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여야 내 분노 풀린다"…또래 골라 살인한 99년생 여성
정유정, 택시기사 촉으로 범행 발각…1~3심 모두 최연소 무기수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1999년 10월생) 범행의 끔찍함은 연쇄 살인마 이상이었다.
법도 그렇게 봤기 때문에 1심, 2심 ,3심 모두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사형이 사실상 사라진 점을 볼 때 법이 벌할 수 있는 최고 형량이었다.
◇ '우발적 살인' 주장하던 정유정, 첫 재판서 '계획범죄' 인정
정유정은 1심 첫 공판을 열린 2023년 9월 18일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에 변호인을 통해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변호인은 "계획범죄가 아니라는 내용을 철회하며 검찰이 제시한 200여 개의 증거 사용에도 동의한다"고 밝혔다.
앞서 정유정은 계획 살인이 우발적 범행보다 형량이 5~10년가량 높다는 점을 의식, '어쩌다 일어난 일'이라며 형량 줄이기에 나섰지만 모든 정황이 '계획범죄'임을 지적하자 손을 들고 말았다.
◇ 누적된 분노 해소 위해 피해자 물색…"사람 죽여야 내 분노 풀려"
정유정은 2023년 5월 26일 오후 부산시 금정구에 살고 있던 26세 여대생 A 씨를 살해 후 시신을 토막 낸 뒤 5월 27일 새벽 택시를 이용해 경남 양산시 동면 체육공원 인근 낙동강 변에 버렸다가 택시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 정유정은 불우한 성장환경, 대학 진학 및 취업 실패 등에 따른 분노를 쌓아두고 있었다. 정유정은 이 분노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묻지마 살인'을 선택했다.
그의 집에서는 "안 죽이면 분이 안 풀린다"는 메모가 발견됐으며 '살인 방법' '사체 유기' 등을 여러 차례 검색했다.
정유정은 자신이 150cm의 작은 체구였던 점을 감안해 범행이 용의하도록 희생자를 △ 여성 △ 혼자 거주할 것으로 좁혔다.
여기에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방심하기 쉬운 피해자 집을 범행 장소로 택했다.
이러한 조건에는 1대 1 개인 과외를 하는 여성만큼 좋은 대상은 없었다.
5월 20일 범행을 결심한 정유정은 과외앱을 뒤져 54명의 여성과 접촉한 끝에 A 씨를 희생자로 선택했다.
◇ 학생으로 가장해 피해자 집 찾아 느닷없이 흉기를…3시간여 시신 훼손
5월 24일 정유정은 A 씨에게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의 엄마'라는 메시지와 함께 '시범적으로 과외를 한번 해 본 뒤 결정하겠다, 26일 저녁 무렵 딸을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5월 26일 오후 5시50분쯤 교복차림으로 A 씨 집을 찾은 정유정은 수업 오리엔테이션을 준비하던 피해자 목을 흉기로 찌르고 마구 휘둘러 현장에서 즉사케 했다.
오후 6시 10분부터 시신 훼손을 한 정유정은 이 과정에서 피가 튀어 자신의 옷을 버리자 오후 6시 50분 A 씨 옷으로 갈아입은 뒤 자기 집으로 돌아가 여행용 가방을 챙겼다. 이어 마트에서 락스, 비닐봉투, 시신 훼손용 도구를 추가로 구입했다.
밤 10시까지 시신을 훼손한 정유정은 시신을 가방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 자정 무렵 택시 불러 "아저씨 낙동강으로…"
정유정은 5월 27일 밤 12시 무렵 사체 일부를 가방에 담은 뒤 택시를 불러 양산의 낙동강변 공원 숲으로 가 줄 것으로 부탁했다.
한밤중에 학생으로 보이는 여성이, 자기 키만 한 여행용 가방을 끙끙거리며 옮기는 것을 본 택시 기사는 뭔가 이상했지만 설마 하면서 목적지까지 운행했다.
27일 새벽 1시 15분 사체 일부를 강옆 숲에 버린 정유정은 다시 택시로 돌아왔다.
