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의 유럽'은 끝났다…극우 정치 부상 배경엔 민족주의
내부 응집력 추구…보수적 가치 되돌리고 싶어하는 유권자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과 히틀러의 독일 총리 임명은 유럽 내 극우 세력 부상의 시작이었다. 이들 정부는 유럽인들,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깊은 상처와 공포를 남겼다. 그래서 극우는 유럽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금기시되는 단어다. 2차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는 이 이념의 패배를 알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극우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지하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던 극우는 지난 수년 간 세력을 키우더니 이제는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하지 않았다.
단순한 '백인 우월주의' 때문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코로나19 여파, 이주민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뒤섞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집권 여당을 뽑을 이유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과 민족주의의 결합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주역으로 꼽힌다.
16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지난 1일 치러진 독일 튀링겐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32~33%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
AfD는 지난달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 15.9%로 2위를 차지했다. 벨기에에서도 우파가 약진하며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성향의 자유당이 선두를 달리고 있고, 폴란드에서는 극우 남부연합당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 치러진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 득표율 33.2%로 1위를 기록했다. 결선 투표에서는 1위를 차지하지 못했으나 프랑스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엔 충분한 수치다.
그리피스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던컨 맥도넬은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우파의 부상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계속 성장하고 있다"며 "과거에는 극우파를 볼 수 없었던 국가에서도 급진 우파의 정규화와 확산이 분명히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차 대전 이후 평화와 번영을 이룩한 유럽에서 최근 몇 년간 극우 정당의 약진은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백인 우월주의'만으로는 설명 어려워…극우에 표던지는 젊은층
현재 유럽에 불어닥친 극우 돌풍은 과거의 우파 정당들처럼 '인종 우월주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모나쉬 대학교 정치학 및 국제관계학 교수인 벤 웰링스는 ABC뉴스에 "극우 정당은 전통적으로 권위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이며 인종차별적이었다"며 "하지만 현대의 급진적 우파는 조금 더 복잡하다"고 말했다.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불안을 기반으로 삼은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의 결합으로 극우가 득세하고 있다는 평가가 더 적절하다. 그리고 이들 정당에 표를 던지는 주된 유권자는 젊은이들이다.
싱크탱크 싱크유스의 데이터에 따르면 청년 유권자의 약 3분의 1이 프랑스 극우 RN과 폴란드 남부연합당에 표를 던졌다.
25세 미만 독일 유권자의 16%가 유럽의회 선거에서 AfD에 투표했고, 이탈리아 18~34세 유권자의 21%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VoX)는 25세 미만 유권자 중 12.4%의 지지를 얻었다. 덴마크에서도 극우 덴마크 민주당이 22~30세 유권자 10%의 표를 확보하며 4위로 올라섰다.
극우 정당에 표를 던진 청년 유권자들은 최근 급증했다. 독일에서 AfD에 투표한 24~30세 유권자는 2019년 유럽의회 선거와 비교해 11%포인트(p) 증가했다. 프랑스의 경우 RN을 뽑은 청년 유권자는 2019년 대비 10%p 올랐다.
유럽에서 강경 우파는 지난 25년 동안 몇 차례 부상했다. 오스트리아 극우파 정치인 요르그 하이더(2008년 사망)가 이끄는 자유당이 2010년 처음으로 중앙정부에 진출했고, 2015년 브렉시트와 함께 이주민 혐오와 자국 우선주의가 붐을 일으켰다.
각국에서의 극우 집단은 유사한 방식으로 젊은 유권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들이스트아이는 "포퓰리즘과 자신을 약자로 내세우는 반체제적 자세, 도널드 트럼프, 빅토르 오르반, 조지아 멜로니 등 강력하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는 것은 모두 효과적인 전술임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서구 문명의 '쇠퇴'에 대한 공포주의적 담론은 극우 운동을 더욱 확산시켰다.
◇내부 사회적 응집력 추구…보수적 가치 되돌리고 싶어하는 유권자
'민족주의'를 부각시키는 과정에서 이주민, 성소수자, 좌파 세력 등은 중심부에서 밀려났다. 알자지라는 "'이주민이 아님', '게이가 아님' 등으로 자신을 정의함으로써 일체감이 형성된다"며 "유럽은 내부 사회적 응집력을 추구하며 현대적 민족주의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때문에 오히려 이민자들이 많은 도시에서는 극우 정당이 세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유럽 젊은 층이 극우에 표를 던지긴 하지만, 극우 세력의 지지층은 단일하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몇십 년간 유럽연합(EU) 구축, 신자유주의 경제로의 전환, 세계화 등으로 보수적 가치가 소멸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라고 미들이스트아이는 전했다. 결국 보수적 가치를 다시 되돌리고 싶어하는 유권자들이 우파에 표를 던진다는 것.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과 결을 같이하는 셈이다.
또 경제 호황기를 누리지 못한 젊은 층들이 민족주의와 포퓰리즘이 결합한 정책에 쉽게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알자지라는 "오늘날 유럽은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핵심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뒤떨어져 있다"며 "중국의 전기 자동차가 독일 자동차를 대체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유럽은) 지정학적으로 방향 감각을 잃고 군사적으로 약하다"고 짚었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미래 민주주의 센터 공동 이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청년들의 불만을 연구하는 로베르토 포아는 CNN에 "서구 사회에는 두 가지 큰 분열이 있다고 본다"며 "경제적으로 성공한 지역과 뒤처진 지역 간 부의 격차, 그리고 삶의 기회에 대한 세대 간 격차"라고 분석했다.
독일 청년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한 사이먼 슈네처는 CNN에 "젊은이들은 처음 투표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의 결정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것은 누가 내 필요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yeseul@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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