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술] ③인천관광 활성화 견인차 '개항로 맥주'
"시민 사랑받는 지역 대표 맥주로 성장하고 싶어"
[※편집자 주 = 한 지역의 특산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고장을 대표하는 술입니다. 지역특산주는 외지에서 찾아온 방문객에게는 훌륭한 관광상품이자 주민들에게는 팍팍한 삶의 애환을 달래는 친근한 벗이기도 합니다. 연합뉴스는 추석을 맞아 인천을 대표하는 술과 그 술을 빚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획기사 3편을 송고합니다.]
(인천=연합뉴스) 황정환 기자 = 인천항 인근 개항장은 100년 넘게 인천 최대 번화가이자 중심지였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서구의 다양한 문물이 인천을 통해 유입됐고, 각국 조계지가 설정되며 국내 최초의 국제도시도 이곳 일대에 형성됐다.
1990년대 들어 인천 곳곳에서 이뤄진 신도시 개발로 과거의 영화를 내주며 쇠락의 길을 걷게 됐지만 그나마 최근 원도심 재생과 근대 문화유산 복원으로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다.
개항장 일대를 걷다 보면 파란 벽돌로 쌓은 외벽이 인상적인 2층짜리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이 바로 인천을 대표하는 맥주 양조장 '인천맥주'다.
'개항로 맥주'를 아시나요…인천에서만 판매
'인천맥주'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개항로 맥주는 인천에서만 맛볼 수 있다.
이 맥주는 3대째 인천에 살고 있는 박지훈(48) 대표가 개발했다.
박 대표가 처음부터 양조장을 운영한 것은 아니다.
그는 2016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수제 맥줏집을 열었다가 양조장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다른 양조장에서 납품받는 수제 맥주로는 본인이 원하는 맛을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2018년 개항로에 양조장을 연 뒤 맥주를 공급하는 수제 맥줏집이 30여곳까지 늘어나는 등 사업이 순항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당시 그는 단순히 사업의 외연을 확장하기보다 '지역성'이 담긴 제품을 만들어야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탄생한 맥주가 바로 2020년 출시된 '개항로 맥주'다.
박 대표는 "사업을 정비하면서 인천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맥주를 만들고 싶었다"며 "맥주 이름은 개항장의 역사를 담아 '개항로'라고 지었다"고 설명했다.
차별화한 맛으로 승부…지역 주민과 만든 홍보 포스터
'개항로 맥주'는 라거 맥주로 알코올 도수는 4.5도다.
기존 라거 맥주와 달리 보리 풍미와 홉(hop)의 과일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데 차별점을 두었다. 잡냄새 없이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개항로 맥주에는 보리에 싹을 틔운 맥아(몰트) 3가지와 홉 2가지가 사용된다.
우선 맥아를 분쇄해 65∼67도 온수에 한 시간 정도 담갔다가 당(맥아즙)을 추출한다. 맥아즙에는 홉을 첨가하고 2천L(리터)짜리 발효조에서 5일가량 발효 과정을 거친다. 이후 2∼3도 저온에서 6주가량 숙성한 뒤 병입 과정을 거쳐 제품이 완성된다.
'인천맥주' 양조장에서는 한 달에 3만병(500cc)가량의 맥주가 생산된다.
개항로 맥주는 인천 지역 음식점과 술집, 대형마트 등 350여곳에서만 구매해 맛볼 수 있다.
박 대표는 "숙성 기간에 따라 맥주 맛과 탁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라거는 저온에서 오래 숙성해야 맛이 깔끔해진다"고 말했다.
레트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개항로 맥주 홍보 포스터는 주민들과 협업해 만들었다.
정장 차림에 맥주를 손에 든 강렬한 눈빛의 남성 모델은 동네 페인트 가게 주인아저씨다.
갈색 맥주병에 예스러운 느낌으로 적힌 '개항로' 글씨체는 60여년간 목간판을 제작한 지역 어르신의 작품이다.
개항로 맥주를 탄생시킨 박 대표 등 4명은 인천의 이미지를 드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인천시로부터 관광진흥 유공자 표창을 받기도 했다.
'기대 이상의 맛' 서울까지 입소문…지역 음식점들과 상생
로컬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개항로 맥주'는 지역 축제에서도 인기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5월 인천 개항장에서 열린 '1883 인천맥강파티'에 개항로 맥주 2천캔을 준비해 파티 참가 외국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인천맥주' 양조장 2층 펍(pub)에서 만난 박세희(31)씨는 "서울에서 소문을 듣고 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다"며 "인천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개항로 맥주가 지역을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양은경(34·여)씨는 "지인들에게 개항로 맥주를 자주 선물한다"며 "다른 지역 친구들에게 '인천에만 파는 맥주가 있다'고 얘기하면 솔깃해서 놀러 온다"고 귀띔했다.
박 대표는 2022년부터 지역 음식점들과 협업해 해당 업소의 음식과 어울리는 고유한 맛의 맥주를 제조해 공급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로 생산된 맥주는 병에 음식점 이름을 새겨주고 한정판으로 4천∼5천병 정도만 만든다.
'인천의 그 식당에 가야만' 맛볼 수 있는 맥주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그동안 인천의 음식점 6곳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박 대표는 "인천을 범죄도시로 비하하는 '마계인천'과 같은 오명에서 벗어나 살기 좋은 도시의 이미지를 널리 전파하고 싶다"며 "앞으로 인천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맥주, 지역의 대표 맥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hw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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