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개구리 안 먹고 풀만 뜯었나...’징그럽게 아름다운’ 초록뱀의 자태
나무위에 살면서 먹이사냥에 용이하도록 ‘초록뱀’으로 진화
소형종은 오인케 하려는 생존전략이기도
‘아름답다’와 ‘징그럽다’. 완벽히 정반대의 가치를 품은 두 단어를 합치면 ‘징그럽게 아름답다’가 될 겁니다. 이 모순적 표현이 과연 성립이 가능할까요? 다음에 보실 짧은 동영상을 보시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다만 뱀에 대해 특별한 공포·혐오증이 있는분은 건너뛰시는게 나을 것 같아요.
초록은 생명의 빛깔입니다. 황량한 겨울을 보낸 숲속에 새싹이 돋으면서 연두빛으로 물들고 작열하는 태양과 빗줄기를 머금으면서 여름의 신록으로 익어갑니다. 그래서 초록은 긍정의 상징이기도 해요. 그 초록 빛깔을 놈이 전신에 머금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보다 싫어하는 사람·무서워하는 사람·혐오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련한 짐승, 뱀 말입니다. 아침 이슬을 온몸에 머금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려는 초록나무비단뱀의 모습을 호주 시드니 동물원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이 모습에 ‘영롱한 자태’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요?
징글맞은 뱀의 대명사로 꼽히는 뱀이라지만, 이렇게 예외적으로 눈부신 초록빛으로 전신을 치장해 치명적 매력을 선사하는 뱀의 종류들이 있습니다.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 뱀이라서 이렇게 풀색깔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전세계에 모든 뱀 중에 초식·잡식은 없거든요. 독니로 물어죽이든, 몸통으로 죄어죽이든, 아니면 버둥거리는 걸 통째로 삼키든,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살아있는 먹잇감을 노리는 게 뱀입니다. 지구촌 곳곳에 분포하는 초록뱀들의 공통점은 서식 공간이 대체로 우거진 숲과 잎이 무성한 나무라는 겁니다.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을 은폐·엄폐해서 먹잇감을 눈속임하기 위해 초록뱀이 됐죠. 초록나무비단뱀은 전체적으로는 초록색이지만, 군데 군데 흰색·노란색·진한 녹색의 무늬가 마름모꼴로 총총 박혀있어요. 어렸을 때는 노란색이나 불그스름한 색을 하고 있지만 성체가 되면 아름답고 우아한 초록뱀으로 변하죠.
놈의 사냥방식은 매혹적입니다. 나뭇가지위에 또아리를 틀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요. 여기에 홀린듯 쥐나 도마뱀, 새가 다가오면 단숨에 덮칩니다. 독은 없지만 어마무시한 옥죄는 힘으로 숨통을 옥죄어 질식시킵니다. 먹잇감은 ‘차라리 독니로 물어죽여달라’며 절규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원시적이면서 태곳적 야수의 모습을 간직한 대형뱀인 보아·비단뱀은 이처럼 독은 없는 대신 우월한 덩치와 옥죄는 힘으로 먹이를 사냥합니다. 이 무리에 속하는 또 하나의 초록뱀이 있어요. 이름부터가 보석처럼 아름다운 에머랄드보아예요. 초록나무비단뱀의 서식지역은 인도네시아·파푸아뉴기니·호주 일대인 반면 에머랄드보아는 남미 특산종이에요. 그런데 두 종류는 놀랍게도 빼닮았어요. 다만 에머랄드 보아는 몸에 비교적 규칙적 간격으로 흰색 고리무늬가 나있고요. 하지만 나뭇가지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가는 고양이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은 쉽사리 구분이 어렵습니다.
