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에 잠이 안 온다"…호텔신라 주주의 한숨 [진영기의 찐개미 찐투자]
면세점 업황 개선되지 않아 실적·주가 모두 부진
"중국 경기 침체 우려 커져…업황 회복 시간 필요해"
밸류업 프로그램 동참할 재원 부족
추석 황금연휴가 찾아왔지만, 호텔신라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저조한 실적 탓에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주력사업으로 꼽히는 면세점 실적이 부진하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후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과 함께 관광객 수는 회복됐지만, 이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면세점 실적엔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과 관광객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그런데 중국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뎌 면세점 실적이 단기간에 반등하긴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업황 회복과 함께 주가가 오르더라도 자사주를 담보로 발행한 교환사채(EB)가 시장에 풀릴 가능성이 있어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 호텔신라는 전날보다 0.11% 하락한 4만5500원에 마감했다. 최근 5년 내 최저 수준이다. 작년 9월18일 기록한 52주 최고가 9만1200원과 비교하면 반토막 났다. 당시 중국 정부가 단체 관광을 허용하며 주가가 급등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호텔신라는 이렇다 할 반등 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현재 시가총액은 1조7858억원으로 연초 대비 1조원가량 줄었다.
주식 시장의 '큰 손'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가 호텔신라를 외면하며 주가가 하락했다. 올해 들어 기관은 호텔신라 주식을 2144억원, 외국인은 175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국민연금도 호텔신라 지분율을 10.01%에서 4.65%(8월 9일 기준)까지 낮췄다.
개인은 3859억원 순매수하며 기관과 외국인의 물량을 받아냈다. 하지만 수익률은 신통치 않다. NH투자증권을 통해 호텔신라 주식을 보유한 2만6394명(11일 기준)은 대부분 손실을 보고 있다. 평균 손실률은 34.63%에 달한다. 1000만원을 투자했다면 계좌에 약 650만원만 남은 셈이다. 한 투자자는 종목토론방에 "신라호텔만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로 위축된 면세점 업황이 리오프닝 이후에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호텔신라 연결 매출에서 면세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4.3%에 달한다. 2분기 호텔신라 면세점 부문의 매출은 83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7% 늘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3.8% 급감했다. 호텔·레저 사업의 영업이익 감소폭(14.2%)을 크게 웃돈다.
1인당 구매액이 감소해 실적 발목을 잠았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상반기 구매객 수는 1382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45.6% 늘었다. 하지만 1인당 구매액은 53만5000원으로 22% 줄었다. 최근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들이 면세점에서 큰돈을 쓰기보단 맛집이나 인기 편집숍 등에서 지갑을 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여행객의 소비 트렌드가 저가 상품 위주로 재편됐다"며 "국내 일부 화장품의 매출은 견조하지만, 전체 면세점 실적을 견인하기엔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텔신라는 싱가포르와 마카오 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올해부터 임차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며 "평년엔 시내면세점 수익으로 공항 면세점 적자를 메워왔는데, 이젠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경기가 부진한 점도 영향을 줬다. 중국 소비자의 구매력이 하락해 예전만큼 국내 면세점을 찾지 않는 것이다. 리오프닝 후에도 면세점 큰손이던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의 비중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따이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따이궁은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 명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중국에서 팔았다.
중국 경기가 회복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신한투자증권은 중국 8월 물가, 수출입지표를 감안할 때 내수 모멘텀(상승 동력)이 훼손돼 경기 침체 우려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8월 중국 핵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0.3% 오르는 데 그쳤다. 수출은 8.7% 늘었지만, 수입 상승폭은 0.5%에 불과했다.
증시에 밸류업 바람이 불고 있지만, 호텔신라는 한발 비켜서 있다. 호텔신라는 2001년부터 꾸준히 배당을 해오고 있다. 2020년까진 보통주 1주당 350원, 2021년부턴 200원을 배당하고 있다. 다만 작년 결산 기준 시가배당률은 0.3%로 코스피 평균(2.72%)을 크게 밑돌았다. 우선주 시가배당률도 0.7%에 그쳤다.
밸류업을 위한 재원도 부족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사태 후 차입금이 늘어나며 부채비율이 함께 높아지고 있다. 호텔신라의 부채비율은 올해 2분기 말 기준 392.7%로 최근 400%를 넘나드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 360.5%에서 2022년 444.4%로 치솟은 후 지난해 394.1%로 소폭 하락했으나 올해 1분기 426.8%로 집계된 바 있다. 기업의 현금창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업활동현금흐름도 전년 동기 대비 46.8% 줄었다.
주가 상승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오버행(잠재적 대량 매도 물량)' 우려다. 호텔신라는 지난 7월 자사주 지분 5.44%(213만5000주)를 기초자산으로 1328억원 규모의 EB를 발행했다. 교환사채는 회사가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발행회사가 보유한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이다.
호텔신라가 발행한 EB의 표면 이자율은 0%다. 따라서 EB 투자자들이 이익을 거두려면 EB를 매입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각하거나, 주식으로 교환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호텔신라 EB의 전환가액은 6만2200원이다. 업황이 개선돼 호텔신라 주가가 6만2200원을 웃돌게 되면 EB 투자자들의 차익실현 욕구는 커지게 된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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