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 기구’ 국교위는 왜 ‘비밀주의’ 고집할까?

탁지영 기자 2024. 9. 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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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가교육위원회 33차 회의에서 이배용 국교위원장(가운데)이 발언을 하고 있다. 국가교육위원회 제공

지난 10일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산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전문위원회(전문위) 소속 위원 8명이 국회 소통관에 섰습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국가 백년 미래를 내다보아야 할 교육비전이나 향후 10년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이 사회적 합의 없이 밀실에서 몇몇의 짬짜미로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달라”며 전문위 회의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최근 국교위가 출범 의도와 달리 ‘비밀주의’로 정책 추진을 일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교위는 정권과 관계없이 교육과정, 대입제도 등 중장기 교육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2022년 9월 출범한 사회적 합의 기구입니다.

전문위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의 주요 교육정책 방향을 정하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내용을 논의하는 국교위 산하 위원회입니다. 전문위는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중 보수 성향 위원은 13명, 진보 성향 위원은 8명입니다. 전문위는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담길 세부 정책과제를 논의하고 국교위 전체회의에 보고합니다. 이후 국교위는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3월 국가교육발전계획을 발표합니다.

국가교육발전계획의 틀을 수립하는 곳이지만 국교위가 주요 의제로 어떤 걸 논의하고 있는지는 지난 7월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처음 외부로 알려졌습니다. 그마저도 보수 성향 전문위원들이 수능 이원화, 고교 내신 외부 평가, 고교 평준화 폐지, 사학 자주성 확대 등을 짬짜미로 밀어붙인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됐습니다.

그만큼 국교위는 ‘보안’을 중시합니다. 정책 의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새어나가면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전문위 논의 문건 오른쪽 상단에는 모두 ‘대외비’가 붙어 있고 전문위원들도 비밀서약을 씁니다. 지난 6일 국교위 전체회의에서 전문위 중간보고가 이뤄졌는데 이 문건도 사전 배포 없이 회의장에서 배부됐고 회의가 끝난 뒤 회수됐다고 합니다.

국교위 안팎에선 논의해야 할 쟁점이 많은 교육 정책을 공론화 없이 추진하는 데 대해 지적이 나옵니다. 일부 전문위원들이 제시한 수능 이원화나 내신 외부평가제 등은 21명의 전문위원들끼리 논의할 정책이 아니라 사전에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전문위원 A씨는 통화에서 “21명이 논의하는 과정이 밖으로 드러나야 국민들이 판단하는데 이배용 국교위원장이 ‘대외비’라는 이름으로 묶어놓고 ‘외부 유출자를 색출하겠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며 “그러면 사회적 합의 기구를 왜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국교위는 지난 2월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대국민 교육현안 인식조사’를 진행했지만 ‘우리나라 교육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와 한계’ ‘미래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학교의 모습’ ‘미래 교육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변화시켜야 할 교육 분야’와 같이 추상적인 질문을 묻는 데 그쳤습니다. A씨는 통화에서 “전문위 내 운영위원회에서 ‘국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일차적으로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제를 도출한 뒤 다시 여론조사를 거쳐 의제를 정렬해가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보수 성향 위원들이 ‘불필요하다’고 거절했다”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선 국교위를 ‘비밀스럽게’ 운영하는 데 의도가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사회적 공론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정책 의제를 논의하면 표결로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다수파인 보수 진영에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전문위원 B씨는 “국가교육발전계획 초안을 비밀스럽게 갖고 있다가 발표한 뒤에 한두 번 형식적으로 공청회를 하고 국교위 전체회의에서 표결하면 끝”이라며 “발표만 되면 법적 효력이 있으니 건들지 말라고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A씨는 “쟁점 사안에 대해 다수 국민은 반대하기 때문에 (보수 성향 전문위원들이) 공론의 장으로 끌고 나가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국교위 관계자는 전문위원들의 지적에 대해 “전문위에서 올린 안건은 참고 자료 중 하나로 활용을 하는 것일 뿐, 국교위 전체회의에서 바로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계획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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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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