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카지노·사이비 목사 수사…이면엔 필리핀 전현직 대통령 불화

박재하 기자 2024. 9.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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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전현직 대통령 연합…수사 칼끝엔 두테르테
내년 선거 앞두고 불화 점입가경…정국 혼란만 가중
13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법정에서 '예수 그리스도 왕국'(KOJC) 교회의 설립자인 아폴로 퀴볼로이(74)가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퀴볼로이는 수십 년간 필리핀과 미국에서 12~25세 여성 신도를 성착취한 혐의 등을 받아 체포됐다. 2024.09.13/ ⓒ AFP=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 단속과 대형 교회 목사의 체포.

최근 필리핀을 뒤흔든 이 두 가지 사건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올해 들어 계속됐던 전·현직 대통령 가문의 충돌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정권 유지를 위해 손을 잡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서로 갈라서면서 이런 일련의 단속도 '두테르테 힘 빼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이비 목사가 두테르테 정신적 지주?

17일(현지시간) 필리핀 현지매체 래플러와 인콰이어러 등을 종합하면 필리핀 내무부는 지난 8일 '예수 그리스도 왕국'(KOJC) 교회의 설립자인 아폴로 퀴볼로이(74)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퀴볼로이는 수백만 명의 신도를 거느리며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특히 퀴볼로이는 두테르테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신적 조언자로도 꼽힌다.

퀴볼로이는 수십 년간 필리핀과 미국에서 12~25세 여성 신도를 성 착취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2021년에는 아동 성매매와 결혼, 자금 세탁, 불법 입국 알선 등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배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필리핀 수사당국은 2022년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퀴볼로이 수사를 본격화했고, 최근 수천 명의 경찰 인력을 투입해 신도들과 2주간 대치한 끝에 퀴볼로이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두테르테는 공권력 남용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두테르테는 "권리가 짓밟히고 우리 법이 조롱당했다"라며 "정치적 괴롭힘, 박해, 폭력, 공권력 남용의 희생자가 된 KOJC 신도들에게 위로를 전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카지노. ⓒ AFP=뉴스1

◇두테르테 정부에서 성행한 불법 카지노

현재 필리핀 전역에서 벌어지는 중국 온라인 카지노 단속도 두테르테와 관련돼 있다.

POGO(필리핀역외게임사업자)로 불리는 이 온라인 카지노는 딜러가 필리핀에 있는 부스에서 게임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면 수천㎞ 떨어진 고객이 돈을 거는 구조로 돼 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2016년 취임 이후 고용과 세수 증가를 위해 POGO 면허 발급을 필리핀오락게임공사(PAGCOR)에 위임하고 측근을 공사 회장직에 앉혔다.

특히 POGO는 도박이 금지된 중국 본토 고객을 겨냥해 만들어졌으며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POGO 승인이 쉽게 나면서 불법 업체도 덩달아 급증했고, 이곳은 로맨스 스캠과 인신매매 등 범죄의 온상이 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필리핀 수사당국은 POGO 단속에 칼을 빼 들고 정치권에서도 필리핀이 POGO의 천국이 된 데는 두테르테의 책임이 크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다만 두테르테는 POGO가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던 2020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만큼, 현재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마닐라 대통령궁에서 열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여하고 있다. 2022.06.30/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점입가경 치닫는 가문 다툼

이처럼 필리핀 수사당국이 분주히 움직이면서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마르코스와 두테르테 가문 간 다툼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마르코스는 두테르테 가문과 동맹을 맺고 202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한때 두테르테의 딸 사라가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됐지만 두 가문 간 동맹으로 사라는 마르코스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하지만 시작부터 불안해 보였던 이 가문의 연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갈등의 중심에는 마르코스의 개헌 추진이 있었다.

마르코스는 독재자인 부친을 끌어내렸던 시민혁명 이후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이 외국인 투자 유치에 불리하다며 이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두테르테 측은 2028년 대선을 앞두고 마르코스가 6년 단임제로 제한된 대통령 임기를 연임제로 바꿔 장기 집권하려는 시도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마르코스는 두테르테를 최대 걸림돌로 보며 수사당국의 칼끝을 두테르테 일가에 겨누고 있다.

두테르테 역시 물러서지 않으면서 수개월간 군 장교들에게 마르코스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라고 설득하고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등, 필리핀 정국은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

월든 벨로 뉴욕주립대 사회학과 교수는 SCMP에 "정부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 권력투쟁은 효율적인 행정과 경제 성장, 개발 촉진에 필요한 관심을 차단할 것"이라며 "자기중심적인 엘리트들 간의 권력 다툼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고 꼬집었다.

필리핀 노동단체들이 22일 최저 임금 인상을 촉구하며 마닐라에서 거리 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민생은 내팽겨치고 링에 올라 서로 정쟁만 벌이는 '친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친중'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의 대형 모형들도 등장했다. 이날 이들이 향하는 국회의사당에서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예정돼 있다. 2024.07.22 ⓒ AFP=뉴스1 ⓒ News1 정지윤기자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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