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마지막 갈림길에 서있다 [신하연의 여의도 돋보기]

신하연 2024. 9. 1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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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CI신흥지수 대만과 인도보다도 매력없는 시장"
정부의 밸류업 접근방식 잘못 돼…"예측 가능 시장 돼야"
[사진 픽사베이]

<글쓴이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했나요. 어렵고 딱딱한 증시·시황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그래서 왜?'하고 궁금했던 부분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한국 시장은 이미 캐피털 마켓(자본시장)에서의 평가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지난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열린 토론에서 세계 3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의 박유경 전무가 내린 평가입니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냉정하고 단호한 진단에 장내에도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토론이 끝난 뒤 인사를 나눈 박 전무는 간절해보이는 표정으로 '좋은 기사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한국 시장을 잘 아는 사람이자 해외 기관투자자의 객관적인 평가를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을 그의 착잡함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지난 1993년부터 30년간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4배 성장하고 대표 지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은 10배 성장하는 동안 한국은 GDP가 7배 성장하고 코스피는 3배 성장에 그쳤다고 합니다.

한국이 GDP가 성장한 만큼 코스피가 성장했다면 현재 지수가 6000이 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코스피지수는 여전히 2500선에서 등락하고 있습니다.

이제 해외 기관 투자자들 입장에서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신흥지수에 포함되는 국가 중 대만과 인도보다도 매력없는 시장이 한국시장이라는 '작심발언'도 나왔습니다. 박 전무의 표현처럼 단순하게 '저평가'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더없이 부끄러운 시장이 돼버린 거죠.

자본시장은 국가 경제의 거울이자 기업들이 성장하는 무대입니다. 그 무대가 견고해야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돈을 맡기는데, 한국에서는 지배주주들이 과도한 프리미엄을 취하며 일반 주주들의 몫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이날 토론에서는 한국시장의 고질적인 저평가 현상을 의미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접근하는 정부의 방식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나왔습니다

이상훈 경북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한국의) 주식가치가 왜 저평가 됐는지, 왜 기업 가치 대비 주가가 할인이 되고 일반 주주가 푸대접 받는다는 평가가 나오는지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며 "결국 핵심은 지배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상충 문제인데, 정부는 상속세 감면 같은 총수 세금 깎아주는 방법으로 접근하면서 초점이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교수는 이어 "지배주주에게 프리미엄이 귀속되지 않게 하기 위해 상법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며 "이해상충 해소, 공시 규제, 보수위원회 등 이날 토론에서 나온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것이 '이사의 주주충실 의무'"라고 강조했습니다.

해외에서는 '회사=주주'로 보는 인식이 당연하기 때문에 법 조항에 굳이 주주를 명시할 필요가 없지만 국내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점 때문에 결국 입법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거죠.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본시장 선진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투명성'과 '신뢰성'. 투자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시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기업의 주주환원 정책이고요. 배당 성향을 높이고, 자사주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을 통해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시장은 더 탄탄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밸류업 프로그램도 이같은 맥락으로 등장했겠죠.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공시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우리는 이만큼 성장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본시장 선진화는 단순히 기업의 밸류업을 넘어, 기업과 주주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정한 주주총회 운영, 경영 투명성 강화, 그리고 장기적인 투자 유인책 마련도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행동이겠죠. 계획만 세우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업들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거래소의 참여 독려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게끔 명확한 상벌 체계가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또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에서 한국 시장의 매력도를 높이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선진화된 자본시장에서는 누구나 정보에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이는 더 큰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투자자들 역시 눈앞의 단기 수익보다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성숙한 투자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결국 시장을 키우는 것은 투자자들이니까요.

자본시장 선진화란 한 마디로 '신뢰의 게임'입니다. 기업이 얼마나 투명하게 경영하는지, 투자자들이 얼마나 성숙한 시각을 가지고 시장을 대하는지, 그리고 정부가 얼마나 강력하게 제도를 추진하는지에 따라 자본시장의 미래는 달라집니다. 지금이 한국 자본시장의 갈림길이자 마지막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임계점)'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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