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꽃동님’은 준비된 사령탑이었다…KIA 이범호 감독, ‘맏형 리더십’ 앞세워 부임 첫해 정규리그 우승 ‘쾌거’

남정훈 2024. 9. 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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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KIA는 2024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악재를 만났다. 사령탑인 김종국 감독이 금품수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검찰은 김종국 감독은 장정석 전 단장과 함께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는 소식에 KIA는 김종국 감독을 경질했다.

새 사령탑 선임을 두고 각종 추측이 흘러나왔지만, KIA의 선택은 이범호 타격코치의 내부승격이었다. 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소통이 잘되던 이범호 감독은 인성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능력도 뛰어나 KIA가 차기 감독감으로 내부에서 키우고 있었다. 언젠가 KIA의 감독이 될 것이었지만, 김종국 감독의 비리혐의로 그 시기가 좀 당겨진 것뿐이었다. 그렇게 이범호 감독은 KBO리그 최초의 1980년대생 사령탑이 됐다.

현역 시절 ‘꽃범호’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범호 감독은 사령탑으로 승격되자 팬들은 ‘꽃동님’(감독님을 자음동화 현상으로 감동님이라 부르는 것에 기원해 별명에다 +동님을 붙여 부르곤 한다)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꽃동님’은 사령탑 1년차에 KIA의 7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며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따냈다.

이 감독은 타이거즈에서 뛴 선수 출신으로는 KIA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최초의 사령탑이라는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해 타이거즈는 1989년 단일리그 출범 후 1991년, 1993년, 1996∼1997년, 2009년, 2017년에 이어 7번째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199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이끈 ‘명장’ 김응용 전 감독, 2009년에는 조범현 전 감독, 2017년에는 김기태 전 감독이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아우른 통합 우승 축배를 들었다. 다만 김응용 전 감독은 KBO리그에서는 선수로 뛰지 않았고, 프로 선수 출신인 조범현 전 감독과 김기태 전 감독 역시 현역 때 호랑이 유니폼을 입진 않았다.

이 감독은 2000년 한화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해 2009년까지 뛰었다. 2010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2+1년에 최대 5억엔을 받는 조건에 일본 프로야구로 건너갔지만, 1년만 뛰고 KBO리그로 유턴했다. 유턴 과정에서 한화와의 협상이 결렬된 사이 KIA가 빠르게 움직여 이 감독을 영입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KIA에서 뛰면서 이 감독은 주연과 조연을 오가며 활약했고, 2017년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도 차지했다.

현역 은퇴 후 이 감독은 스카우트, 2군 총괄 코치, 1군 타격 코치 등 핵심 보직을 차례로 거치며 지도자 이력을 쌓았다. 차기 감독감으로 키워지던 이 감독은 내부 승격을 통해 예상보다 빠르게 감독직에 올랐지만, 준비된 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감독 면접 때 타격 코치로서 KIA 타자들이 6월 이래 활발한 타격을 펼친 수년간의 데이터를 제시하고 그에 맞춰 시즌 초반인 4∼5월 팀 성적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령탑에 앉은 뒤 초반 높은 승률을 올리는 데 사활을 걸었다.

KIA는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 도입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물고 물리는 접전이 벌어진 3∼4월 정규시즌에서 21승 10패를 거둬 20승 11패를 올린 NC 다이노스와 더불어 양강으로 치고 나갔다.

1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KIA 이범호 감독이 5회초 2사 1, 2루 삼성 6번 김영웅 타석 때 교체돼 물러난 양현종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고 불리는데, KIA는 올 시즌을 시작했던 5명의 선발투수 중 현재도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는 것은 양현종이 유일하다. 신예 좌완 에이스 이의리는 팔꿈치 수술을 받아 시즌아웃됐고, 외국인 에이스감으로 데려온 윌 크로우도 팔꿈치 수술을 받아 일찌감치 퇴출됐다. 5선발 조완 윤영철도 지난 7월 척추 피로 골절 소견을 받고 한동안 마운드에 서지 않다가 이제 복귀를 준비중이다. 크로우 대신 외국인 에이스 역할을 대신 해준 제임스 네일도 타구에 맞아 턱관절이 골절되는 불의의 부상을 입고 말았다. 여기에 마무리 정해영도 한동안 마운드를 지키지 못하는 등 선발과 불펜에 모두 부상 악령이 덮쳤다.

선발 투수들이 나가떨어지는 상황에서도 KIA는 압도적인 타격의 힘으로 버텨냈다. 이의리와 크로우가 빠져나간 5~6월을 24승2무23패로 버텨내며 선두권을 유지한 KIA는 새 외국인 투수로 선발진을 재정비하고, 불펜진이 안정을 찾은 7∼8월 KIA는 다시 승수를 쌓아 29승 16패로 다시 10승 이상을 추가하며 1위 굳히기에 들어간 끝에 9월 17일 마침내 한국시리즈 직행을 확정 지었다.

부상 등 각종 돌발악재에도 이 감독이 마운드와 야수진의 두꺼운 전력층을 최대한 활용해 전력 누수를 최소화한 덕분이었다. 오랜 기간 KIA의 코칭스태프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감독의 ‘맏형 리더십’은 때로는 친근하면서도 때로는 엄했다. 이 감독은 김도영을 비롯해 박찬호, 나성범, 소크라테스 브리토 등 주전들이 기본을 저버린 수비나 주루를 하면 가차 없이 교체했다. 처분은 공정했고, 메시지는 확실했기에 불만은 사그라들었다.

선수 개인의 기록보다 팀 승리를 우선시하는 냉혹한 승부사 기질도 돋보였다. 지난 7월17일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1개만을 남긴 ‘대투수’ 양현종을 교체한 순간이다. 9-5로 쫓긴 2사 1, 2루가 되자 승리를 위해 불펜을 가동한 이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당혹감과 분노로 넋 빠진 표정을 짓던 양현종을 뒤에서 껴안고 위로했다. 승부사 기질을 발동시킨 뒤 곧바로 ‘맏형 리더십’으로 대들보 같은 선수의 화를 누그러뜨리는, 이 감독의 리더십을 그대로 보여준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제 이 감독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해 통합우승에 도전한다. 사령탑 부임 첫해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한 사례는 딱 두 차례다. 2005년 삼성 감독에 부임한 선동열 전 감독과 2011년 삼성의 류중일 전 감독이다. 과연 ‘꽃동님’의 도전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지 관심을 모은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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