아름다운 초록뱀 중에는 치명적인 독까지 품은 독사들도 있습니다. 한눈에 봐선 쉽사리 구분이 어려운 닮은 꼴 초록독사 두 종류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어요. 붐슬랭과 그린맘바예요. 몸뚱이가 두터워 나뭇가지에 또아리를 틀고 있으면 그 자체로 엄청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보아·비단뱀에 비해 가늘고 짧아서 덩치로 주는 위압감은 없습니다. 하지만 호리호리한 몸으로 나무 위를 스르르 다니는 놈들의 타깃이 돼 독을 주입당하는 순간 생존게임은 그 즉시 끝나버리죠. 여간해서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물렸을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초록 몸뚱이에 규칙적으로 얇고 검은 무늬를 가진 붐슬랭은 남부 아프리카 지역 일대를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고, 본연의 초록 빛깔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그린맘바는 동남부 아프리카 해안가 일부 지역에 집중 분포해있습니다. 이렇게 초록뱀 무리중에는 아나콘다급 대형뱀과 코브라에 필적한 독사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징그러움의 대명사 뱀이 아름다운데다 심지어 귀여울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입니다.
미국의 토종뱀인 잔디뱀이에요. 영어 풀 네임을 그대로 번역하면 말랑잔디뱀(Smooth Green Snake)입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현철 선생의 히트곡 ‘봉선화 연정’의 노랫말에 빗대 표현하자면, 저 사진 속 뱀은 정말 ‘손 대면 톡 하고 터질것만’ 같습니다. 알에서 부화한지 얼마 안되는 어린 새끼지만, 아무리 자라더라도 50㎝를 넘지 않습니다. 이 새끼뱀은 어른이 되면 보다 선명한 초록색 몸을 갖게 될것입니다. 이 여리여리한 뱀은 심지어 독도 없습니다. 크기가 작으니 여느 뱀처럼 개구리나 쥐는 엄두도 못내고, 메뚜기나 거미 같은 벌레류를 삼키며 하루하루를 연명합니다. 이런 지경이니 이 가련한 뱀을 노리는 피식자가 얼마나 많을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초록나무비단뱀·에머랄드보아·붐슬랭·그린맘바의 초록색이 위장색이라면 잔디뱀의 초록색은 보호색입니다. 주변에 포식자와 천적이 득시글하니 이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주변 풀숲 색깔로 변한 거예요. 놈들의 생존전략 중 하나가 풀밭에서 고개를 쳐들고 까딱 까딱 움직이기입니다. 먹이를 찾는 게 아니라, 풀줄기처럼 보이게 해서 포식자의 눈을 피하려는 것이죠. 인간의 보호본능을 전방위적으로 자극하는 사랑스러움의 전략이 성공한 것일까요? 미국의 각 주 정부와 환경단체에서는 도시개발과 잔디깎이기계의 과도한 사용으로 이 사랑스러운 뱀들이 생존위기에 처해있다며 보호전략 수립의 필요를 역설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마지막 초록뱀은 감히 초록뱀 중의 초록뱀이라고 치켜세우고 싶은 남아시아 특산종 긴코채찍뱀입니다. 초강력은 아니지만 독을 품고 있고요.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특출난 외모를 하고 있어요. 우선 카리스마 넘치는 사진부터 보실까요?
선명한 초록빛은 기본입니다. 주둥이는 화살촉처럼 날카롭게 벼려져있고, 양옆으로 길쭉한 눈은 어쩐지 게슴츠레한 느낌을 줘요.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으로 가느다랗습니다. 몸통의 굵기와 전체 몸길이의 비율은 1대160까지 계산된적이 있어요. 몸통은 가느다란데 몸길이는 극단적으로 길어진것이죠. 그렇게 늘어난 신체 부위는 꼬리쪽에 집중돼있습니다. 이런 기이한 생김새는 그 어떤 초록뱀들보다도 나무 생활에 알맞게 적응하는 과정에서 갖게 된 것입니다. 게슴츠레한 느낌을 주는 길다란 눈동자는 여느 뱀들보다 더 입체적으로 앞을 볼 수 있도록 해 사냥 효율을 상대적으로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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