택시 기사는 숲으로 들어간 정유정이 20여 분 뒤 가벼워진 가방을 끌고 나타나자 '수상함'을 직감, 경찰에 신고했다.
긴급 출동한 경찰은 정유정을 멈춰 세운 뒤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서 발견된 핏자국에 대해 정유정은 "내가 하혈한 것"이라고 거짓말했다.
이에 경찰은 119를 불러 정유정을 병원으로 이송, 관련 검사를 했지만 '하혈한 흔적이 없다'는 의료진 답을 듣고 현장에서 정유정을 체포했다.
◇ 강호순보다 높은 사이코패스 점수…전문가 "은둔형 외톨이" "야스퍼스 증후군" 의견 갈려
경찰은 정유정이 시신이 든 가방을 마치 여행 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고 집으로 돌아간 점, 살인에 대한 죄책감을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볼 때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로 판단,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PCL-R)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정유정은 28점을 받아 사이코패스 간주 기준점(40점 만점에 25점 이상)을 넘어섰다.
28점은 2006∼2008년 경기 서남부지역 등에서 여성 10명을 납치·살해하고 장모와 전처까지 살해, 사형 선고를 받은 연쇄 살인범 강호순(27점)보다 높았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38점,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은 29점으로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았다.
정유정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사이코패스와 다른 양상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잔혹함, 피해자에 대한 공감 능력 실종 등은 사이코패스 영역에 들어있지만 말투가 어눌한 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뛰어난 언변)와 다르다는 것.
정유정 핸드폰 분석 결과 연락을 부고 받는 지인이나 친구가 없다는 점에서 '성격장애를 가진 은둔형 외톨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이틀에 한 번꼴로 장시간 외출한 점 등을 볼 때 외톨이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상당수 전문가는 그를 사회성을 극히 떨어진 발달장애인 야스퍼스 증후군(미등록 자폐인)으로 보는 것이 낫다고 했다.
◇ 정유정 1심 앞두고 20차례 반성문…검찰 '사형' 구형 1심 무기징역
2023년 11월 6일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태업)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정유정은 "정신적으로 힘들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며 심신미약에 기댔으나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다.
1심 재판부가 그해 11월 24일 "원한도 사지 않고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만큼 엄중히 처벌할 사정이 충분하다"고 했다.
또 "20여 차례 반성문 대부분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호소한 내용이고 범행을 뉘우친다고는 했지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다만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잘못을 참회하고 유족에게 속죄하게 하는 것이 맞다"며 사형이 아닌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무기징역형 선고와 함께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 가족 면회 때 "반성문으로 성의 보이는 척" "경찰 압수수색에 앞서 왜 방 안 치웠나"
이에 검찰은 "사형선고로 재범 위험을 막아야 한다"며 즉각 항소했고 정유정도 "형이 무겁다"며 맞항소했다.
그러면서 정유정의 구치소 접견 기록을 항소이유서에 추가했다.
이에 따르면 정유정은 면회를 온 가족에게 "억지로라도 성의를 보이려고 반성문을 적어야겠다", 할아버지에게는 "경찰 압수수색 전에 미리 방을 치워놨어야지요"라며 반성은커녕 가족들이 협조를 안 해 무거운 벌을 받게 만들었다고 원망했다.
정유정 측은 항소하면서 1심 때 줄기차게 주장했던 '심신미약'을 거둬들였다.
◇ 2심 "사형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 무기징역 유지…대법 확정, 최연소 무기수
2심에서도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2024년 3월 27일 부산고법 형사2부(판사 이재욱)는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 사형은 극히 예외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 정유정은 처벌받은 전력이 없다 △ 개선이나 교화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기징역형을 유지했다.
정유정은 이번에도 '형이 무겁다'며 상고했으나 지난 6월 13일 대법원은 이를 뿌리쳤다.
대법원 확정판결 당시 만 24세 8개월이었던 정유정은 한국 사법사상 최연소 무기수가 됐다.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승용차 돌진에 이어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사망케 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최원종(2001년 1월 2일생)의 형이 확정될 경우 최연소 무기수는 정유정에서 최원종으로 바뀌게 된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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