 사업자의 반경쟁행위를 금지하는 플랫폼경쟁촉진법(플랫폼법) 도입을 추진해 왔으나 업계가 반발하면서 이같은 수정안을 제시한 것이다.

사후 추정 요건은 1개 회사 시장 점유율 60% 이상·이용자 수 1000만명 이상이거나, 3개 이하 회사 시장 점유율 85% 이상·각 사별 이용자 수 2000만명 이상인 경우다.

규율 분야는 ▲중개 ▲검색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운영체제 ▲광고 등 6개 서비스다. 이러한 기준들을 반영했을 때 한 자릿수 정도의 기업이 규율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업계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구글, 애플, 메타 등이 대상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법안이 시행될 경우 정부는 시장 영향력이 큰 지배적 플랫폼이 자사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자사 플랫폼 이용자가 타사 플랫폼 이용 방해하는 행위), 최혜대우 요구(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타사 플랫폼보다 유리한 거래 조건 강요) 등 반경쟁행위 위반 시 관련 매출액의 최대 8%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으로는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경우 과징금이 관련 매출액의 6%지만 법 개정 시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더 높은 비율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또한 플랫폼 사업자가 반경쟁행위에 경쟁제한성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도록 했다. 기존에는 공정위가 법 위반 의심 행위와 이로 인한 경쟁제한성이 발생한 점을 모두 입증해야 했다.

아울러 개정안에는 서비스 임시중지명령 제도도 도입된다. 정식 시정조치를 내리기 전 임시 형태의 명령을 신속히 부과해 피해를 방지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정부의 플랫폼 규제 재시동에 업계·학계에서는 또다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사전지정제 도입을 철회했지만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더라도 업계가 그동안 제기했던 플랫폼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후퇴, 양보한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 제한이 없다는 걸 기업에 책임을 지우는 건 기존 플랫폼법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학계에서는 이미 입증 책임을 사업자에 전가하는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국헌법학회가 연 세미나에서 입증 책임을 사업자에 전가하는 것에 대해 자기책임 원리, 과잉금지 원칙 등 헌법 요소를 위배한다고 주장했다.

황 교수는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국가가 부담해야 할 입증책임을 규제 대상인 사업자에 전가하는 것은, 자기가 결정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써 자기책임 원리의 위반"이라고 말했다. 또 "입증책임은 시장조사 권한도 없는 사업자에 전가하는 점은 법익의 균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도 업계가 플랫폼법 입법 때 지적했던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 우려를 해결하지 못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을 보면 구글, 애플, 메타 등 해외 플랫폼 사업자가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 사업자가 만약 반경쟁행위로 과징금을 낼 상황이 생겨도 낼 의향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메타, 구글 등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 처분에 행정소송을 제기해 2년 가까이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사업자는 국내 매출을 해외로 돌려 산정하는 경우가 있다. 과징금을 현실성 있게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사전 지정제 빼고는 정부가 원했던 게 다 들어갔다"며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해야 하는 토종 플랫폼을 진흥시키려는 것보다 오히려 족쇄를 채우려는 정부 시각이 바뀌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0일 성명서를 통해 이러한 당정 입법안에 대해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지정규정을 전면으로 후퇴시킨 졸속 수정이자, 규율 대상도 없이 규제 규정을 도입하겠다는 논리적 역설로 얼룩진 누더기"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지배적 사업자 요건 완화로 쿠팡, 배달의민족 등이 점유율, 매출 기준에 충족하지 않아 대상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독자적으로 플랫폼법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당정 입법안보다 강도가 더 높은 규제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 우려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감언론 뉴시스 alpac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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