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휩쓸린 부실 입법...‘윤창호법’ 위헌 결정 이후 음주운전 사고 4년 만에 제자리
#사건 1. A씨는 2021년 12월 오전 성남시 분당에서 서울 관악구까지 약 20km 구간을 만취 상태로 무면허 운전했다. 그는 음주운전 혐의로 2014년 6월 벌금 300만원, 2021년 8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동종 범죄를 다시 저질렀다. A씨는 지난 5월 1심에서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사건 2. B씨는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술에 잔뜩 취한 상태(혈중알코올농도 0.215%)로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이미 세 차례(2013년 벌금 400만원 및 500만원, 2016년 벌금 600만원) 동종 범죄로 처벌 받은 적이 있었는데, 징역 1년 2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이 시행(2018년 12월)된 지 6년 가까이 됐지만, 음주운전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각종 연예인, 운동선수, 정치권 인사들이 음주운전을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삼성화재 부설 연구소가 지난 6월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과 윤창호법 영향 등으로 감소세를 보이던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지난해 13만150건. 코로나 이전인 2019년(13만772건) 수준으로 돌아왔다.
코로나 시기이던 2020년(11만7549건)과 2021년(11만5882건)에 잠깐 줄었지만, 엔데믹이 본격화된 2022년 무렵부터 13만283건으로 반등했다. 최근 5년(2019~2023년)간 연평균 음주운전 재범률도 43.6%로 윤창호법 시행 전인 2018년(44.7%)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상 형해화된 윤창호법
법조계에선 위에 언급된 두 사건 범행 당시 윤창호법의 과거 조항이 유효했으면 더 강한 처벌을 받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A씨와 B씨의 경우 최소 징역 2년 이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헌재)의 위헌 결정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음주운전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야기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적 공분으로 통과됐던 ‘윤창호법’이 사실상 형해화된 게 대표적 경우라는 지적이다.
윤창호법은 군 복무 중이던 윤창호씨가 2018년 9월 휴가를 나왔다가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에서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숨진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위험운전치사상죄의 법정형을 상향조정하는 특정범죄가중법과 도로교통법이 연이어 개정·강화됐다. 기존 ‘3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경우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처벌’하던 내용을 개정, ‘음주운전 등을 2회 이상 한 자에 대해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강화했다. 이 법은 그해 12월 시행됐다.
그러나 헌재가 2021년과 2022년 이에 대해 거듭 위헌 결정을 내려 현재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음주운전을 해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자가 10년 이내에 또다시 음주운전을 할 경우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1년 이상 6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은 맹점
왜 헌재는 윤창호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을까. 기본적으로 음주운전 위반 행위 사이에 아무런 시간적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창호법 제정 당시 국회는 3개월 만에 특별법을 만들면서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이게 발목을 잡은 것이다.
먼저 2021년 11월 헌재는 “이 조항은 (재범 여부를 판단 기준으로) 아무런 시간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 세월이 지난 후 다시 음주운전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과도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고 보인다”면서 음주운전이 2회 이상 적발되면 가중 처벌하도록 한 도로교통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2022년 5월엔 음주측정 거부를 2차례 이상 한 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도로교통법 조항도 비슷한 취지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물론 “과거 음주운전 횟수와 시간적 간격, 위반행위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등에 따라 불법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 반복된 ‘음주운전 금지규정 위반’이라는 동질의 범죄행위”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헌재는 책임과 형벌 간 비례 원칙을 벗어나 과도하게 처벌하는 건 안 된다고 재차 확인했다.
◇의견 수렴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해법 다각화 필요
이러한 위헌 판단이 법관들의 재량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한 현직 판사는 “재판부가 상황·기간·죄질을 종합해 양형을 정할 수 있는데, 헌재가 일괄적으로 위헌이라고 판단해 판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꽤 컸다”고 말했다.
결국 반복적 음주운전을 얼마나 해야 가중처벌이 적합하다고 보는지 의견을 수렴하고, 음주운전 ‘예방’과 ‘피해자 지원’ 등으로 해법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순히 형벌 강화를 하는 것에 앞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차량에 부착하거나, 음주운전으로 사망 사고를 낸 가해자에게 형사처벌 외에 피해자 자녀의 양육비도 책임지게 하는 한국판 ‘벤틀리법’ 시행 등이 거론된다. 사망 사고를 일으키는 음주운전은 ‘살인죄’로 보고 기소·판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이제 음주운전은 ‘살인 행위’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있는 만큼, 사람을 치어 죽인 음주운전은 ‘살인죄’로 보고 기소하는 것도 범죄의 심각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한 방법”이라며 “법원도 음주운전은 최소 미필적 고의(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 엄격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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